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유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이후 남양유업은 비도덕적 기업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동종업계에서 남양유업은 비도덕적 네거티브 마케팅을 일삼는 회사로 악명이 높다. 창업자 외손녀인 황하나의 마약 관련 사건도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현재까지 소비자 불매운동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어쨌건, 남양유업은 1990년대 중반에 출시한 ‘아인슈타인 우유’가 센세이션에 가까운 대박을 터뜨리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미 과대광고라고 판명된 DHA 함량 덕이었을까? DHA는 사람의 뇌, 대뇌피질, 피부, 망막의 주요 구조적 성분인 오메가-3 지방산이다.
상표는 소비자에게 그 상품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의 상징적 존재이다. 더구나 DHA는 뇌의 주요 구성 성분이다. 가히 ‘아인슈타인 우유를 마시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미지가 형성될 법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미지와 본질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약하다. 겉모습으로 속마음까지 규정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깔끔한 외모에 형형한 눈빛의 사내가 의외로 조선시대적 남성우월주의 세계관을 피력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필자는 남녀평등은 물론이고 모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인종 국적을 막론하고 차별을 반대한다. 이 점에는 페미니스트다. 한데도 어쩌다 만난 선후배나 동기들은 동양고전에 관심하고 논어나 성리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근거로,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종종 오해한다.
현대인도 미신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인류학자 J.G.프레이저(1854~1941)가 주창한 유감주술(類感呪術)이다. 이는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발생시키고, 결과는 원인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주술로, 인류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타자가 홈런을 치고 홈으로 들어오면, 선수 대부분이 더그아웃에서 나와 홈런타자와 손바닥을 짝짝 맞춘다. 홈런타자의 행운을 자신들도 갖고 싶음에서이다. 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자주 앉았던 대학 도서관 좌석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명문대에 합격한 자녀를 둔 아파트는 평균 거래가보다 높다.
샐러리맨의 신화인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박정희 왕조의 공주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이도 유감주술의 한 변형이 아닐까? 강자에 대한 ‘선망적 동일시’다. 강자를 선망하고, 그를 따르면 자신도 강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유감주술! 그러나 역사는 증명한다, 강자는 강자편일 뿐이고 결코 약자편이 아님을. 우리 옛 풍습에 가뭄이 들면 보름에 여인네들이 산에 올라 집단 방뇨를 했다. 방뇨나 강우나 물이 내리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비는 지표면이 뜨거워져서 수증기가 상승하여, 상층의 차가운 공기를 만나 구름이 형성되어야 내리는 것이다.
행운을 바라는 유감주술로 ‘아인슈타인 우유’를 마신다면, 목적하는 행운이 ‘머리가 좋아짐’이라면 틀리고, 건강이라면 맞다.
사람의 뇌 무게는 대체로 성인 남성의 평균은 1,400g, 여성은 1,250g쯤 된다. 뇌의 무게는 키에 비례하며 지능이나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 아인슈타인의 뇌 무게는 얼마였을까? 평균보다 200g이나 가벼운 1,230g이었다! DHA가 다량 함유된 ‘아인슈타인 우유’를 마셔 아무리 뇌를 키워봤자, 머리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책가방이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타고난 건강체였으며, 장수에는 행운도 따랐다. ‘세상을 바꾼 수술, 그 매혹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 『메스를 잡다』(아르놀트 판 더 라르/제효영)에 아인슈타인의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신 외과의사 루돌프 니센은 1948년에 아주 유명한 환자를 만났다. 예순아홉 살이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평생 담배를 피우고 절대로 운동하는 일이 없었지만, 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 즈음 체중이 조금 불었는데, 잘 알려진 대로 건강에 안 좋은 식습관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다.
아인슈타인은 니센에게 일 년에 몇 번 정도, 복부 오른쪽 윗부분에 통증이 느껴지는데, 통증이 한 번 시작되면 며칠씩 지속되고 대부분 구토 증상도 동반된다고 이야기했다. 담석증으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최근에 통증이 나타났을 때 집 욕실에서 기절했다고 니센에게 말했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담석증 증상이 아니었다.
신체검사를 진행하던 중에 니센은 복부 중앙에서 맥동脈動을 느꼈다. 혹시 복대동맥에 대동맥류가 생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깜짝 놀랐다. 아인슈타인이 욕실에서 겪은 증상, 즉 갑작스런 통증과 기절은 복부대동맥류 급성질환 증상이기도 했다. 예상이 맞을 경우, 수술을 받지 않으면 환자는 금방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날 복부대동맥류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고 위험률도 감수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1948년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 수술은 1951년 파리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니센은 아인슈타인의 복부를 열고 수술을 진행했다. 담낭은 담석도 없고 정상적이었지만, 복대동맥은 대동맥류가 발생하여 지름이 10센티미터 크기로 부풀어 있었다. 지름이 7센티미터인 대동맥류를 치료하지 않고 두었을 때 예상되는 생존 기간의 중앙값은 고작 9개월이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크기가 10센티미터였으니 1~2년 내로 사망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문제가 된 혈관이 아직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니센은 실험적인 방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혈관을 셀로판으로 감싼 것이다. 니센이 택한 방법은 이전에도 몇 차례 활용되었으나, 당시는 아직 장기적인 결과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때였다.
아인슈타인이 수술을 받고 몇 년이 더 흐른 후에는, 대동맥에 문제가 생긴 부분을 비닐 튜브로 대체한다. 곧, 인공 혈관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10센티미터 크기로 부푼 대동맥을 셀로판으로 단단히 감싸진 상태로 7년을 더 살았다.
셀로판으로 혈관을 감싼 니센의 덕택으로 아인슈타인은 7년을 더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아인슈타인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현대의학에서 밝혀진 복부대동맥류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건 작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 사람의 생사관일까? 아인슈타인이 죽음을 맞는 자세는 대선사의 의연함에 못지않다.
1955년 4월, 아인슈타인은 다시 복통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구토 증상도 동반됐다. 그의 나이 일흔 여섯이었다. 모든 증상이 담낭염으로 추정될 만한 상황이었으나, 복부대동맥류 급성질환일 것으로 우려됐다. 1955년에는 대동맥류도 인공 혈관 수술로 치료할 수는 병이 되었다. 이 수술 경력이 있는 의사가 아인슈타인에게 수술을 권유했다. 아인슈타인은 거절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건 멋없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 “내 몫을 다 살았으니 이제 가야 할 때가 됐다. 우아하게 끝낼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하여 모르핀을 투여 받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17일 밤에 세상을 떠났다.
숨진 다음 날,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는 세계적인 과학자의 시신을 부검했다. 그 결과 폐에서 흡연자 특유의 특징이 발견됐고, 동맥경화와 비대해진 간, 파열된 복부대동맥류가 관찰됐다. 그로 인해 복부에 최소 2리터의 혈액이 고여 있었다. 담낭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뇌 무게는 1,230그램으로, 성인 남성의 평균보다 200그램 가벼웠다.
<작가/본지 편집 위원,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