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말의 성찬, 지방의회②
할 수 없이 열찬씨가 그 미끌미끌한 검은 껍데기를 씻고 토막을 내어 냄비에 담고
“자, 인자 간을 해서 끓여보소.”
해도
“앞으로 절대로 물메기는 사절한다 카이소.”
영순씨가 고개를 반쯤 돌리고 겨우겨우 국을 끓이던 생각이 난 것이다.
“아이구 과장님. 제가 그까짓 생선 몇 마리 가지고 큰 선물이라 카겠습니까? 자, 보이소!”
자신 있게 트렁크를 여는데
“아, 이것 봐라!”
열찬씨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너무 낡아 시꺼멓게 색이 변하고 군데군데 구멍이 난 헌 멍석과 가을걷이한 벼를 담아 농지세를 낼 가마니를 달거나 돼지를 사러온 상인이 끙끙거리며 둘러매던 대저울과 추를 비롯한 잡다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놓는데
“어라? 우리 종현씨가 크게 한 건 하는데”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우르르 몰려오던 고 계장과 정병진씨, 박기홍씨, 진미덕씨가 빙 둘러서서 바라보며
“야, 이 퀘퀘묵은 멍석은 어데서 구했노?”
정병진씨가 하나 둘 펼쳐보는데
“그래 이 멍석을 우리 고향에서는 덕석 또는 덕시기라 카는데 이 사각형은 주로 곡식을 널거나 동빼기 즉 윷놀이를 할 때 솔잎으로 윷판을 그려서 쓰는 것이고 이 둥근 것은 주로 부인네들이 앉아 놀 때나 여름철에 마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 쓰는 것이지. 아주 작은 것은 아예 맷방석이라 카기도 하지.”
설명을 하다
“아, 남바가치!”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나무바가지 하나를 들고 열찬씨가 탄복을 했다.
“요새도 이런 기 다 있더나? 이 나무바가지는 주로 쇠죽을 끓이거나 풀 때 쓰는 거지. 표준말로 뭐 이남박이라 하던가? 간혹 웅덩이나 도구나락을 벤 도구에 미꾸라지를 잡을 빼 물을 푸기도 하고.”
둥둥 걷은 종아리와 옷은 물론 얼굴과 머리카락에 까지 회색의 펄을 가득히 덮어쓰고 미꾸라지를 잡던 기억을 떠올리는데
“다 깨진 바가지는 뭐 할라고 가져왔노?”
고명석 계장이 오래 되어 반질반질하기는 하나 한 쪽 귀퉁이가 깨어져 실로 꿰맨 바가지 하나를 들어 보이며 방금 어디 던져버리기라도 할 기센데
“잠깐! 버리면 안 돼. 이 바가지야말로 물을 떠오거나 쌀을 씻거나 알밤이나 박상 같은 군것질감을 담거나 심지어 오줌 싼 아이가 채이를 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갈 때 들고 가던 것이지. 여자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살림살이기에 이렇게 깨진 자리를 다 꿰매서 쓰겠노?”
하고는 깨어진 틈에 대고 냄새를 킁킁 맡으며
“지금의 플라스틱바가지 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향긋한 냄새가 나지. 특히 이 깨어진 틈에서 나는 냄새는 얼마나 향긋하고도 은근한지 고향생각, 엄마생각이 절로 나는 향수(鄕愁) 그 자체지. 자 한 번씩 맡아봐.”
하며 정병진씨에게 건네주며 돌아가며 냄새를 맡게 하고
“마누라가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다는 말이 우째 나온지 아능교? 옛날 남존여비사상이 횡행하던 시절 일부종사 절대로 바꿀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는 하늘같은 남편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는 것도 부족해 술이나 마시고 노름을 하고 그 위에 계집질까지 해도 차마 면전에서는 따지거나 대들지도 못 하던 아낙네들이 이 손때가 반질반질한 바가지를 정지바닥에 엎어놓고 부지깽이로 탕탕 두르리며 에라이, 빌어먹을 인종아, 허패에 바람이 든 말종아, 죽도록 뚜리리 패고 똥물에 당가도 시원찮을 목자(目子)야, 오뉴월 염천에 숨도 한 번 못 쉬고 염병에나 걸려죽을 인간아, 이렇게 온갖 욕을 주절거리며 분을 푼다고. 그래도 분이 다 풀리지 않으면 숟가락으로 남편의 얼굴을 손톱으로 핥키기라도 하듯 박박 긁는다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것을 바가지 긁는다고 하지.
아마 이 바가지도 어쩌면 종현씨 부친이 젊어서 술 마시고 바람피울 때 모친이 부지깽이로 두들기고 숟가락으로 박박 긁다가 이렇게 조각이 나고 그래도 자식새끼 낳아 산다고 차마 남편을 버리거나 도망도 갈 수 없어서 호롱불 아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늘에 실을 꿰어 꿰맨 건지도 몰라. 자, 진미덕 여사, 혹시 오늘 퇴근때 이 바가지 가지고 가서 밤새도록 바가지 한 번 긁어볼 생각은 없나?‘
“아이구, 일 없심더. 우리 조 서방은 평생 마누라 속 썩이는 일이 없는 모범신랑, 부처님 가운데 동가리 아입니껴.”
진미덕씨가 손사래를 치는데
“밥 묵고 합시다. 우리 과장님 이야기는 재마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 꺼내놓으면 도무지 끝이 없어.”
고명석 계장의 투정에
“그래 밥 묵으러 갑시다. 오늘은 우리 종현씨 좋아하는 물메기탕이나 먹든지.”
