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2-권두칼럼】 지식과 정보는 넘치는데, 지혜는 어디에?
【시민시대2-권두칼럼】 지식과 정보는 넘치는데, 지혜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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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01 17:41
  • 업데이트 2023.02.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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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사)목요학술회 회장 ㈜영광도서 대표이사

55여 년 동안 책과 더불어 살면서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점을 경영하는 경영자로서 많은 사람이 책을 사서 본다면 그 자체가 경영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55여 년 동안 책을 만지면서 책을 판다는 것은 다른 상품을 파는 일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무엇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출판 과정을 거쳐 서점에 선을 보이는 순간까지 책은 단순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과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 해볼 만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후회 없이 해볼 만한 것이 독서입니다. 무궁무진하게 대기하고 있는 것이 책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독서에는 지각이 없습니다. 빠를수록 좋지만 늦어도 누가 탓하지 않습니다.

인류사에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 이름난 문장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의 맛을 알았습니다. 그 자양분으로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여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공과 성취는 얼마나 정성을 쏟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 시작하는 것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애인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지만 책은 나를 기다립니다. 애인은 내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지만 책은 언제든지 가슴을 펼칩니다. 애인은 내게 무언가를 자꾸 요구하지만 책은 그가 가진 영양분을 아낌없이 퍼 줍니다.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방법 가운데서만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라.’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기술은 인간과 관련 없는 보통 기술일 뿐입니다. 단순한 기술에는 인간 사랑이 없습니다. 기술의 최고봉인 핵무기에 인류애가 없는 것처럼 단순한 기술은 파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잡스는 이것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애플 제국은 식민지 백성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래는 퇴계의 독서론인데 마음에 와닿는 글입니다.

 

독서는 산 놀이와 같다고 하는데
이제 보니 산 놀이가 독서와 같네.
낮은 데서부터 공력을 기울여야 하니
터득을 하려면 거기를 거쳐야지
구름 이는 것 봐야 오묘한 이치 알고
근원에 당도해야 시초를 깨닫지.
꼭대기 높이 오르도록 그대들 힘쓰오.
노쇠하여 포기한 이내 몸이 부끄러워라.

 

임진왜란의 영웅, 불멸의 이순신은 무장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나기만 해서 연전연승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지장(智將)이요, 덕장(德將)이요, 선지식인(善知識人)이었습니다. 이순신이 바다를 장악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가운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성대중(成大中:1732∼1812)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입니다. “이순신이 처음 호남 좌수사에 제수되었을 때 곧 왜적이 침입한다는 경보가 전해졌다. 왜적을 막는 것은 바다에 달려 있었으나 공은 그때까지 바다를 방비하는 중요한 부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공은 날마다 포구의 남녀 백성들을 좌수영 뜰에 모아놓고 짚신도 삼고 길쌈도 하는 등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면서 밤만 되면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공은 평복 차림으로 그들과 격의 없이 즐기면서 대화를 유도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바다 구석구석의 소용돌이치는 곳이라든지, 암초 등에 대해 백성들에게 들어서 소상히 알게 되었으며, 또 그것을 몸소 나가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그곳 바다를 모르는 왜군을 맞아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조선 후기 학자 송시열은 그의 손님에게 이순신의 행적을 말하면서 “장수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상 역시 그처럼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순신이 무지렁이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은 이 시대에도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김윤환 회장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Know-how(무엇을 어떻게?)의 시대가 아니라 Know Where(무엇이 어디에?)의 시대입니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쓸모없습니다. 지혜는 딱히 석사, 박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의 승리는 일자무식 백성들에게 얻은 지혜의 산물입니다. 지혜는 곳곳에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입니다. 문밖을 나서면 산천초목,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지혜의 스승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처럼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도, 문밖을 나가면 산재해 있는 지혜의 스승을 알아보는 이도 흔치 않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정보에 매몰돼 있을 뿐 세상에 널려있는 지혜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혜안을 가질 수 있는 능력 또한 독서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지혜가 충만한 계묘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목요학술회 회장, ㈜영광도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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