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77)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0장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⑤
대하소설 「신불산」(377)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0장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2.02 07:30
  • 업데이트 2023.02.01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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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⑤

사무실로 돌아와 긴장도 풀 겸 커피나 한잔 하자는데 서무 진미덕씨가

“과장님, 청장실에서 찾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와? 무슨 일로?”

“비서실장 이야기로는 청장님이 바다축제안내 리플렛을 보고 난리가 났답니다. 이기 뭐 아아들 장난도 아니고 도떼기 시장도 아니고 정신머리 사납다고 당장 과장님 들어오시랍니다.”

아아, 그렇구나! 순간 과장, 계장, 담당 세 사람의 머리에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꼼꼼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구청장에게 행사의 주요 내용이나 홍보전단의 안을 행사계획서와 함께 결재 받은 뒤에 과장 책임 하에 송도해안가가 터져나가도록 인원동원에 대성황을 이루라는 지시에 긴급히 행사내용을 추가하고 그 홍보전단의 결재를 받지 않은 것이었다.

“갑시다!”

설득을 하려면 힘깨나 들겠지만 어차피 한번은 혼이 나야 될 일이었다. 열찬씨의 등 뒤로 수첩을 들고 따라나서는 계장과 담당의 뒷모습을 보는 나머지 직원들의 눈에 염려의 빛이 가득했다.

“어이, 문화관광과 잘 나가는 선수들 너거 이 리플렛 좀 봐라. 바다그림그리기, 풍선공예, 마임이 다 뭐꼬? 송도해수욕장이 어른들 해수욕하는 곳이지 어데 아아들 장난치는 데가?”

금테안경을 번뜩이는 김모구청장의 눈가에 잔뜩 짜증기가 배어있었다. 조금만 더 화가 나 입을 실룩이며 눈을 찡그리면 좀체 풀기 힘들 정도로 엄청 뒤가 길며 잘못하면 오래오래 미움을 받는 소위 말해서 찍히는 신세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고 계장과 정 주사가 간이 콩알만 해져 구청장의 입만 쳐다보는데

“청장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 두 해 만에 송도해수욕장 1, 2사장에 해수욕객이 가득한 대성황을 이루어 옛날의 명성을 찾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우선은 그간 태풍으로 백사장이 씻겨나가고 송도3대명물인 케이블카, 출렁다리, 다이빙대가 다 없어진 데다 그나마 명맥을 잇던 데이트 족과 신혼여행팀, 또 송도의 전성기를 추억하는 중장년세대들도 언젠부턴가 송도에는 물가가 비싸고 특히 회 값은 엄청난 바가지를 쓴다는 소문이 돌아 차츰 발길을 돌리는 추세인 것입니다.”

“뭐라꼬? 이 과장, 지금 날 교육시키는 거가? 내가 어데 그거 모르는 사람이가!”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동댕이치는 구청장의 눈썹과 입술이 심히 씰룩거리는 것을 보며 간이 콩알만 해진 고명석 계장이 황급히 열찬씨의 옆구리를 찌르는데

“청장님, 조금만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지금 부산의 해수욕장의 문화랄까, 역할을 보면 해운대해수욕장은 국내외의 부유층이 드나드는 외식, 숙박, 쇼핑 등 모든 면에서 세련되고 고급스런 한국대표해수욕장으로, 또 광안리해수욕장은 비록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꿈과 열정이 가득한 젊은이들이 전국에서 모여 라이브음악, 생맥주를 비롯한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고 일반시민들은 비교적 물이 깨끗한 송정해수욕장으로 몰리는 3강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 송도해수욕장과 다대포해수욕장은 그저 이름만 남은 잊어지는 해수욕장인 것입니다.”

“이 과장, 요즘만 빨리 말하소. 내 시간이 없단 말이요.”

자신의 차분한 설명에 상당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 구청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송도에 인파가 다시 넘치게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어린이들, 그러니까 미래의 잠재고객인 그들이 굳이 해수욕이 아니라 백일장이든, 사생대회든, 풍선공예나 마술, 마임이나 황토팩, 모래공작은 물론 회나 통닭 같은 주변의 먹을거리에 대한 추억을 쌓아 그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5년 후, 10년 후, 그 이후라야 지금 한창 기반구축을 하고 있는 송도연안정비의 완공과 맞물려 조금씩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라꼬? 이 사람아 그라문 인원동원, 아니 관광객유치는 자신 있단 말이지. 알았어요. 내 지금 만날 사람이 있어 나가는데 좌우간 책임진단 말이지, 그렇지?”

뚫어질듯 열찬씨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예, 작년대비 한 30% 증가는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묘책은.”

“뭐! 묘책이라고?”

양복을 입던 구청장이 동작을 멈추고 바라보는데

“예, 바로 감천신항에 많이 드나드는 러시아사람들을 유치하는 것입니다. 송도가 좁든, 쇠퇴했든 시베리아 동토에서 온 그들에게는 송도만한 낙원이 없고 나폴리가 따로 없지요. 지난 4월쯤인가 그 추운 날씨에도 가까운 송도를 찾은 러시아남녀 네 명이 해수욕복만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모래사장을 거닐기를 반복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신기해 걸음을 멈추거나 자동차를 세우고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젊은 사람들은 휘파람을 휙휙 불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 기왕이면 예쁘고 늘씬한 금발미녀 몇 명을 교섭해서.”

