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18)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6장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①
대하소설 「신불산」(418)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6장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3.21 05:50
  • 업데이트 2023.03.21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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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

청장님 찾으셨습니까?”

매일이다시피 드나들지만 단 한 번도 편안하거나 만만하기 않던 구청장실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들어가 열찬씨가 꾸뻑 절을 하고 멀뚱히 서있는 사이 고명석 계장이 낮고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예산안 심의가 끝났다면서. 문화관광과는 별로 묻지도 않고 쉽게 끝나더군. 과계장이 능력이 있어선가, 아니면 내년도 문화관광과가 별 사업도 없는 별 볼일 없는 부서라서 그런가?”

칭찬인지 힐책인지 모를 한 마디를 툭 던진 김형호 구청장은 허리를 젖혀 의자에 푹 파묻히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전에 있었던 의회의 예산심의과정을 모니터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실과장이 의회회기 중이 가장 힘든 다는 것은 의원들의 질문공세로 코너로 몰려 부하직원들이나 구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되어 어쩌면 아내나 가족이 보고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자기의 직속상관이면서 근무성적평가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국장, 부구청장, 구청장이 모니터로 보면서 혀를 끌끌 차다 못 해 간부회의나 회식 때 힐책 비슷하게 거론하는 것이 다반사이기도 했다.

ⓒ서상준

사람을 불러놓고 짐짓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예산심의 중에 무엇을 크게 잘못해서 구청장의 심기가 불편한 것이 아닐까 열찬씨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공직생활 20년 가까이 오로지 구청에서만 근무해 상사의 눈치를 살피는데 이골이 난 고명석 계장은 저렇게 눈을 지그시 감은 구청장이 이번엔 또 어떤 난감한 요구나 어려운 사업을 들고 나올지 조마조마한데

, 앉아서 차나 한 잔 하지. 그간 고생 많았는데.”

눈을 뜨고 자세를 고쳐 앉더니

이제 연말까지 문화관광과에서는 별 할일도 없겠구먼. 과계장은 물론 직원들까지 홀가분하게 연말분위기를 즐기겠지?”

고명석 계장의 걱정하던 정곡을 찔러오는데

. 뭐 각종 축제나 행사, 수목원 조성 등 사업구상도 좀 하고 또...”

열찬씨가 주절거리자

그러니까 특별히 할 일이 없다는 거 아닌가? 그게.”

구청장이 자세를 고쳐 앉자

청장님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저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 한 일이라면.”

고계장이 수첩을 펴 받아 적을 준비를 하는데

, 지시라기보다는 지난 일요일 모처럼 텔레비전을 보니까 동구에서 KBS 전국노래자랑을 하더구먼. 지난달에는 해운대구에서 하고 또 지지난 달에는 동래구도 하고 말이야.”

, 예 그야 방송국에서 전국 여러 지방을 돌아가면서...”

허둥대는 열찬씨에게 고명석 계장이 눈을 찡긋하면서

알겠습니다. 청장님, 우리 구에도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지요?”

고명석 계장이 순발력을 발휘하자

내가 뭐 개인적으로 유치하고 싶기보다는 부산 서구, 그러니까 송도해수욕장이나 공동어시장, 임시수도 같은 유명한 시설을 전국적으로 알리는데 전국노래자랑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을 것 이란 말이야. 다른 구에서 관광명소는 물론 인삼이나 사과 같은 지역특산물을 홍보하듯이 우리구의 특산물을 알려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자는 것이지. 말하자면 전국수산물의 40%를 위탁 판매하는 공동어시장의 각종 생선, 특히 대표어종인 고등어를 알린다든지 말이야.”

다시 눈을 지그시 감는데

청장님, 제가 알기로 한 십 년 전인가 구덕실내체육관에서 한번 한 일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아직 한 구에 두 번씩 전국노래자랑을 유치한 곳이 없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열찬씨가 1991년경 전임 변모구청장이 민선이 아닌 관선구청장으로 있을 때 유치했던 노래자랑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말하는데

그래 한 번 한 자치단체는 절대로 안 된단 말이지? 10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구청장이 미간을 좁히며 빤히 바라보자 열찬씨의 가슴이 툭 내려앉는데

, 아닙니다. 청장님. 어떤 명분으로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문제가 되겠지요.”

