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96) 갈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96) 갈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3.02.05 09:50
  • 업데이트 2023.02.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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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송현]

추웠다. 급강하한 기온은 몸뿐 아니라 쇠까지 얼어붙게 했다. 동장군도 쉼이 필요한 법, 뒤이어 몇 날은 햇볕이 따뜻했다. 녹았겠지, 욕실 수도꼭지를 켰다. 아뿔싸, 벽붙이 수전 이음매에서 세차게 물이 분출한다.

“물이 새면 교체하면 돼.” 동네 철물점에 가서 테이프와 고무 밴드를 주문하자, 주인과 노닥거리던 안면 좀 있는 선배가 알은체를 한다. 물론 교체하면 된다. 그러나 품과 비용이 많이 든다. 물이 새는 이음매 부분에 테이프를 매매 감고, 고무 밴드로 동이면 당분간은 견딜 성싶었다. 재료값만 5만원 들 일을 5천원으로 해결했다.

2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초원에서 멀찌감치 사자를 보았다. 이것저것 생각 없이 냅다 도망친 자들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왜, 무엇을, 어떻게’를 생각하며 머뭇거린 자들은 모두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우리는 도망쳐 살아남은 조상들의 DNA를 간직한 후예이다.

「약 137억 년 전(2013년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를 반영한 우주의 나이는 137억9,800만 년±3,700만 년)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물질과 에너지는 등장한 지 30만 년 후에 원자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자는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약 38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약 7만 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 후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

하라리의 주장을 믿는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이는 과학계의 정설이니 ‘팩트’로 봐야 한다. 곧, 현재 인간이 우주와 인류에 대해 알아낸 지식의 최전선이다. 그러나 이 지식을 개인은 체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믿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학습과 생각을 전제한다. 불행히도 인간은 의식주 해결에 거의 전념하면서 즐기기도 해야 하니 학습 시간은 부족하고,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가급적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 없이 쾌차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지인 중에 그런 이가 있다. 건강검진 과정에서 위에서 암세포를 발견했다. 대학 병원으로 가서 암 진단을 재확인하고, 수술을 권유 받았다. 교수의 처방을 물리치고, 말기 암 덩어리를 수술 없이 식이요법 등의 비책으로 말끔히 떨어냈다고들 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을 찾았다. 그의 조언과 자신만의 비법으로 멀쩡히 암세포를 몰아냈다. 3년여 전 지인의 설명이다. 가능한 일일까?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는 지인의 말은 믿는다. 그는 줄담배를 피웠다. 승용차에도 몇 갑이 쟁여져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한데 담배를 딱 끊었다. 모르면 몰라도 그가 암 진단 외에는 담배를 끊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없었다. 담배가 삶의 일부분이 된 골초가 담배를 끊을 때는 그만한 변수가 돌출해야 한다. 암 진단을 받고 그만큼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수술 없이 비책으로 쾌차? 의심스럽다.

「아보 도오루 교수의 <면역혁명>이라는 책에 보면 암 환자가 왜 증가하고 있는지에 관한 재미있는 설명이 나온다.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너무 잘 찾아내기 때문이고, 너무 센 치료를 먼저 쏟아 붓기 때문이라는 거다. 원래 우리 몸속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기가 작은 암들이 생기고 또 저절로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우리 몸에서 면역력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덕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CT나 MRI 등을 이용해서 불필요하게 아주 작은 암까지 찾아내고는 거기에다가 강도 높은 치료까지 시행하는데, 그렇게 되면 암세포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라 정작 건강한 세포들까지 모두 영향을 받아 파괴되고 이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지게 되고, 오히려 암이 맹위를 떨치게 될 기회를 마련해주는 셈이 된다는 게 그의 이론이다.」(김현정/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물리법칙은 인간의 식견으로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생사에 관해서는, 드러난 행적이 초라하더라도 저명인보다 더 식견이 높을 수 있다. 『삼국유사』「사복불언蛇福不言」 대목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조송원 작가

과부인 어머니가 남편 없이 사복을 낳았다. 사복이란 열두 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해 뱀처럼 기어 다니는 아이란 뜻이다. 어머니가 죽자 사복은 원효에게 장례를 부탁했다. 원효는 시신 앞으로 가서 빌었다.

“태어나지를 말지니, 죽는 것이 괴롭구나. 죽지 말지니, 태어나는 것이 괴롭구나.” 사복이 말했다. “말이 번거롭다” 그래서 원효가 다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괴롭구나.”

원효는 물론 사복도 죽고 삶을 알 뿐, 어찌하지는 못한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