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20)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6장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③
대하소설 「신불산」(420)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6장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3.23 06:10
  • 업데이트 2023.03.22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③

 

아까의 스탭이 감탄을 하며

잘 알았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시랍니다. 연말이라 올해 안에는 안 되고 구정전후에 녹화를 하고 3월 안쪽에 방송이 되도록 하시겠답니다. 예비심사, 무대설치 등 구체적 협조사항은 나중에 방송국의 실무자가 따로 연락을 한답니다.”

하며 실무자인 정병진씨의 명함을 받아 돌아섰다.

 

, 성공이다!”

그러게. 뜻이 있으면 이루어진다고 했지?”

역시 과장님 발상이 통했습니다.”

셋이 주고받는데

밥 먹고 합시다!”

나이든 김권시 계장이 커다랗게 소리치자

그래요. 나는 배보다 술이 고프네.”

열찬씨가 일행을 끌고 나오다

고 계장, 청장님 휴대폰 아니 비서실장 전화번호 있나? 유치에 성공했다고 전화나 하지. 청장님 걱정하실 텐데.”

말하자

아니지요. 일단 밥이나 먹고 밤 열 시나 열한 시쯤에 하지요. 그래야 극적효과가 크지요. 고생했다는 소리도 듣고.”

그런가.”

차로 식당을 찾다 급한 대로 빵과 우유를 하나씩 먹고 전에 구청직원들이 산업시찰을 가다 들렀던 곡성의 섬진강 어귀에 있는 참게 탕 집에서 느긋이 저녁을 먹으며 유치성공의 건배를 여러 차례 돌리고 밤 열 시가 넘어 전화를 넣자

수고했네. 내일 내 방으로 와.”

잠자리에 들었는지 간단히 끊었다. 이튿날 <전국노래자랑유치에 따른 준비사항>이라는 간단한 보고서를 만들어 고 계장과 정병진씨를 데리고 청장실로 들어가니

수고했네.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녔는가?”

김형호 구청장이 악수를 하며 일일이 어깨를 두드려주어 기분 좋게 계단을 내려오는데

바로 이 맛입니다.”

뭐가?”

냉정한 일벌레 우리 구청장님에게 칭찬 한 번 듣는 것이 쉬운 줄 압니까? 그저 가문의 영광인 줄 아이소.”

그런가?”

 

11월 말에서 12월 말까지 근 한 달에 걸친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와 구정질문까지 끝나고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1228, 한해가 마무리되는 종무식을 불과 사흘 앞두고 마침내 열찬씨와 과원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준비한 <서구문화의 집 민속생활전시공간>이 김형호 구청장과 간부, 구의회의원들과 관변단체원들의 초미의 관심 속에 문을 열었다.

 

소박하고 고풍스럽게 꾸민 서너 평의 방의 창호지로 바른 형 무늬가 연속된 여닫이문을 열면 노랗게 콩물을 들인 장판위에 동그란 둘레 판에 옹추발을 비롯한 놋으로 된 국그릇 밥그릇에 수저가 놓이고 그 옆에는 화로와 문갑과 문방사우가 놓이고 또 한 쪽에는 엉뚱하게 놋요강이 놓이고 벽에는 암수 한 쌍의 닭이 아홉 마리의 병아리를 거느리고 종종걸음을 치는 횃대 보와 그 아래로 비어져 나온 치마꼬리와 옷고름, 요 이불을 얹어놓은 시렁과 문갑위에 놓인 채경과 노리개와 바늘과 실, 골무, 가위가 담긴 바느질상자, 천장에 매달린 작은 벌집이나 연밥처럼 생긴 갓집을 보며 관람객들은 푸후, 실소를 터뜨리거나 와아, 환성을 지르기도 했다.

물론 당초 이 사업의 발단이 된 하영혜 작가의 지점토공예품 초가집과 아이들의 일습이 방구석 한 쪽에 자리 잡았지만 이제 주객이 전도되어 하나의 소품처럼 보였다.

 

또 옆의 부엌에 설치된 부뚜막과 아궁이와 커다란 조선 솥에다 살강 위에 얹힌 놋그릇과 사기그릇과 뚝배기, 살강아래의 기명통과 옹기 독, 반쯤 불이 붙은 부지깽이와 부뚜막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인형을 보며 또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바깥부분에는 맷돌과 절구통, 떡치는 안반과 떡메를 배치하고 한 쪽에는 쟁기와 써레, 보습, 괭이, , 호미, 도끼, , 도리께, 대소쿠리가 놓이고 물레도 하나 자리 잡았다.

열찬씨가 직접 엮은 이엉으로 지붕을 이고 사촌형 상찬씨가 보내준 용마름으로 마감한 조그만 초가집모형의 광 앞에는 역시 열찬씨가 직접 땋은 미끈(짚으로 꼰 멜빵)을 단 지게가 앙증맞은 바지게를 매달고 기대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관람객의 눈길을 끈 것은 홀 한가운데에 놓인 주막집을 재현하는 돗자리와 평상과 그 위에 놓인 개다리소반과 술이 담긴 호로병이었다. 마침 열한시가 넘어 한창 배가 고플 시간이라

아이고, 진짜 주막이네. 막걸리나 동동주 한 사발이 있었으면.”