식당으로 향하면서
“그래도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하고 끝을 내야지. 술 먹고 노름하고 계집질하는 남편이 아무리 밉다 해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 오죽하면 저녁 굶은 시어머니라는 말처럼 시어머니의 미운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지.
고초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가 더 맵더라는 말처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당달봉사 3년의 시집살이에 차마 시어머니에게 대들 수도 없어 남해안이나 제주도의 아낙들이 외진 곳에 모여 옹달샘이나 커다란 수조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바가지를 띄우고 빙 둘러 앉아 빨래방망이로 마치 시어머니를 때리듯 온갖 욕, 아니 설움 받던 사연을 하나하나 꺼내 읊으며 돌아가면서 바가지를 두드리는 것을 물치기, 수박치기, 바가지치기라고 했다고 하네.”
이제 식당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서
“그런데 말이야. 6.25때 제주도에서 온 해녀 출신의 할머니 하나가 영도 봉래산 기슭에 움막을 짓고 살며 저녁마다 물위에 띄운 바가지를 치며 중얼중얼 액막이를 하거나 소원을 빌면 희한하게도 효험이 좋아 나중에 유명한 점쟁이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는데 그게 나중에 감천동의 그 유명한 태극도가 되고 지금의 대순진리회로 발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아직도 감천2동 산비탈과 우리 아미2동 까치고개에 일부 남아있는 태극도 말이야.”
“야, 그 참 신기한 이야기, 아니 특종감이네. 근데 과장님 방금 그 말씀 진짜로 맞기는 맞습니까?”
또 고 계장이 따지는데
“왜 신흥종교연구가 탁명환씨가 쓴 <한국의 신흥종교>라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백퍼센트 정확하다고는 못 해도 아마 대충 맞을 거요.”
“아니지요. 그래서는 안 되고 아주 정확해야지요. 티끌만큼도 거짓이 없는.”
“아이구, 저 칼 같은 성질 좀 보소. 그러니까 자주 머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 내 다시 책을 찾아보고 정확히 이야기 해주겠지만 우선은 믿거나 말거나 정도로 해주게.”
마침 김이 무럭무럭 나는 물 메기탕이 들어왔다.
새로운 밀레니엄, 새천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부풀게 했던 2000년이 저물고 있었다. 마지막분기인 4/4분기의 절반을 넘기고 12월초 의회가 개원되고 행정사무감사가 시작되었다. 구청은 아연 긴장에 휩싸이고 간부들은 언제 어느 의원들에게 불려가 질책을 받을지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문화관광과가 많이 달라졌다거나 이열찬 과장이 정말 열심히 한다는 공감을 얻었는지 다행히 그해 의원들의 주요공격목표는 열찬씨를 비켜가고 대신 송도연안개발과 해수욕장정비를 맡은 건설과, 청소용역민간위탁을 시행하는 청소과의 용역비산정이 정확한지를 놓고 집중포화가 퍼부어졌다.
해당과장과 국장은 낮의 행정 감사장에서는 잔뜩 움츠린 낮은 자세로 ‘예, 의원님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예, 적극 검토토록 하겠습니다.’ ‘예. 의원님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며 굽실거리지만 그 <잘 알겠다.>와 <적극 검토>, <반영시키도록 노력>이 결코 반드시 실행되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절대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답변하는 간부나 수용하는 의원이나 이미 훤히 알고 있었다.
하지 않을 것을 할 것처럼 말하고 그걸 알면서도 믿는 척 하는 두 얼굴, 그야말로 말의 성찬(盛饌)이 바로 풀뿌리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의회의 실체요 아이러니였다. 몇 달 동안이나 예상 질문과 답변서를 작성하고 혹시라도 거기에서 빠진 돌발질문이 나올까봐 행정감사는 물론 예산심의를 받는 <해당부서장>인 과장의 등 뒤에 각종 통계와 현황을 들고 껌 붙듯이 붙은 계장과 실무자들은 실소를 금치 못 했다.
비단 지방의회뿐이 아니라 국회, 심지어 유엔총회마저도 지상의 모든 의회라는 것은 결국은 마음에 없는 답변이나 발표를 하고 그걸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 하는 말잔치, 언어의 성찬(盛饌)을 넘어 성찬(聖餐)이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잠시 사무 감사나 예산심의가 정회된 휴식시간에는 느긋하다 못 해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방금 전의 멋진 질문에 스스로 만족하는 의원을 찾아가
“의원님의 질문은 너무나 정곡을 찔러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살짝살짝 찔러주세요. 이러다가 사람 죽겠습니다.”
간부는 지레 죽는 상을 하며 한껏 의원을 추어올리고
“과장님의 답변이 하도 정확하고 용의주도해 더는 할 말도 없었습디다. 우리도 뭐 질문 같은 질문이라도 해야 지역구민에게 체면이라도 서지. 과장님, 다음부터는 좋은 재료를 좀 주세요.”
서로 맘에 없는 추어올리기를 반복하고 점심시간에는 마치 대치중인 적군처럼 피아를 명확히 구분해 각기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된 저녁에는 계장과 실무자들이 그날의 답변요지와 후속조치, 내일의 예상 질문과 답변을 작성하는 동안 주요한 지적사항이 예상되는 간부들은 무슨 과 무슨 과장, 무슨 업무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알려진 <의원님>을 찾아가 손을 비비고 술대접을 하면서 이튿날의 의회를 준비하곤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