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산사 화엄
서규정 시인
천 년 고찰 낙산사가 휩싸이는 걸 보았다
화엄이 아니라 화염이었다
강릉에서 군대 생활을 하던
친구가 놀러 오라 해서
사나흘 머물다 오던 길에 보았지
불길이 솟아오르자
어떤 스님 하나는 불 속으로 뛰어들며
모든 경전의 기본이 되는, 화엄 아니
반야심경만큼은 꺼내야 하지 않겠느냐
불나비가 되더라도
건질 것 하난 건져내야 스님이라고 하지 않겠느냐
외쳤다니
사람이 나비
불나비 떼가 사람 형상인지 몰라도
나비의 춤은 낙산사에서 비롯된 거 아니던가
그래 화엄경은 불 속에서 나온 불나비 경이겠으나
엊그제 TV를 보다 보니
말끔하게 단장되어 버렸다
붉은 노을이 뜨는 해보다 더 아름다운 것과
폐허가 스님들의 피난처이며 본거지인 것을

◇ 서규정 시인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2001 해양문학상, 2010년 부산작가상, 2016년 최계락 문학상 수상
▷시집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외
※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