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80)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0장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⑧
대하소설 「신불산」(380)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0장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⑧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2.05 06:40
  • 업데이트 2023.02.02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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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⑧

전날 피서객 하나가 다치고 주최 측이 곤욕을 치렀든 말든 수많은 인파가 꾀이는 해수욕장인 만큼 마치 모래밭에 쓴 이름이 지워지듯 누가 하나 다쳤다는 소문은 금방 사그라지고 이튿날에는 다시 황토풀장에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수많은 남자들이 북적거리면서 젊은이들끼리 힘자랑을 하는 밀어내기 레슬링의 승패에 따라 연방 함성이 터지곤 했다. 입소문만큼 빠른 것이 없는지라 올해는 송도해수욕장이 뭔가 달라졌다는 소문을 타고 인근 사하와 영도, 멀리 범일동이나 당감동, 양정쪽에서도 피서객이 몰려오고 러시아 사내들도 수십 명이나 몰려와 대부분이 피둥피둥 돼지처럼 살찐 희붉은 몸매를 자랑하듯 드러내고 껄껄거리는 사이 서너 명 금발미인들이 끼어있어 만인의 눈길을 끌어 제법 이국적, 국제적 분위기를 풍겨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기왕 가는 피서라면 휴가 중인 직원들도 가급적 송도해수욕장에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하면 좋겠다는 구청장의 말이 있기도 해서 아이들은 물론 노부모까지 모시고 멀리 해운대나 금정, 혹은 김해 장유 쪽에서 온 직원들이 마치 눈도장이라도 찍듯 열찬씨나 문화관광과직원들에게 손짓을 하며 아는 척을 했다.

백사장에서 파라솔대여나 매점을 하는 새마을부녀회와 같은 관변단체 직원 외에도 구청의 모든 행사에 늘 관심을 가지는 각동의 통반장이나 유지들도 대거 참석해 대낮부터 매점의 파전이나 통닭, 생선회 등으로 술판을 벌이고 한잔 하자며 구청직원들을 손짓하는지라 열찬씨도 남부민1동 팀들과 잠깐 어울렸다.

작년보다 여러모로 아기자기하고 활기찬 해수욕장이 되었다고, 그중에서도 특히 저녁 8시 부터 새벽 2시까지 <벤허>, <로마의 휴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카사블랑카> 같은 4편의 추억의 명화상영이 정말 좋고 바다축제는 물로 송도해수욕장 자체를 한껏 업그레이드시킨 것 같다는 서수양 의원의 말에 열찬씨의 기분이 한껏 고조되기도 했다.

벌거벗고 물에 뛰어드는 해수욕장과 거추장스런 한복에 고깔까지 쓰고 사물놀이를 하는 풍물패나 고미술품을 파는 문화장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신통하게도 맨발에 반라의 구경꾼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다가 어디에선가 꼬깃꼬깃 꿍친 지폐를 꺼내 골동품이나 서화를 사는 경우도 간혹 있어 문화장터연합회 권 회장이 약간의 사례를 하기로 하고 초청한 각설이 꾼의 깡통소리와 사설이 한층 구성졌다.

많이들 팔았냐는 열찬씨의 인사에 다들 그럭저럭 일당은 건진다면서 이게 다 과장님 덕분이라며 마시던 잔을 황급히 비우고 술잔을 건네는 총무의 코끝이 빨갛게 칠한 각설이의 코끝보다도 더 붉었다. 늘 술에 전 평소의 딸기코에 마치 가로등에 스위치를 꽂듯 아침부터 강소주를 적잖이 들이부은 모양이었다.

 

그럭저럭 축제 2일차의 행사들이 끝난 오후 다섯 시경 고 계장과 정병진씨를 거느린 열찬씨가 저녁 일곱 시부터 시작되는 노래자랑 예선을 치를 2사장의 가설무대 앞의 의자에 앉아 이벤트사 사장과 함께 이미 바닷물이 차가워질 시간임에도 여전히 물속을 들락거리며 황토풀장에서 온몸에 황토반죽을 바르고 낄낄거리거나 밀어내기 레슬링에 골몰하는 아이들과 젊은이를 바라보며 어제의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릴 때였다. 마침 열찬씨 일행을 발견한 서구부녀회장과 총무가

“아이구, 과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새마을마크도 선명한 앞치마차림으로 아이스크림 네 개를 가져와

“감사합니다. 회장님. 매상은 좀 올라가는지요?”

“예. 올해는 방문객이 늘어 꽤 짭짤합니다.”

엄지를 올려 세우며 가는 걸 보며 막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벗기는데

“큰일 났다!”

“무대에 물이 찬다! 무대가 넘어진다!”

갑자기 무대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터졌다. 아이스크림을 팽개친 열찬씨 일행이 무대 뒤로 달려가니 과연 가설무대뒤 쪽의 받침대를 파도가 덮쳐 무대의 밑바닥을 적시면서 무대 앞쪽의 백사장과 연결된 나무다리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구, 망했구나! 망했어.”

이벤트사장이 황급히 무대뒤쪽에 쌓아둔 소품과 의상들을 치우는데 모조리 물에 흥건히 젖어 한숨을 푹푹 내쉬는데

“정 주사, 임해행정센터에 연락해 우선 입욕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도록 하고 건설과와 암남동에 비치된 비상용품을 모래주머니를 가지고 건설인부들을 동원시키도록 하세요.”

