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신작시】 마누라는 무명시인 외 9편 - 차수민
【장소시학 2호-신작시】 마누라는 무명시인 외 9편 - 차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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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07 08:10
  • 업데이트 2023.04.1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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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마누라는 무명시인 외 9편

차 수 민

 

일 갔다 오면 
밥상만 챙겨주고 
책상에서 끙끙거리다 
인상 쓰고 앉아 있으면 말 붙이기 겁난다 
내 눈 보며 웃어주는 
마누라가 제일 이쁜데 
글 쓴다고 앉아 
냉장고 문 수시로 열며 
시를 쓰려 먹는 건지 
먹으려고 시 쓰는지 

혼자서 시인이지 
누가 알아주나

그래도 
취미로 쓴다더니 
떡하니 공동시집 양파집을 들고 올 땐 놀랬다
시는 
알겠다가도 도돌이표 있는 것도 아닌데 
돌아가 모르는 소리 늘어놓고

그래도 그래도
내가 주인공인 낚시라는 시는 재미나게 썼데
이제 돈 되는 시 좀 쓰면 좋겠다
무명시인 내 마누라
이 집 저 집 옮겨가며 모은 돈
내가 주식해서 다 날렸다고 벚꽃 아래 앉아 고백할 때
사니 안 사니 울고불고 
할 줄 알았던 마누라
그게 뭐 큰 일이가 앞으로 잘 살면 되지
말할 때 알았다
좋은 시는 몰라도 큰 시는 쓸 거라고.

 

칠서 버스

식당일 마치고 
칠서 가는 버스 안

남 밑에서 일 못하겠다고 
삼 억 빚내어 공장 차린 남편
이자에 이자 물어 직원도 내보내고
급하게 일손 필요하다는데
웃는 꼴 우는 꼴도 싫지만
떡하니 오라고 가는 내가 더 싫어

차창에 머리 박으며
그냥 콱 차라도 뒤집혔으면 하는 
칠원 삼거리
간신히 버스 오른 어르신을
내 앞자리 손들어 반긴다

아이고 우찌 지냈노 근래 이마 점 있는 갸 안 보이더라
죽었지

아이구 갸하고 친한 갸는 우찌 됐노
갸도 죽었다
아이고 아숩네 갸는 어딨노 우리 동네 논마지기 꽤 되던 갸
글마 글마도 갔다
글마마 거거 내가 싸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다 죽었지 안 보이면 죽는다 아이가
그래도 갸 있다 아이가 이곡댁 따라다니던 안 죽은 갸는 우찌사노
그 아, 
갸는 폐지 주우면서 겨우 산다 아이가.

 

피터팬 광고

내가 아는 피터팬은 
진주기공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첫아들 외로울까 
없는 살림에 낳은 아들 
6남매 막내
내 등에 업혔던 빡빡머리
기숙 생활하며 잘 안 씻어 별명이 고문
커서도 남말 듣지 않는다
이래저래 빠진 이
얼른 해 넣으라는 말
담배 피우다 껌뻑 졸면 안 된다는 말

제대하고 시작한 집 짓는 일 
나도 한 채 지으면 맡길까 했는데
비싼 재료 쓰고 마무리 깔끔해
집주인들 좋다지만 수지가 안 맞아
스스로 목매달았다가
내 자취방 한 달 

큰누나 식당 한 달 
친구 집 더듬더니
혼자 차린 간판가게 골목 사장 되었다
싸게 달아주고 덤으로 썬팅해 주고 
어떨 땐 돈 못 받고
어떨 땐 돈 안 받는

급히 씹어 목 막힐까
혼자 사다리 잡고 간판 달다 떨어질까
동생 
내 동생
늙은 엄마 손잡고
신마산 번개시장 장어국 사러 간다.

