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수필】 시집 『코뚜레 이사』를 읽고 - 이정수
【장소시학 2호-수필】 시집 『코뚜레 이사』를 읽고 - 이정수
  • 장소시학 장소시학
  • 승인 2023.05.24 04:30
  • 업데이트 2023.05.29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집 『코뚜레 이사』를 읽고


이 정 수

 
나는 평소 글을 잘 읽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쓰는 일이라고는 더 드물다. 게다가 이런 감상문은 정말이지 까마득한 오래전의 일인데 이 시집을 읽고 많은 감정을 느꼈고 또 그 마음들을 꼭 전하고 싶기에 이번만큼은 부족하더라도 짧게나마 써 내려보기로 한다. 비록 동창이나 친구분처럼 ‘잘’ 쓸 자신은 없지만 코뚜레 이사 시집의 독자이자 팬의 자그마한 응원 겸 메시지라고 생각해주시길.

이제야 이야기하지만 『양파집』이 출간되기 전 중간중간 미완성이었던 작품들을 조금씩 봐 온 터라 막상 완성되어 나왔을 때는 시집을 제대로 정독하지 않았다. 시인의 노력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니고, 여러 번 봤던 문장들이니 터놓고 말해 설렁설렁 정말이지 ‘읽고’ 넘기기에 바빴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감상평을 원하실 때 어물거리며 답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영양가 없이 봤으니 영양분 자체가 없을 수밖에. 그런데 참 우습게도 공동시집이 아닌 엄마 성함 석 자만으로 엮어진 한 권을 선물 받고 나니 글쎄 다르게 와 닿는 것이다. 기존 『양파집』에 수록된 시들도 조금 더 섬세한 시선으로 보게 되고 작품을 읽고 기록한 질문거리들이 한가득은 나왔으니 말이다. 궁금한 내용은 시인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몇 편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코뚜레 이사」
전혀 몰랐다 그 당시 어린 나이였으니. 하지만 안방 문머리에 소 코뚜레라니. 괴이하기 짝이 없지만 정말 효과가 있었다 하니 한편으로는 보고 싶기도 했다. 이번 시집 제목을 『코뚜레 이사』라 한 것도 그와 같을까. 행운을 부르기 위해? 이유야 어찌 됐든 제목에 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소식을 들려준다면 감히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그 와중에 명품 백 아줌마 때문에 읽으면서 열불 엄청났다.
 

「강습」
시집이 나오기 전에도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이다. 부엌 창문 밖에서 보셨다던 한 노부부의 일상. 짧은 시이고 거창한 내용은 없지만 시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애틋해서 물 떠다 마시다가도 무심코 그 옥상을 한 번쯤 내다보게 된다. 실제로 그 모습을 목격하고 싶었지만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아른거림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어 괜찮다.
 

「아버지와 크레파스」
「아버지와 노계」, 「호스피스 병동」 등과 같이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시를 읽기는 솔직히 힘이 든다. 가슴이 아리고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또 이 시를 쓰면서 엄마가 느꼈을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더 마음이 아픈데 특히 「아버지와 크레파스」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더라. 입원하시기 전, 언젠가 재떨이 옆 스케치북과 미술용품들을 보며 엄마한테 이게 뭐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께서 부탁하신 물건들이라 하셨고 당시 나는 엄마가 사오셨나보다 했다.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고르셨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화가를 꿈꾸고 계셨던 것도 몰랐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셨는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비어 있던 화지에 그림 한 폭이라도 더 남기실 수 있도록 귀찮게 굴었을 텐데. 다양한 사물 풍경이 찍혀져 있는 사진첩이라도 하나 선물해 드렸을 텐데. 외할머니한테는 아무 말 마라 하셨지만 손녀한테는 말씀해 주시지.

 

「침대 면회」

옆에서 엄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버릇」에 나오는 구절처럼 일상을 보내면서도 창작의 고통을 겪으시고 또 그걸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느끼시는 걸 종종 발견하고는 한다. 때문에 가끔은 저렇게까지 힘들어하시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면 그건 오히려 해가 아닐까 했는데 완성된 시집을 모두 정독하고 나니 엄마에게 있어 시 창작이란 단순히 글쓰기에 그치지 않고 추억에 젖어 아련하게 만들고 때로는 자신을 위로할 수도 있는 하나의 매개체라고 생각된다. 덕분에 독자는 어쩌면 더 큰 감동을 선사 받는다. 시 한 편에 웃기도 또는 울기도 했다. 문외한 독자는 이렇게밖에 표현할 줄 모르지만 표현할 줄 몰랐던 독자를 행동하게 하는 시집이 바로 코뚜레 이사이다. 완성되기까지 과정에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낯간지럽지만 나에게 있어 김영화 시인은 그 어떤 문학인보다 훌륭하고 눈부시다.

 

※ 『장소시학』은 본지와 콘텐츠 제휴매체입니다.

<jiook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