“에이, 싱거운 사람. 하긴 어째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니 좌우간 이 과장의 발상하나만은 참 기발하단 말이야.”

비로소 표정이 펴지며 빙긋 웃더니

“나는 가네. 좌우간 나는 이 과장만 믿네. 내일 송도해수욕장에서 보세.”

구청장이 나가자 고 계장과 정 주사, 밖에서 엿듣던 비서아가씨까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과장님, 참 용하시요. 과연 불을 끄는 데는 물밖에 없는 지라...”

“뭐, 그 정도까지로 사실 나는 말이야.”

계단을 내려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웃던 고 계장이

“사실은요?”

또 기대가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자

“송도에 관광객, 아니 입욕(入浴)객이 결정적으로 줄어든 것은 백사장이 좁아진 것보다도 다이빙대 같은 3대 명물이 없어진 것보다도 바닷물의 수질이 오염되어 뭔가 비위생적이고 찜찜하다는 선입관 때문이지. 이제 수질이 많이 좋아졌다고 구청장과 위생과장이 날마다 자랑하고 3급수에서 2급수로 판정된 수질검사를 대서특필하느니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 효과적인 홍보방법이 하나 있지.

그게 딴 게 아니라 해수욕장개장식날 지방자치댠체장인 구청장이 직접, 아니 부인과 나란히 해수욕복을 갈아입고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이지, 맨날 송도해수욕장수질개선대책을 추궁하는 의회의장님이랑 의원들 내외도 또 담당 위생과장과 계장과 담당의 내외도.”

“에이-”

뜰을 가로질러 문화관광과의 계단을 오르던 계장이 찔끔하며

“아이구 과장님내외는 모두 팔등신에 미남미녀지만 우리 같은 작고 못 생긴 사람들은 우짜라꼬요?”

눈을 흘기면서도

“좌우간 발상 하나는 기발합니다. 존경합니다.”

문을 들어서는데

“아이구, 잘 해결된 모양이지요. 우리 계장님 얼굴이 다 펴진 것을 보니.

서무 진미덕씨가 밝게 웃으며 맞이하는데

“먼저 갑니다. 과장님.”

차마 퇴근을 못 하고 과장 오기만을 기다리던 공보계장, 광고물계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하나둘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아이구, 십년감수했네. 진 여사, 거 하동횟집에 회나 큰 거 하나 시키소. 우리 금방 나간다고.”

“아니, 고 계장. 우리 세 사람 팔자가 지금 한가하게 하동횟집에나 갈 팔잔가? 나는 내일 개막식 사회시나리오도 읽어보아야 하고 또 고 계장이랑 정 주사도 최종 점검이 여간 아닐 텐데.”

“아이구, 과장님. 어데 이 길로 퇴근하잔 말입니까? 어차피 먹어야하는 저녁인데 이왕이면 횟집에서 소주반주를 곁들이고 매운탕으로 마무리하면 내일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허허, 참. 그러고 보니 어째 헐출한 것 같기도 하고.”

“맞습니다. 과장님, 저는 지금 뱃속에서 빨리 밥 안 들어온다고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정 주사나 내나 밥이 아니라 술 들어오라는 소리겠지. 건실한 우리 고 계장님이야 밥 들어오라는 소리일 테고.”

셋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던 진미덕씨가

“계장님, 셋이 잡수려면 중짜로 시키지요. 대신 과장님 좋아하는 시원소주나 실컷 잡수시게.”

“아니, 사람이 넷인데 중짜가 다 뭐요?”

“넷이라니요?”

“아니, 진 여사는 사람 아니요? 과장, 계장, 주무, 서무 우리 문화라인 넷이 같이 다 가야지요.”

“허, 이걸 어쩌나? 계장님, 하필이면 오늘 집안제사랍니다. 함안 조(趙)씨 가문의 맏며느리가 우째 빠지겠습니까? 마 세 분이 가이소. 회는 큰 거로 시키더라도.”

둘이 설왕설래 하는데

“과장님, 걱정 마이소!”

만면에 웃음을 띤 사진기사 김종현씨가 문을 쾅 밀고 들어왔다.

“과장님 잘 모신다는 기 뭐 별거 있습니까? 그까짓 회나 술이 조금 남는 것은 조금도 걱정을 마십시오. 이 김종현이가 있다 아입니까?”

남녀 다섯이 허허 웃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8월 5일. 송도바다축제 개막일 다행히 날씨가 좋아 아침부터 불볕이 내려쬐였지만 열찬씨를 비롯한 서구청관계자와 김두열 회장과 손상주 총무를 비롯한 송도번영회 측을 포함한 주최 측은 볕이 뜨겁고 불쾌지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피서객이 해수욕장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