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3-권두칼럼】 3월의 연서(戀書) - 나여경
【시민시대3-권두칼럼】 3월의 연서(戀書) - 나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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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08 11:48
  • 업데이트 2023.03.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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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여경 / 소설가

3월입니다.

허공 향해 뻗고 있는 도로변 나무줄기에서 물기 품은 새순 기운이 느껴지고, 담 모퉁이 돌아 부는 바람에 훈기가 묻어납니다. 자연은 어김없이 봄 향연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음악 듣기를 즐기는 어떤 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전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저도 전율이 오더군요. 여전히 그런 말랑한 감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클래식과 재즈, 카운터테너 등 음악에 대한 조예와 상식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그 감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대화 중에 드러난 사회적 재난과 약자에 대한 그의 남루한 생각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사회적 환란을, 또 타인의 재난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을 가리켜 그는 ‘내일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타인의 재난을 보며 만일 저 일이 ‘내 일’이었다면… 이라고 마음 아파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단어랍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을 벌레라고 칭하다니요!!!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그가 이룬 부와 감성이 모래 위의 집처럼 부실하게 느껴져 돌아오는 길이 씁쓸했습니다.

위정자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정쟁에 신물이 나 있고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긴 말이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개개인이 가진 선한 품성이 모여 격조 높은 사회를 이루고 국가로 번져나간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말은 위험하고 품어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일이란 알 수 없어 어느 날 무슨 일이 내 환란으로 닥칠지 모릅니다. 내 이웃의 환란은 절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지진에 세계인이 놀라고 마음 아파합니다. 한국전쟁 때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내준 형제국가 튀르키예의 소식에 우리나라는 긴급구호대를 급파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구호 지원 약속 또한 쇄도하고 있습니다. 앙숙 관계였던 튀르키예로 그리스가 인력과 장비를 보내고 이스라엘 역시 적대국 시리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팬데믹으로 단절됐던 지구촌이 하나로 단결되는 모습처럼 느껴져 감동적입니다.

국가적 손익계산서가 조금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같은 땅 지구를 나눠 쓰는 이웃 나라 를 향한 따뜻한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사람 옆에 사람을 두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했습니다.

삼월의 첫날은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3‧1절입니다. 나의 희생으로 다음 세대가 이어질 수 있다는 너무나 평범한 진리를 알았던 선인(先人)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총궐기했던 날입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기도로 오늘의 우리가 존재합니다.

나여경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타인을 위한 공감과 배려를 잊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갖는 의무이며 약속입니다. 그래서 면면이 지켜온 사회, 국가이지 않습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지인이 카톡으로 보낸 사진 한 장을 봅니다. 화사한 분홍 자태의 홍매화 모습입니다.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고 약속 잘 지키는 홍매화를 보며 자연의 반대인 문화를 만들며 사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지독한 한파와 폭설의 계절을 지나 환한 봄꽃 세상을 맞았습니다. 단절의 마스크를 벗고 타인을 배려하는 탄실한 감성으로 밝은 웃음과 따뜻한 마음 나누는 날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연서를 읽는 여러분의 건강과 안녕을 빕니다.

<소설가, (사)목요학술회 사무처장>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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