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07)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4장 축제와 길놀이⑥
대하소설 「신불산」(407)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4장 축제와 길놀이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3.06 07:05
  • 업데이트 2023.03.03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축제와 길놀이⑥

“그래요?”
밝아지는 열찬씨의 표정을 보며 고 계장과 정 주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화인으로서의 격조 높은 삶을 추구하는 대세인지라 가족문화, 음식문화, 여가문화, 공연문화, 관람문화 등등 <문화>자가 안 들어가는 데가 없고 <문화>자를 붙여 안 그럴 듯한 데가 없지요.

그렇다면 전 아미1동사를 개조한 <문화의 집>이 형식적인 작은 도서관, 영화와 비디오상영 공간, 문화예술창작실로 구성해 하루에 10명의 이용객도 없이 담당직원과 공익요원만 배치해서 종일 하품만 하는 현실을 문화관광과에서는 언제까지나 방치할 것이며 청내 곳곳에 방치되다시피 한 서화를 비롯한 각종 미술품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굴러다니게 할 것이며 그 힘든 예산으로 마련한 서대신동 꽃마을 구유지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구민들의 정서적 안정과 휴식을 주는 푸른 문화공간으로 가꾸어야 됨에도 문화를 담당하는 문화관광과에서는 일언반구 반응이 없으니 이게 될 말입니까? 이열찬문화관광과장은 아무 생각이 없단 말입니까?”

고명석 문화계장이 청장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빠트리지 않고 재연하는데

“과장님, 이게 일도 일이지만 혹시 기자들이 문화의 집 활용도가 낮고 그냥 방치되었다고 기사라도 쓰면 큰일 아닙니까?”

장수환 공보계장은 또 다른 걱정을 제기했다.

“자, 천천히 차나 한 잔 하면서 예기합시다. 아무튼 <구덕골문화예술제>를 치르느라 수고 많았고 결과에 대한 평판이 호의적이라 다행입니다. 여러분의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은 물론 조만간 청장님께서 우리 과의 과 회식을 베풀어 노고를 치하할 것입니다. 직원 여러분 수고 많았어요!”

의자에서 일어나 직원들에게 소리치고

“우리 고향에 울어도 시집은 가야된다는 속담이 있는데 힘이 들어도 우리가 할일은 해야지요.

자, 문화계에서는 정주무가 <구덕골 문화예술제> 개최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사이 고 계장님이 <문화의 집> 이용확대, 그러니까 활성화방안과 꽃마을구유지 문화시설조성계획의 구상을 해주시고, 참 굳이 문화계뿐이 아니라 다른 계에서도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제시해주시고 그리고 또 그 청 내에 굴러다닌다는 서화와 미술품도 효율적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참 그러고 보니 문화계 업무가 많기도 많네.”

열찬씨가 커피를 마시며 뜸을 들이는데

“어디 그 뿐입니까? 우선 민속예술관의 구덕망께터다지기와 아미농악의 시연회도 다가오고 또 노래연습장의 주류 판매와 비디오방 단속도 해야 되고 참, 그보다도 지금 전국의 매스컴에 난리가 난 남포동, 광복동의 불법오락실, 그러니까 사행성 도박장이 우리 구 충무동쪽으로 번진다고 하니 성남호텔, 금강호텔을 비롯한 오락실도 단속해야 되고 좌우간 고민이 철때반죽입니다. 과장님.”

“그렇구먼. 그래도 우리 고 계장님, 정 주무를 비롯한 문화계 멤버들이 초조맹장들이 아닌가? 우선 우리 진미덕서무만 해도 가히 천하무적 여장부에 섬세함까지 겸했으며 시 잘 쓰는 박기홍씨에 문학석사 김영희씨...”

불만이 가득한 고명석 계장을 다독거리던 열찬씨의 말이 순간적으로 끊어지고 원탁은 물론 과 전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며 모든 시선이 마흔여덟 올드미스 김영희씨와 열찬씨에게 쏠렸다.

높은 학력에 비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배려하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모든 언행이 도무지 상식을 벗어나 하루 종일 혼자 중얼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마치 육지와 동떨어진 울릉도처럼 독불장군 외톨이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직원들이 조바심을 내는 것이었다.

“다음 공보계는 우리가 만족하게 생각하는 축제결과를 출입기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간파해서 우선은 우리 생각과 정반대의 부정적 기사가 나지 않아야겠고 다음은 축제가 많이 달라지고 발전했다는 우호적인 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정(動靜)난에 청장님의 사진이라도 한 컷 나왔으면. 마침 얼마 전에 기자간담회를 했으니 아직 약발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장계장님이 눈치껏 알아서 하시고. 다음 광고물관리계!”

장수환 공보계장에서 눈을 떼며 무료히 앉았던 광고물관리계장을 바라보자

“예, 과장님!”