고 계장이 황급히 사태를 수습하고

좌우간 한번 알아보고 중간보고를 드리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조아리자

우리 이 과장님 생각은?”

구청장의 물음에

, .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럼 그리 알겠네.”

결국은 또 아무런 대책도 없는 일을 떠맡고 물러나는데

고 계장은 무슨 용뺄 재주가 있다고 전국노래자랑을 유치한다고 했소? 당신이 무슨 용가리 통빼도 아니고 KBS 전국노래자랑 팀에 아는 사람, 아니 처삼촌이라도 있단 말이요?”

계단을 내려오며 열찬씨가 볼멘소리를 하자

과장님,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나서서 그렇긴 하지만 청장님을 하루 이틀 모신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그건 죽어도 안 되는 일이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보다 라이벌 전임 변구청장시절의 노래자랑은 왜 꺼내는 겁니까?”

웃으며 말하지만 가시가 있는 것 같아 잠자코 사무실로 돌아와 말없이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아버렸다. 머쓱해진 고 계장이 담당 정병진씨와 무어라 수군거리더니 고 계장은 동구, 해운데, 동래, 북구 등 부산의 각 구청에, 정병진씨는 고향 고흥을 비롯한 근래 전국노래자랑을 유치한 구청의 문화 팀에 전화를 걸어보더니 퇴근 무렵이 되어

저어, 과장님.”

수첩을 든 둘이 먼저 원탁에 앉아 열찬씨가 오기를 기다려

연말이 되어서 아무래도 연내에는 유치가 어려운데다 전국노래자랑자체가 행정구역변경으로 새로 생긴 자치단체나 전국적으로 알려진 대규모 축제나 행사, 하다 못 해 청사신축이라도 한 곳에 유치하는 판에 전에 한 번 유치한 적이 있는 서구에서 다시 유치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전국노래자랑의 유치는 방송국의 담당PD나 간부보다는 수십 년간 진행을 맡아온 송해씨가 영향력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낮에 있었던 일이 찜찜한 지 공손하게 이야기하는지라

잠깐, 내 뭔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한데. 가만 보자. 그러니까, 뭐 우리 셋이 소주나 한 잔 하지.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날 듯 말듯 한 생각이 혹시 소주병 따는 소리와 동시에 떠오를지 아나?”

하며 책상을 치우고 셋이 나란히 조개구이집에 둘러앉아 아직 연탄불도 올라오기 전의 써늘한 배추뿌리를 안주로 소주를 한 잔씩 마시면서

그렇지, , 알았다!”

열찬씨가 무릎을 탁 치자

뭔데요? 과장님.”

고 계장이 반색을 하고 정병진씨가 새로 소주를 붓는데

아주 간단해. 사회자 송해씨가 실권자라면 송해씨를 우리 서구 사람, 그러니까 서구를 무시 못 할 사람으로 만드는 거지.”

예에?”

지난 번 전국노래자랑 때 내가 기획계장이었는데 기획감사실장 부재중에 실국장회의에 들어가서 들었는데 이북사람 송해씨가 6.25피난 시절에 송도에 자주 찾아와서 케이블카도 타고 구름다리도 건너고 아나고회에 소주를 마시며 향수를 달랬다는 실토를 들었다고 하더구먼. 그러니까 KBS방송국에는 형식상 신청서류만 내고 송해씨가 예비심사나 녹화를 하는 현장으로 찾아가 우리가 부산 서구에서 왔다기보다는 송도해수욕장에서 꼭 전국노래자랑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간청하는 거지. 어때?”

글쎄요.”

고명석 계장이 반신반의하는데

전 괜찮은 생각 같아요. 어려운 일일수록 엉뚱하거나 어쭙잖게 풀린다는 말이 있듯이 송해씨가 정말 송도에 애틋한 그리움이 있다면 단번에 답이 나올 수도 있지요. 그리고 어차피 지금은 연말이고 큰 기대도 않는 일이니 밑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 나서보지요. 바람도 셀 겸.”

바람도 셀 겸?”

고개를 갸웃거리던 고 계장이

과장님, 한번 붙어봅시다. 까짓 것!”

, 소리 나게 술잔을 부딪혀왔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