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달팽이와 부츠①

<딸을 보내며>를 교정보아 인쇄소에서 1,200매를 인쇄해 청첩장을 봉투에 넣은 날 같이 작업을 하는데
“이거 원, 눈물이 나구먼. 나도 딸을 키우는데...”
박기도씨의 말을 이어
“딸이 둘인 나는 눈물이 그만 펑펑 쏟아지는 구먼”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지, 최소한 나처럼 아들 둘만 키우든지.”
정병진씨, 이재식씨도 한 마디씩 거드는데
“무자식상팔자라... 참, 과장님!”
그날따라 조용하던 종현씨가 정색을 하더니
“저도 무자식상팔자, 아니 무마누라상팔자를 인자 면하게 되었다 말입니다.”
“뭐라?”
모두들 어리중절한데
“종현씨, 지금 장난하는 거제? 갑자기 장가를 다 간다니.”
“아, 아닙니다.”
얼굴이 빨개진 종현씨가 더듬거렸지만 표정은 단호했다.
“그럼, 신붓감은 어떤 여자고? 설마 우리 청 내 직원은 아닐 꺼고?”
“그 거사 예식장에 와서 보면 알고.”
“야, 이기 무슨 일이고? 하늘도 놀래고 땅도 놀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열찬씨가 감탄을 하고
“축하한다.”
다들 악수를 나누는데
“과장님,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무슨 죄송? 오히려 전 직원들이 기뻐할 일이지. 야, 문화관광과에 난리 났네. 서구청에 난리 났네. 남해 설천면에 경사 났네.”
“그 기 아이라, 제 결혼식이 과장님 댁 혼사보다 더 먼저 1월 6일 일요일이란 말입니다. 청내 새해 첫 결혼식을 제가 가로채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원 사양할 일도 따로 있지.”
하며 마주보고 웃는데
“야, 마흔두 살 노총각이 따까리를 떼는데 그게 쉽사리 되겠나? 이 조교가 한번 시범이라도 보여야 되나?”
“아니지, 총각이 문제가 아니라 동년배 숫처녀라면 그 쪽에 굴착기를 보내야지.”
“나는 비아그라종합세트를 선물할까?”
또 한마디씩 거드는데
“가만, 그게 아니라 종현씨 청첩장이 더 급하네. 종현씨 인쇄되었으면 내일이라도 또 모여서 작업할까?”
“아닙니다. 저는 청첩장 보낼 곳도 별로 없지만 자유게시판에 공고하면 봉투에 넣어 부칠 곳은 100곳도 없습니다. 혼자 해도 됩니다.”
이렇게 봉투작업이 끝나 우체국 발송분과 구청과 시청의 문서함에 넣을 것, 열찬씨 내외가 직접 들고나가 모임장소에 나가 전달할 것을 따로 포장하여 열찬씨가 들고 가기로 했다. 고생했다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잔 하다가
“저, 과장님!”
신중한 정병진씨가 낮게 목소리를 까는지라
“왜?”
“그게 말입니다. 과장님 지난 번 시집 <비오는 날의 연가>가 내용도 좋지만 표지가 기차다 아입니까? 금방 그리운 사람이 나타날 것만 같은 비에 젖은 휘움한 산길과 그 우수에 젖은 어둠이 말입니다.”
“어, 전라도 고흥땅에도 또 시인이 하나 나오네.”
“그래서?”
“그런 분위기의 시집을 한권씩 나눠주는 겁니다. 물론 그 시집에 <딸을 보내며>도 수록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그것도 일리가 있네. 안 그래도 내 뭔가 아쉽고 허전했는데. 명색 시인이란 사람이 시중의 장사꾼도 아니고 어떻게 부조봉투하나 하고 답례봉투하나를 돈 받고 물건내주는 것처럼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딸을 보내며> 시를 준비했는데 그 역시 봉투에 넣고 보니 마찬가지란 느낌이었어. 아무튼 좋은 생각이야. 내 한번 연구해보지.”
하고 집으로 돌아와
“당신 집은 구했나? 나는 오늘 청첩장봉투작업 마쳤다.”
하며 영순씨 몫의 청첩장을 건네주는데
“보소!”
“와?”
“돈에 맞으면 집이 좁고 집이 맘에 들면 돈이 모자라고 참 <물 좋고 정자 좋고>가 안 되네. 이라다가 내하고 영신이 하고 다리 아파 죽는 줄 아소.”
“그래 우짜겠노? 정 안 되면 서면이나 사상 쪽이라도 찬찬이 알아보소. 나는 내일부터 대신동쪽에 알아 보께. 구덕터널만 지나면 바로 그게 아이가?”
하다가
“참, 아까 봉투작업 하다가 직원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시 한 편을 넣기보다는 시집을 하나씩 넣어 보낸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구만. 마침 제5시집 준비하던 것도 있고 하니 그렇게 해볼까?”
