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야, 좋구만. 우리 오늘은 점심으로 콩나물 해장국이나 먹으러 갈까?”
“좋지. 혹시 한길에 목여사님 나왔는지 이상개선생님, 전화 한 번 넣어보지요.”
“그래 보까?”
비로소 담배를 끄고 들어가려는데
“선생님들 이거 한 편 들어보소. 쓰레기란 제목인데 참 묘한 느낌입니다.”
이번에는 여자 목소리, 성수자시인이 읽기 시작하는데
쓰레기
나는 어지르기 선수(選手)이고 아내는 치우기 선수다. 현관에 벗어 던진 신발을 정리하고 잇달아 양말, 와이셔츠를 집어 세탁기에 넣고 담배를 피우면 창문을 열고, 끄고 나면 재떨이를 씻어 온다.
부부란 의례 그렇게 만나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넘겨 버리다가도 술 먹고 퇴근한 날 고단한 내 삶의 부스러기 같은 머리카락을 꼼꼼히 주어 쓰레기통에 담고 물걸레로 방바닥을 닦는 아내를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 전쟁처럼 매일 벌어지는 <어지르기와 치우기>는 다시 <버리기와 지키기>로 연결된다. 하도 가난하게 자라서인지 나는 무엇 하나 버릴 수가 없다. 반면 아내는 방안이나 거실은 물론 장롱이나 서랍 속까지도 복잡하거나 지저분하면 도저히 견디지를 못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몇 년이나 더 쓸 것 같은 새 것도 가차 없이 버린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이미 전쟁에 가까운 그 버리기와 지키기의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총각시절 월부로 사서 사시장천 덮고 자던 신앙촌담요는 장가갈 때 내가 자져간 유일한 혼수로 두 아이를 길러내며 내겐 의미심장한 추억의 살림살이였는데 헌 옷가지와 함께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걸 발견, 아까운 생각이 들어 도로 들고 왔더니 아내가 무섭게 화를 냈다.
야간대학에 다닐 때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아낀 차비로 산 <現代文學> 고본이며 누렇게 빛이 바랜 <唐詩>, <古文眞寶>에다 내 소년기 습작노트뭉치를 아내는 이사할 때마다 귀신 나올 것 같다면서 끔찍한 표정을 지었고 한 번은 집이 비좁다고 연탄창고 속에 쌓아두다 내가 정말 무섭게 화를 내어 종일 싸운 적도 있었다.
어느 듯 아이들도 버리는 일에 잘 적응해나가고 희고 깨끗한 커튼이나 컴퓨터자판에 익숙해졌다. 하루에 세 번씩 이 닦는 가족들 틈에서 나만 아직 한 번밖에 닦지 않는 원시인 같고 돈 벌어 오는 가장만 아니라면 저들끼리 합세해서 나를 쓰레기처럼 내다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평생 농부로 살다 일흔 넘어 돌아가신 큰 자형을 묻고 와서 집안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마당은 물론 텃밭과 뒤란까지 가득한 잡동사니를 보고 덧없는 삶과 같은 허섭스레기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자형은 공장이나 기계에서 생산된 물건은 부러진 것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남이 버린 것이라도 소중히 주어 왔다. 특히 쇠붙이와 플라스틱이 많은 그 쓰레기를 치운다고 우리는 혼이 났다.
요즈음은 나도 비교적 잘 버릴 줄 알게 되었다. 특히 대인관계는 번거롭게 신경 쓰는 게 싫어서 새로운 인연이나 모임을 맺기보다는 끊고 정리하려 애쓴다.
큰맘 먹고 서랍정리를 하고 나서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람의 전화번호가 이며 버려진 걸 알고 서글플 때도 많다. 정말 버리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하, 그 참 평리선생의 소탈한 진면목이 잘 나타나 있구먼.”
하던 권경업시인이
“에라이, 평리 니도 양반은 못 되겠다. 호랑이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벌쭘한 열찬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셨어요? 선배님.”