아니, 파전이나 오징어무침은 어떻고? 아니지, 아니지. 누런 호박 속을 긁어 만든 호박전은 또 어떻고?”

내사 그런 술상보다 예쁜 주모나 있었으면 좋겠다. 옛날 영화를 보면 술잔을 잡는 척하며 주모의 손을 잡거나 반쯤 열린 저고리 틈으로 가슴을 훔쳐보는 재미가 또 얼마라고!”

구의원을 비롯한 남자관객들이 침을 흘리자 눈짓으로 각동 부녀회장 몇을 불러 한쪽 구석에서 소곤거리던 서구부녀회장이

청장님과 의원님들이 원한다면 주막을 못 열 것도 없습니다. 30분 후에 서구문화의 집 주막, 아니 아미동 까치고개주막의 문을 열 계획이니 여러 과객들께서는 많이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말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인근 부민동과 아미동, 충무동의 부녀회장과 회원들이 금방 이것, 저것 취사도구를 들고 들어와 이내 치직치직 파전을 붙이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에서 오징어를 삶아 썰고 인근의 슈퍼에서 막걸리와 소주상자가 실려 오자

주모, 그 막걸리 한 병에 파전하나가 얼마요?”

우리는 저 호로병에 막걸리를 넣어서 오징어회랑 먹읍시다.”

이미 주모가 된 구 부녀회장은 물론 제 가끔의 동 부녀회장에게 주문을 하는데

의원님들, 각동 회장님들 많이 출출하겠지만 조금만 참으시고 먼저 민속생활전시공간의 오픈행사나 하고 술추렴을 하도록 하십시다. 구청장님의 간단한 인사말씀만 듣도록 하겠습니다.”

열찬씨와 직원들이 나서 주막의 평상과 주변에 대충 앉히고

, 김형호 구청장님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

하고 이동식마이크를 넘겼지만 한창 지짐을 굽느라고 치직거리며 기름방울이 튀는 주방의 소음에 한참동안 미간을 찌푸리다 소리가 낮아지자

먼저 연말의 바쁜 일정 중에도 참석해주신 이용수 의장님과 여러 의원님, 각동장과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의 회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서구문화의집 민속생활전시공간은 아미1, 2동이 통합되면서 개원한 구 아미1동사의 문화의집 이용도를 높이고자 독서실 등 여러 가지 시설을 확장, 변경하면서 우리 이열찬 문화관광과장의 아이디어로 조성한 시설입니다.

이 과장이 직접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지개와 쟁기 등 여러 가지 농기구, 또 여러 직원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놋그릇과 멍석을 비롯한 생활도구에 가과장이 옛 기억을 더듬어 서툰 솜씨로 짠 이엉 등으로 만든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그럴듯한 모습을 보고 지금 우리 구에서 전 직원은 물론 의회와 일반구민들의 의견까지 받아서 조성하려는 서대신4동 꽃마을 구유지 구덕산등산로에 조성할 휴식과 레저를 겸할 문화시설에도 이와 연장선에서 좀 더 확대된 뭐 민속박물관이랄까, 생활관 뭐 지금 이 전시시설을 확장한 시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누구보다도 고생이 많은 이열찬 문화관광과장과 우리 문화관광과직원들에게 여러분, 박수를 한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뜻밖에 치사, 아직 단 한 번도 없던 아랫사람에 대한 박수를 유도하자 좌중에서 요란한 박수와 함께

이 과장님 고생 많았어요.”

구의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는데

제가 뭘요? 우리 직원들 모두가 자기고향에서 온갖 것들을 다 가져와서 된 건데. 그리고 무엇보다 청장님의 배려와 지도가...”

직업공무원이면 누구나 피하지 못 하는 그놈의 눈치 밥이랄까, 아부근성으로 삽시간에 분위기가 썰렁해지는데

여러분, 들던 잔들을 잠시 멈추어주십시오.”

벌써 호로병의 술을 기울이고 막걸리사발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을 제지하며

이홍수 서구의회의장님께서 오늘 축사를 준비해오셨는데 시간관계상 여러분과 함께 건배를 하면서 대신하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모두 잔을 높이 들어주시고 정지에 있는 부녀회장님들, 아니 주모님들도 잔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열찬씨의 신호에 따라

, 또 이거 너무 긴장되네. 좌우지간 한 해 동안 고생했고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열찬 과장님과 직원여러분 고생 많았고 김형호 청장님 감사합니다.”

일일이 눈을 맞추며 좌중을 살핀 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위하여!”

복창도 우렁차게 건배사가 끝나자

욕 봤다. 아나, 한 잔 해라!”

김모구청장이 모처럼 친숙한 언양사투리로 열찬씨에게 술을 권하고

감사합니다.”

열찬씨가 다시 잔을 권하는데

나는 됐고.”

구청장이 잔을 받아 고명석계장을 찾는데

이과장, 수고했어요.”

이번에는 의장이 잔을 건네고

이 주모는 참을 수가 있나?”

서구 부녀회장도 마치 각본에 쓰기라도 한 것처럼 차례로 다가와 잔을 건네는데

아이구, 우리 동장님!”

이번엔 얼마 전까지 같이 일했던 부민동 정해옥 회장이 잔을 들고 나타나자

무슨 소리? 옛날, 옛날부터 우리 남부민1동 동장님이지.”

남부민1동 이민자 회장도 잔을 들고 나타났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