“시집이라? 그것도 돈이 꽤나 들 낀데. 정 하고 싶으면 시집보다는 차라리 수필집이 어떤교? 당신 부산일보 <살롱>에 연재한 짧은 수필들도 좋고 간간이 잡지에 발표하는 수필이 오히려 구수하고 차분하며 따뜻한 인간미가 있어 너무 감성적인 시보다 나을 것 같은데요?”
“그래?”
그길로 컴퓨터를 켜고 이리저리 검색하던 열찬씨가
“그래, 수필집으로 합시다. 내 비록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소설에 뜻을 둔 사람이라 수필이나 산문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참에 진면목을 보여주는 걸로 하지.”
하며 디스켓에 저장했다. 사무실에서 한 번 더 훑어보고 내용별로 분류해서 대충 목록을 작성해 출판사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러고서 일주일 가까이 더 집을 보러 다니던 영순씨가
“바뿡교? 같이 저녁 먹고 갑시다. 얼매나 돌아 댕깄는지 집에 가서 밥할 힘도 없심더.”
전화를 해서 부민동의 설렁탕집에 처제 영신씨와 셋이 둘러 앉았는데
“집이 딱 맞는 기 있기는 있는데...”
말을 꺼내놓고 맺지를 못 하는 지라
“맞춤하면 얻으면 되지 뭘 망설이는 거지?”
“그래요. 장소도 회사 바로 옆인 학장동이고 평수도 신혼생활에 딱 맞은 25평에 또 새 아파트라.”
“그라면 바로 계약을 하지?”
“문제는 세를 안 놓는다 아이가? 새 아파트라고.”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묵묵히 숟가락질을 하는데
“보소. 당신.”
“와, 우리가 쪼깨 무리하면 안 될까?”
“어떻게?”
“그 삼성아파트가격이 9,500만원인 기라. 저쪽에서 7천을 줬으니 2,500이 모자라는데 마 우리가 확 저질러버릴까?”
“돈은?”
“우선 슬비 돈이고 내 돈이고 당신 돈이고 몽땅 보태서 집을 사는 거지. 그라면 나머지는 또 우째 해결이 되겠지.”
“우째 말이고? 9,500이면 세금에 등기비용까지 한 3,000은 더 있어야 될 낀데.”
“당신이나 내나 이적지 남의 잔치에 많이 댕깄으니 엔간하면 1,2천은 부조가 안 나오겠나? 가전제품 같은 것은 할부로 해서 나중에 주어도 되고. 다행히 저쪽에 집안이 홀가분해서 예단비도 적게 들고.”
“그라면 집 사는 돈을 보태주는 조건으로 모든 절차를 최소한 간소하게 하는 것으로 저쪽 집과 의논해보소. 정 안 되면 나중에 공무원연금공단에 대출을 내면 되지.”
“당신, 슬비, 정석이 학자금대출이 얼만데 또 대출을 낸단 말잉교? 그라다가 나중에 퇴직할 때 다 갚기는 하겠능교?”
“그 거사 아직 7,8년 재직기간이 남았으니 될랑가? 아, 힘들겠네. 매월 일부씩 갚아가는 거야 그렇지만 아직도 정석이가 졸업을 안 했으니 졸업 후 3년 거치에 5년 상환기간 전에 내가 먼저 퇴직하는 수도 있겠네. 참 그라고 보니 슬비 그 가시나는 지 학비도 못다 갚고 시집을 가네. 그렇다고 니 학비 니가 갚고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만 그래 합시다.”
영순씨의 눈빛이 간절해졌다. 며칠 전 캔 맥주 한 병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부모는 같은 자식 중에서도 잘나고 능력 있는 놈보다 부족하고 아쉬운 놈에게 늘 정이 더 간다더니 서울의 명문대에 다니며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아들에 비해 부산의 어중간한 사립대를 나와 시대를 잘못 만나 취업시험 한번 못 치고 좋은 직장도 아닌 산업체에 다니는 것이 늘 안타깝다며, 사람이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그 환경을 못 벗어나고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라며 같은 직장의 동료에게 시집가는 딸이 너무나 아쉽다고 토로하던 일이 떠오르며 자신역시 정석이보다는 늘 슬비가 맘에 걸리더란 생각에
“그라면 그래 하소. 설마 그 정도야 못 후아내겠나?”
“당신, 참 고맙심데이.”
이렇게 종말이 나자 당장 이튿날 계약을 하고 실내장식을 점검하고 전자제품과 가구를 넣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어어,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이구, 사돈 감사합니다.”
도연씨와 어머니가 너무나 고마워했지만
“바깥사돈이 세무과장이라 이웃들이 돈 걱정은 없을 거라고 하디마는 진짜 이래 새집까지 사줄 줄은 몰랐지요.”
참으로 듣기 민망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아직도 세무라는 말만 붙으면 엄청난 뒷돈이라도 생기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거기 무슨 말씀이요? 남은 때 묻은 빤쓰까지 팔아서 보태는 판에...)
영순씨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겨우 참았다고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