깍듯하게 인사를 한 성수자시인이
“여기 세 선생님들 의견도 그렇고 또 다른 몇 분들의 생각도 그렇고 이번 수필집의 제목은 이 <달팽이와 부츠>가 제격이랍니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선물로 주는 경우라면 유일하게 딸이 주인공으로 들어가는 내용도 그렇고 또 달팽이와 부츠라는 전원과 번화가를 대표하는 두 단어의 절묘한 대비와 조화도 그렇고...”
하면서 열찬씨와 일동을 주욱 둘러보며
달팽이와 부츠
북처럼 둥근 몸통의 달팽이가 북채 같은 더듬이를 세우고 기어가는 그림을 보면 그 전원(田園)적인 분위기에 젖어 누구나 향수(鄕愁)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는 그런 목가(牧歌)적인 풍경(風景)속에 유유자적할 입장이 못 된다. 유일한 재산인 집까지 짊어지고 그 굼뜬 동작으로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고통에 찬 생활전선(生活戰線)일 뿐이다. 달팽이 중에서 더욱 불쌍한 놈은 집 없는 달팽이다. 뭉뚝한 육괴를 끈적끈적한 체액으로 감싼 알몸이 평생을 무방비상태(無防備狀態)로 살아가야 하니까. 아주 작은 생명체인 개미들에게 아무 무기도, 공격수단도 가지지 않은 달팽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단백식품(高蛋白食品)이라하니 정말 한심하도록 불쌍한 생명체다.
“담담한 발상도 좋지만 솔직한 고백의 극적인 전환도 참 좋아요. 자, 기왕이면 끝까지 읽어봅시다.”
집을 가지지 못 한 오랜 세월동안 나는 늘 우리 식구가 집 없는 달팽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영악하거나 유능하지도 못하고 술이나 좋아한다 하더라도 아내는 연애결혼으로 만났으니 제가 선택한 가난이고 운명이지만 두 아이는 맨땅이나 풀밭을 기어가는 작은 달팽이 같아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한 살 더 먹게 되는 연말이면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되었다.
어느 듯 집을 가지게 되었다. 그 길고 험한 박봉의 세월이 흘러 나는 직장에서 제법 큰 책상을 차지하고 봉급도 꽤나 받게 되었다. 만성적자로 허덕이던 가계가 지난 추석 효도휴가비 50% 지급이후 흑자로 돌아서고 보너스 받는 달도 연속되어 아내는 이제 제법 저축도 있는 모양이다.
집 가진 이후 아내가 밝아지고 달라진 점도 많지만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내게 좋은 옷 사다 입히는 일이다. 나는 농촌출신이라 본래부터 멋도 모르고 의상감각도 없는 데다 중년에 다리를 다쳐 자세까지 바르지 못 한 처지다. 메이커 있는 고급 옷 입는다고 그렇게 멋쟁이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새 옷 입고 출근하는 나를 보고 제 스스로 대견해 하는 것이 내겐 서글픈 즐거움으로 보인다. (사실 비싼 외투도 하나 사 두었는데 날씨가 추워지지 않아 은근히 조바심이다.)
“자, 성시인은 그만, 숨찬데 내가 계속 읽지.”
권경업시인이 나섰다. 사랑의 국수차를 운영하는 대표와 사무국장으로 연대감이나 친밀감이 상당한 것 같았다.
12월 들어 대학생 딸아이가 통가죽 부츠를 사달라고 제 어미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공무원 자녀가 무슨 그런 사치스런 생각을 다 하느냐고 나무라자 녀석은 입이 한 발이나 나오고 말수가 적어진 걸 보니 단단히 삐친 모양이었다. 그 어려운 성장기 내내 한 번도 과외지도를 받거나 메이커제품(옷, 신발, 가방) 탐낸 일없이 무난히 자라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보너스 타는 날 눈 딱 감고 19만 원짜리 부츠를 사주었다.
