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수컷은 영역을 위해 싸운다.
잔뜩 흐린 날이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찾았지만 아이들은 없었다. 나만 빼고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골목에는 내가 대장이었고, 녀석들은 조금만 심심해도 내게 쪼르르 달려왔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다가온 일곱 살의 외로움은 의외로 컸다. 나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식이네 집까지 살폈다.
아, 거기에 있었다. 히히덕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먼저 들렸다. 식이네 집은 골목 맨 끝에 있고 조금은 음침해서 아이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것도 밖이 아니라 방 안에서 노는 것 같았다. 당장 달려들어 가고 싶었지만 고작 일곱 살 골목대장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그렇게는 낯이 간지러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혼자 있는 것은 자존심 지키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며 식이네 집을 몇 바퀴나 돌았다.
결국 나는 살금살금 그의 집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동태를 살피려고 했다. 그때였다. 후다닥! 날개를 치며 달려드는 것은 그 집 거위였다. 나는 그만 비명을 질렀고, 거위에게 쫓겨 도망을 쳤다. 그런데 그놈의 거위는 뒤뚱거리며 잘도 따라왔다. 그 바람에 식이와 아이들이 방 안에서 쏟아져 나왔고 식이가 거위를 말려주었다. 하찮은 거위에게나 쫓기는 골목대장의 체면은 형편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그날이 다가왔다. 마냥 피하고만 싶던 그날이 다가왔다. 이듬해 학교도 들어간 여덟 살짜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황이었다. 누가 임명한 것도 아닌 일인자 지위를 놓고 한판 결투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그런 일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물어볼 일도 아니었다.
학교는 입학식과 더불어 이미 영역 다툼이 시작된다. 생활권이 장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면 단위에서 장터 출신들은 그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있었다. 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또는 재를 넘어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우선 장터에 들어서면서부터 기가 죽는다. 그래서 덫에 걸린 짐승 모양 이리저리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장터 골목대장 출신이라 쉽게 일인자가 되었다. 간혹 한두 해 늦게 입학한 덩치 큰 녀석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그때마다 나의 다부진 체격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절로 주눅이 들어 꼬리를 내려버렸다.
해서 나는 주먹 한 방 쓰지 않고 반의 일인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다닌 학교는 한 학년에 두 반이 있었다. 옆 반 영역의 일인자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영역이 겹치는 곳에서 둘의 일인자를 원하지 않았다. 옆 반의 일인자도 장터 골목대장 출신이었다. 그는 신 장터였고 나는 구 장터였다.
둘 가운데 하나를 가리고자 하는 아이들의 기대가 점점 고조되면서 나를 압박해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학교를 파한 뒤 학교 뒤 공터에는 당사자 둘뿐만 아니라 같은 반의 응원군 몇몇도 따라 나왔다. 나는 우리 편 아이들에게 혹시나 저쪽에서 반칙을 쓰면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작전을 짜고 나갔다.
둘은 각각의 응원군을 뒤로한 채 서부 영화 총잡이처럼 공터 한가운데로 주먹을 쥔 채 나섰다. 서로 간의 아무런 적대감 없이 그저 아이들의 요구 때문에, 아니 일인자라는 추상의 관을 위해 대결장에 나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쉽게 주먹이 나가지 못했다. 으스스 바람이 불었고, 멀리서 수탉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긴장된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간이 점점 숨 막혀 왔다. 그때 상대편 응원군 한 명이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쌌고, 그것을 본 옆에 녀석이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 뒤 옆 반 일인자 녀석이 전학을 가는 바람에 나는 자연스럽게 일인자가 되어 있었다.

◇ 박 명 호 : ▷장편 『가롯의 창세기』 ▷소설집 『우리집에 왜 왔니』 『뻐꾸기뿔』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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