 

창명학원

대포 바다 언덕 작은 집일까
두모 끝 논밭 사이 집일까
고성군 삼산면 두포리 어디일까
창명강습 창명학회 창명학원
1924년 어린이 잡지에 오른 
김재홍 강응수 구두천 민봉의
강남윤 정부일 김성홍 김계환
배우며 가르치고 시와 글을 짓던 자리
동아일보 1927년 10월 22일 자엔 
산에 산이 중첩한 해안 삼산 
1925년에 김재홍 씨 외 제씨의 창립 이래 
많은 재원을 양성하여 김재홍 씨가 열심 교수한다고 했는데
두포리는 대포 두모 포교
동네 일이면 깨알같이 기억하는 포교 이임술 님
강응수 구두천 민봉의 일가는 알아도 
김재홍은 나도 모른다며 
학자 났던 두모 마을로 가보란다 
김재홍 동요 소년시는

첫눈에서 폐학까지
나비섬 물드는 하얀 옷자락
개펄 바지락 숨소리
내가 보던 별 보며 그들도 기억했을 밤하늘.

 

통영 부둣가

일본은 봄이에요 조선도 봄이죠
행복하게 있어 달라고
잊을 수 없다고 
서쪽 산자락은 타오르고 있어요
목숨 건 사랑을 해도
추억이 슬픈 북해도
당신과 헤어지고 10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내가 없어 외로우면 
술을 마시세요
사랑하는 사람 있으면
사랑도 하세요
북해도의 눈도 내 키만큼 쌓였어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
조금씩이라도 마중 나와 줘요
수국꽃 피고 금붕어 있는 연못 통영집
혼자 돌아가는 건 겁나요
바람에 얼굴 씻은 
머위 잎사귀

이불 귀퉁이 꽉 물고
연필로 급하게 쓴 편지
우물가 발 씻으러 나갔을까
밤하늘 유리구슬 되었을까
일본이고 조선이고 그딴 거 상관없어요
눈먼 애인을 가진 적 있나요?
통영 부둣가
그렁그렁 맺혔어요.

- 김봉희 엮음, 『극작가 박재성의 아내, 요시코의 편지』, 경진출판, 2021.

 

티눈

막 핀 매화꽃이 얼었다
남편을 깨운다
일곱 시 반요 일나요
오 분만 오 분만
무릎에 모로 누워
또 오 분
까딱이는 발바닥
무좀 발톱이 가로수로 섰고
바람에 짱돌과 땀이
메꾼 

종일 섰다 앉았다 
볼트를 조우고 푸는 일
남편은 힘든 일 없을 거라고
맨날 나만 살림 힘들다고
말로 밥상으로 새줄랑이
부대끼고 굳은 살
머리에도 가슴에도
내렸을 티눈.

 

무를 썰며

칼같이 자른다고
쌍칼이라 불려
어떨 땐 무섭다고 했는데
쩔뚝 
자르지 못했다, 사랑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싹뚝 자를 거라고
외진 굴다리 안에서
맥주 속 비우다 
하늘 빨개져
집 가는 솔방울길
자전거 바구니 우는 깡통을 토닥이다 
잃어버린 중심 
사랑을 덮는 슬개골이 깨지고 
쌍칼도 잃었다.

 

보리섬

숨구멍 찾던 
어머니 호미 소리는 
밀려 나갔다 오지 않아

혼자 꼬막 잡다
새미밭 풀 뽑고 마늘 심고
책 한 줄 못 봤다
낮엔 호미 잡아도
밤엔 책 잡아서
죽건 살건 고등학교 갈 거란 약속
고기잡이 간 아버지 기다리는 마루에서
용호마을 중학교 모퉁이에서
자꾸만 바라보는
보리섬
조개 캐는 쪼그린 울엄마.

 

물감

날 보곤 
쑥쑥 자라라
감나무는 웃자란다
가지 자르시며
할아버지
찰감 따발감 물감 얘기 해주셨다

할아버지 가시고
감도 따라 갔을까
돌담을 넘은 나무
열린 감이 없다

감꽃 피고
어디에서 익을까 
엄마 모은 입술같이 
빨개져 오던 물감.

 

원피스

간짓골 동갑내기 
아래 덕자 
우에 덕자
 
아래 덕자 밑에 남동생 
우에 덕자 내 밑에도 남동생 
오늘은 울엄마 대목장 가시고
 
꽃무늬 원피스 사 온다고 
마당엔 고추잠자리
앉았다 날았다 
장보따리 안고 온다.

 

차수민 시인

차수민 
시인. 고성 출신, 공동시집 『양파집』(2020)과 계간지 『여기』 신인상(2021)으로 문학 활동 시작. 시집으로 『꽃삼촌』(2022)이 있음.
duz9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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