녀석이 신이 나서 말가죽부츠를 신고 저녁 내내 거실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다 갑자기 우리 집이 중산충(中産層)이나 된 듯 한 착각에 빠졌다. 사실 나는 어쩌다 상품권 같은 것이 생길 때가 아니면 구두도 시장골목 가게에서 2,3만 원짜리를 사 신는다. 금방 닳아질 물건에 큰돈을 쓴다는 건 가난하게 자라 궁상(窮相)을 못 벗고 아직도 천민의식(賤民意識)에 젖어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이다.
가자미 같은 생선을 먹다가도 아이들이 살점만 조금 발라먹고 버리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버린 꼬리와 머리를 나 혼자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맛난 갈치찌개도 너무 아까워 한 토막 먹고 나면 남아도 더 먹지 못 해 아내에게 핀잔도 많이 들었다. 정작은 그렇게 아끼다 쉬어서 버릴 때도 예사다.
천민층(賤民層) 아비에 중산층(中産層) 딸이라니.
기왕이면 검정 스타킹을 받쳐 신고 멋진 각선미로 이 얼어붙은 도시의 무심한 남성들에게 상큼한 봄을 서비스해 보라는 나의 말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가 목소리도 낭랑하게 집을 나섰다.
한 토막 더 먹을까 말까 하던 갈치찌개에서 나는 젓가락을 떼버렸다.
“어때? 괜찮지요?”
“그런 것 같은데요.”
“그래도 당사자 가열찬시인이 맘에 들어야지요?”
“예. 따르겠습니다.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도 하는 판에 당연히 따라야죠. 자, 갑시다. 오늘 점심 콩나물해장국은 제가 사지요.”
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잠깐, 요거 하나만 마저 읽고 갑시다. 나는 아까 혼자 읽다가 눈물이 나서 혼이 났다 아입니까?‘
키가 작고 통통한 몸매 까무잡잡하면서 동그란 얼굴, 강인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들어 볼 때마다 남 같지 않다는 느낌, 어쩜 등말리의 금찬이누님과 닮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는 성수자 시인이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하늘
하늘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재산이다. 이승에 집 한 칸 가지지 못한 셋방살이의 처마 끝에도 걸려있고 자유를 빼앗긴 수인들의 쇠창살에도 푸근하게 열려있다. 그렇게 무한대로 주어지는 하늘은 누가 뺏어갈 수도 없다.
하늘은 외로운 사람의 화폭이다. 떠도는 흰 구름이나 안개 낀 능선위로 꽃과 새와 그리운 이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 물감도 크레파스도 없이 누구나 마음의 붓으로 그리다 지워 다시 그릴 수 있다.
또 하늘은 무료한 사람들의 브라운관이다. 조개구름, 뭉게구름, 새털구름은 물론 해와 달과 별에다 노을과 안개와 아지랑이를, 드물게 무지개까지 전송해준다. 파랑새가 날기도 하고 기러기가 줄을 짓기도 한다. 수평선에 아물대는 배와 갈매기를 보면 서럽도록 아름다운 정경이 연출된다. 시청료도 전기료도 내지 않은 거대한 화면의 텔레비전이다.
어릴 적에 읽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는 내게 가장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병든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에 <처녀뱃사공>을 잘 부르는 <순나>라는 누이동생을 가진 껌팔이소년 이윤복은 기막힌 가난과 외로움에 빠져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 걱정했다. 어른이 되기까지 나는 늘 이윤복이 사는 대구의 하늘은 어떤 빛깔일까 늘 궁금했다.
아버지가 죽고 누이동생 순나마저 가출한 그 외로운 소년은 어른이 되어 몇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쓰라린 좌절만 겪고 아직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했다. 나보다 조그만 소년이던 그가 내게 연연한 슬픔을 주더니 나보다 젊은 아이에 죽어 나의 하늘에 서러운 얼룩을 한 점을 남긴 셈이다. 그 가난하고 외로운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만났는지, 여태껏 누이동생 순나를 찾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 하늘에는 아직도 슬픔만 가득할 것 같다. 그 외로운 넋이 사는 하늘에 가끔은 무지개처럼 황홀한 기쁨이 걸렸으면 좋겠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