고명석 문화계장이 말하는데

“건설인부들 소집할 시간들이 어디 있노? 지금 당장 해수욕장에 있는 전 구청직원들은 즉시 가설무대 앞으로 모이도록 방송을 하세요.!”

열찬씨가 황급히 소리치는데

“이런 오늘이 밀물이 제일 센 사리 날인줄 몰랐구나! 과장님 너무 당황하지 마이소. 한 시간쯤 밀어붙이다가 슬며시 파도가 물러날 테니 우선 급한 대로 모래주머니로 무대기둥들을 에워싸면 되겠네요.”

지금은 물러나 건설업을 하는 암남동 출신 김종대 전의원이 열찬씨를 안정시키고 어느 새 스무 명도 넘게 모인 구청직원들과 암남동에서 가져온 마대에 모래를 채워 무대와 다리받침대 부분을 에워싸는데 금방 구청의 도로관리용 노란 차에 모래주머니와 말목을 가득 실은 건설인부 여남은 명이 도착하자 일사천리로 물막이공사가 진행되었다.

어느 새 그 넓은 바다에 사람 흔적이 없고 백사장에만 드문드문 산책객이 보일 뿐 황토풀장의 어린이들까지 거미처럼 흩어져 주변이 휑하게 비어 버렸다. 가까스로 혼란스런 정신을 수습한 열찬씨가 주변을 빙 둘러보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눈빛 하나와 마주쳐 가슴이라도 찔린 듯 움찔하는데 바로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김모구청장이었다.

순간 어떻게 이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여 위기를 벗어날까 간이 콩알 만한 열찬씨 대신

“아이고 청장님, 많이 놀라셨지요?”

언제 나타났는지 김두열 번영회장과 손상주 총무, 송도어촌계장이 구청장을 맞이하며

“마침 오늘이 사리날인 것을 내가 깜빡했네요. 그렇지만 걱정 마이소. 인자 금방 물이 빠질 겁니다.”

“아이구, 내 송도에서 60평생 고깃배를 몰아도 오늘이 사리인 것을 깜빡했네. 인자 나도 어촌계장 물러나야겠네요.”

구청장을 안심시키는데

“야아, 물이 빠진다!”

“그래, 무대 기둥이 보인다!”

다시 무대 뒤에서 함성이 터졌다.

파도는 정말 내가 언제 그렇게 성을 내었느냐는 듯이 마치 새색시처럼 조용조용 뒤로 물러서고 있었고 그런 잔잔한 바다 위로 어느새 낄룩낄룩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활동사진을 상영하다 끊어졌던 토키가 되살아나듯 문득 주변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 열찬씨가 찬찬히 무대주변을 둘러보니 방금 전에 소금물에 흠뻑 젖으며 쌓은 모래주머니들이 마치 을지연습이 끝난 시가지의 진지처럼 높다란 모래언덕이 되어 덩그러니 무대다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서는데

“이제 내일은 괜찮을 겁니다. 파도가 오늘의 반도 안 될 것이고 영 안 올 수도 있지요.”

안심시키려는 번영회장을 바라보다 구청장과 눈길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청, 청장님!”

딱히 할 말이 없어 빤히 올려다보는데 역시 빤히 쳐다보던 구청장이

“이 과장, 어째 위태위태해. 만사가.”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픽 웃는데

“호사다마. 원래 큰일에는 작은 사고가 나는 법이랍니다. 이기 다 송도바다축제가 대성공할 액땜이겠지요.”

“허허, 그 참 무슨 액땜이 날마다 한 건씩인고?”

“그렇게 말입니다.”

번영회장과 주고받던 구청장이 고개를 홱 돌려 열찬씨를 찾더니

“이 과장! 어쨌든 알아서 하소. 난 당신만 믿소.”

못 이긴 척 번영회장을 따라 백사장을 빠져나갔다.

 

축제 3일째 마지막 날.

김두열 송도번영회장의 초청으로 구청장, 부구청장과 국장 셋에 보건소장까지 모여 반주를 겸한 저녁식사자리에서 였다. 잔뜩 상기된 번영회장이 작년보다는 확실히 뭔가 달라져 하루 몇 백 명이나 천 명 안팎에 그치고 그나마 볼거리가 많은 7, 8월 개장 기간 두 달 겨우 몇 만 명을 채우던 내방객이 올해는 10만 명을 넘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모든 게 바다축제를 한층 다양해진 프로그램으로 젊고 활기찬 변화를 이끌어낸 구청장님의 덕분이라는 김두열 회장의 말에 김형호 구청장은 이 모든 것이 김두열 회장님과 송도번영회의 덕분이라고 칭송하고 번영회장은 무엇보다도 구청장을 비롯한 서구청공무원들의 의욕적인 추진과 참여 덕분이라고 서로를 추켜세우더니 그중에서도 특히 열찬씨를 비롯한 문화관광과 직원의 노력 덕분이라는 맞장구로 저녁식사 분위기가 마치 연말연시의 단합대회처럼 화기애애해 쨍그랑 소주잔을 부딪치며 “위하여!”를 외치는 건배소리가 이어졌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