【시민시대1-수필】 다시 봉정사 - 이종민
【시민시대1-수필】 다시 봉정사 -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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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31 15:46
  • 업데이트 2023.01.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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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여행을 다녀오자는 동료의 말에 또 마음이 설렌다. 몇 해 전, 2박 3일의 건축 기행과 올 초에 가족여행을 하였음에도 안동 기행은 늘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선비 문화와 건축 유산이 섞여 있는 도시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일정의 첫 순서를 봉정사로 잡았음은 물론이다. 오래전부터 내 마음의 안동 제 일경은 봉정사이다. 때가 늦어 단풍의 계절이 다 지난들 무엇이 문제가 될까? 겨울 천등산을 향하는 마음이 바쁘다.

오래전 기행에서 봉정사의 인상을 이렇게 적었다. ‘좋은 건축이 있는 곳에는 좋은 터가 있나 보다. 소쇄원에서처럼 봉정사 길은 초입부터 땅의 기운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입구를 통과한다. 봉정사를 생각하면 부석사가 쌍둥이처럼 떠오른다. 40대에 오른 부석사에서 소백산 준령의 패기를 보았다면, 나이 든 어느 해 겨울 이곳에서 적요와 한가로움을 느껴보려 한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곳이 다르지 않은 감흥으로 오는 건 지형에 순응한 산지가람인 이유라 생각한다. 그러나 더 세심히 살피면,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와 제자였던 능인스님에 의하여 지어진 봉정사가 정신적 맥락을 같이함에 있지 않을까? 건축을 결정하는 데에는 자연의 영향이 중요함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의지도 못지않음을 본다. 그런 것들이 상형화되어 천 년 후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사찰을 기행하고 감격하는 것은 대체로 지금과 같은 때이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느낌, 계절로는 만추의 가을이나 삭풍의 겨울 사찰이 인상 깊다. 봄 화엄사의 화려함이나 여름 송광사의 분주함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의 봉정사. 나는 지금 그걸 보러 왔나 보다.

이전에도 그랬는데, 오늘도 경내의 곳곳이 수리 중이다. 하지만 사찰의 완벽한 전경을 내 스케치북에 다 담지 못한다 하여 무엇이 문제가 될까? 나는 복원 후의 말끔한 모습을 상상하며, 곳곳에 둘러쳐 있는 공사용 차단막 또한 아름답게 보기로 하였다. 설령 그 복원이 원형에서 조금 빗나간들 어쩌랴. 사찰은 창건의 역사와 관계없이 엄연히 종교가 이루어지는 현세의 도량이니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어도 무방할 것이다.

한때 문화재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편견이 있었다. 폐허가 된 파르테논이나 피라미드의 장엄을 기대하듯 단청이 벗겨지고 솔이끼가 앉은 고전을 느끼려는 건축 문화적 욕심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전통 사찰이 가지는 보존과 사용 사이의 혼돈과 고민을 이해하고부터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세월이 흐르니 사고의 독단도 허물어지나 보다. 이제는 그 변화마저 아름답게 보이니, 원형을 똑같이 보존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시절이 아련하다.

초입부터 40대의 나를 고개 숙이게 하였던 만세루 또한 복원 공사 중이다. 거기에 서서 들판의 노란색을 바라보던 때를 기억한다. 그것들은 익은 벼와 소국小菊의 물결이었다. 그리고 사찰을 등지고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때 산의 골을 타고 올라오던 곡물과 거름의 냄새가 향긋한 차 향기와 다름없이 상쾌하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 마을의 농가 수익을 올려주는 소국이 결실의 들판에 가을빛을 더욱 보태고 있었으니, 그것이 곧 인간 세계의 향기이며, 어쩌면 극락정토의 궁극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세루 아래의 통로가 복원공사로 막히니, 요사채를 오른쪽으로 돌아 산을 더 오른다. 왼쪽의 경내는 뒤로 미루고 더 오르면 마침내 영산암. 뭇 건축가들로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공간이라 추앙받는 곳이다.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ㅁ자 모양을 하고 앉은 건축이 마치 중부지방의 양반집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노송과 툇마루, 건물 모서리의 틈으로 보이는 산의 풍경. 뛰어난 건축가의 솜씨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많은 건축가가 이곳의 공간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건물을 재창조하곤 하였다. 그리고 영산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니,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건축적 장소임이 분명하다.