일곱 살이나 더 많은 김권시 계장이 점호시간의 병사처럼 큰소리로 대답하며 수첩에 적을 준비를 하는데

“플래카드를 비롯한 불법광고물철거에 고생이 많지요? 아무리 열심히 정리해도 길바닥에 뿌려지는 불법전단과 오토바이가 뿌리는 사채대부와 퇴폐시설의 명함광고 또 전봇대, 전신주에 붙은 광고물을 철거하느라고 우리 계장님이랑 직원들 손톱 자랄 틈이 없이 손톱 밑이 새까만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고 많지요?”

“아, 아입니더. 문화계 축제에 비하면 그 기 어데 일입니까? 그냥 조반석죽 밥 먹듯이 일상이지요.”

“예, 계장님, 나이도 많으신데 현장에 너무 자주 나가지 말고 힘들면 쉬어가면서 천천히 하십시오. 참, 광고물계에서도 <아름다운 간판선정사업>과 광고업자교육준비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지요?”

“예. 이제 축제도 끝나고 했으니까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초에 광고업자교육을 하면서 <아름다운 간판선정사업>도 같이 시달할 작정입니다. 물론 각동 게시판과 <서구소식>에도 게시하겠지만 아무래도 광고물제작업자들에게 경쟁을 유도해야 좋은 작품도 들어오기도 하고 앞으로 무조건 크게 제작하고 큰 글씨로만 채우는 거칠고 투박한 간판들이 줄어들겠지요.”

“예,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아름다운 간판선정사업>은 계획서를 결재 올리기 전에 초안을 저에게 먼저 한번 보여주시면 합니다.”

“안 그래도 우리 박순용주무가 게획서 작성이 어렵다고 과장님이 한 수 지도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뭐 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 박순용주무 오늘 오후쯤 초안 잡은 것 가지고 오세요. 훈수라도 좀 들어줄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가까스로 과 업무 전체를 한 바퀴 돌아 숨을 고르며 식어빠진 찻잔을 들어 올리는데 고명석 계장이 말했다.

“그럼 과장님, 이따 저랑 <문화의 집>에 한번 가보실랍니까? 일단 현장을 보아야 아이디어가 나올 것 아닙니까?”

“그럽시다. 이따가 아니라 계장님이 직원들에게 급한 업무지시만 하고 바로 나갑시다.”

“예.”


부민동 법조단지와 대학병원의 중간쯤 되는 아미우체국에서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소방도로의 중간쯤에 있는 <서구문화의 집>은 원래 아미동 1가 지역을 관할하는 아미1동사무소건물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I. M. F의 영향으로 기구축소, 인원감축, 예산절감이 당면과제이던 시절 서구에서는 당초 18개동의 체제에서 인구가 적은 부용동과 부민동을 또 아미1,2동과 토성동, 충무동을 각각 부민동, 아미동, 충무동으로 통합하여 15개동체제로 전환하면서 아미1동사무소가 빈사무실로 남게 된 것이었다.

비어있는 아미1동사무실이 활용방안을 찾다 민선시행 이후 들불처럼 번지는 문화회관, 문화의 집 등 문화자만 붙으면 무언가 그럴듯한 시대조류에 맞추어 일단 문화의 집으로 이름을 붙여 엉겁결에 탄생시킨 시설이었다.

그런데 졸지에 동사무소가 없어진 아미동1가 사람들의 불만을 무마시킬 겸 개원한 이 문화의 집이 개소되는 날 옛 동사무소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에 개소식에 참석, 시설을 둘러본 통반장과 주민들은 동사무소와 향토예비군중대가 들어있던 지하1층 지상2층의 건물을 이리저리 칸막이를 하고 이름만 거창한 문화의 집에 들어선 작은 도서관, V. T. R상영실, 소극장 및 전시실, 강의실, 음악감상실, 문예창작실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주민들에게 특별히 이용할 일이 없는,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니 멀쩡한 동사무소 없애고 별 시답잖은 공간만 잔뜩 만든 것만 같았다.

아무튼 구청장, 구의회 의장은 물론 지역구국회의원과 교육지원구청장까지 참석한 성대한 개원식을 마치고 7급 여직원 한 명을 직제에 없는 문화의 집 담당, 직원들의 우스개로 <문화의집 원장>으로 배치하고 공익요원 한명을 붙여 도서를 대여하고 반납 받거나 음악감상실, V. T. R상영실을 운영했지만 처음 며칠간 호기심으로 몇몇 주민이나 행인이 들여다볼 뿐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

담당자와 공익요원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소설책이나 뒤적이는 판이라 공익요원 중에서 문화의 집에 근무하는 공익은 마치 지리산의 일출을 보듯이 3대가 적선한 사람이나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이란 말이 공공연히 돌기도 했다.

하다 못 해 문화의 집에 걸맞은 강의를 개설키로 하고 노래교실과 문예창작교실을 열었는데 노래교실은 너무 많은 중장년의 주부들이 몰려와 성황을 넘은 북새통을 이루고 문예창작교실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한 형국의 극과 극을 이루고 말았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