영산암 마루에 한참을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이루지 못한 건축에의 열망, 내 가족의 소사, 하물며 이곳이 배경이 된 영화의 장면까지. 스케치북을 꺼내어 잠시 마당과 나무의 풍경을 스케치하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웃거렸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여기에 올까? 뜬금없이 사시사철 거기에 기거했던 옛 스님들이 부러워진다.

아래로 내려와 사찰의 경내에 든다.

“내 눈에는 양쪽에만 지붕이 있는 극락전보다 날아갈 듯한 지붕의 대웅전이 훨씬 좋던데, 사람들은 '극락전'을 더 좋다고 하데요."

오래전 나를 태워준 운전기사가 큰 카메라를 메고 온 나의 목적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최고崔故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을 애써 찾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그러나 명성에 비하여 규모는 의외로 작고 오히려 소박하다. 이런 작은 사찰에 역사의 최고가 있었다니. 고전의 힘은 묘하다. 발걸음을 늦추고 중얼거렸다. ‘썩어도 준치다.’

미술사가 ‘유홍준’ 교수가 이렇게 서술했다. “가람의 배치가 정연하여 일품이다. 단순한 표정(마알간 느낌)의 대웅전 앞마당과 거침없이 트인 극락전 앞마당의 두 공간의 위계 없는 병렬배치로 생기는 다양성과 활기로 인해 공간 배치의 특이함과 우수함이 돋보인다.” 또한, 건축가 ‘김석철’은 이 마당 둘과 뒷자락의 암자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많은 마당을 예로 들며, 마당이 중심이 되는 우리의 공간감에 대하여 극찬하였다.

내 눈에도 개개의 공간은 작은 편이지만 무척 명쾌하게 보인다. 담과 집이 서로 얽히면서 피안彼岸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도량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얼핏 설핏 보이는 자연에 순응하려는 태도. 다듬지 않은 구조재가 그렇고, 결구 방식 또한 간결하다. 투박한 주초와 그 생김새에 맞춘 기둥의 그랭이질, 담의 허튼 막쌓기는 기술력의 부족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된 것임이 틀림없다. 어느 부분 하나도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 선도적이며, 계몽적이어야 하는 종교 건축임에도 극도로 겸손하고, 은유적인 자세로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부석사에서 느낀 감동도 그런 것이었으니, 두 절에서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막상 이런 인간미 때문이다.

전에 비하여 주변에 상업 건물들이 늘었지만,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소담하고 삶이 묻어 있다. 시주하고 굽이굽이 돌면서 산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찾아드는 도량은 저기 이건만, 어쩌면 그 길과 길에서 만나던 사람들이 곧 종교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절은 더욱이 위엄을 버렸으며, 하물며 만세루같은 걸 지어 현세를 내려다보려는 애정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종교를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보니, 공기나 색깔, 사람들의 표정이나, 나아가 산이나 절도 다 억지 없이 고만고만하고 정이 가며, 삼라만상이 곧 편안하게만 보인다. 혹 그런 세상이 ‘의상대사’와 ‘능인스님’께서 꿈꾸시던 화엄의 세계가 아니었나 생각해볼 따름이다.

몇 장의 스케치와 수십 장의 사진이 남았지만, 봉정사의 풍경을 그림으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늘 자신감으로 오르지만, 매번 수가 죽어 내려간다. 건축, 그림, 글. 오늘도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내려가야 할까 보다. 하지만 훗날 가물가물한 그것을 기어코 그려 내리라는 욕망을 충전하여 다시 오르리라. 40대의 호기 따위는 부러워 않기로 한다. 능인, 의상과 같은 고승들의 체취와 빼어난 옛 건축가의 솜씨가 여전히 무지렁이인 나를 시험하고 단련시켜 주시니 나이가 무슨 문제일까?

 

이종민

◇ 이 종 민 :  ▷수필가 / 건축가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부산문인협회,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회원, 건축사신문 논설고문, 부산일보 집필진, 윤좌 동인 ▷ 저서 『말을 거는 거리』, 『해운대 인생학교』(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