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비가 오다가 갠 오후에는 새 세상이 열려있다. 비가 오기 전 하늘과 갠 오후의 하늘은 푸름 가운데 흰 구름 둥실 몇 조각, 의구한 듯하다. 변화는 먼 데서가 아니라 땅 위 가까이 텃밭에서 찾을 일이다. 상추와 고추만 심었는데, 온통 잡초밭으로 변해 있다. 비와 천지의 기운이 오로지 잡초만 키워냈는가, 싶다.
아니다. 자연에는 ‘사사로움’이 없다. 자연은 인간의 이기심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햇살이 장미에든 가시에든 고루 내리쬐듯, 비도 상추와 잡초를 가리지 않고 만유에 고루 뿌려진다. 비를 자양분 삼아 상추도 자라고 잡초도 자라고 고추도 커간다.
자연이 곧 우주이다. 자연 속 인간은 소우주이다. 우주는 사사로움이 없는데, 소우주는 사사로움을 장기로 삼는다. 인간 삶의 공준이 된 시장은 사사로움의 경연장이 아니던가. 남보다 더 사사로워져야 성공하거나 적어도 무리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되는 게 시장경제이다.
가시 달린 줄기 없이 어이 장미를 취하며, 잡초 살지 못하는 땅에서 어찌 상추를 수확하리오. 마는, 시장경제에 매인 소우주는 자연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사사로움에만 관심한다. 하여 비 갠 오후 잡초의 성가신 자람만 타박하고, 함께 자란 상추에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자연의 이치가 아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마음의 작란일 뿐이다.
평균에는 진실이 없다. 평균은 그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모든 예외를 배제하고 그것들을 추상적인 평균으로 대체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서는 그 평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평균은 이론에서 공격 불가능한 근본적인 사실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척도의 양쪽 끝에 있는 예외들은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과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쪽의 예외들이 저쪽의 예외들을, 저쪽의 예외들이 이쪽의 예외들을 상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균은 진실의 부존재를 넘어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자신의 바람을 합리화하거나, 외쪽생각의 일반화 탓일 것이다.
“77%라는 말을 듣고 ‘아 그게 진정한 지지율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개회사에서 “지난주 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해보니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77%가 넘었다”고 언급하자 이에 화답한 말이다. 노조를 ‘건폭’이라고 때려잡은 단물인가.
‘문자 재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데도 5월 31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발령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변했다. 이태원 참사 때는 왜 그렇게 안 했단 말인가.
5월 31일 새벽 5시30분께 전남 광양시 광양제철소 포스코복지센터 앞 왕복 6차선 도로 위에 설치된 고공농성장(높이 7m)에서 경찰관 4명과 소방대원 2명이 사다리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올라가 고공농성 중이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머리를 길이 1m 플라스틱 진압봉으로 1분여간 내리쳤다. 경찰은 김 처장이 바닥에 주저앉자 사다리차로 옮겨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김 사무처장은 머리 출혈로 순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경찰은 백골단 후예인가.
인간은 사사로움에 특화된 동물이다. 이 사사로움으로 인해 자기 맘대로 ‘평균적인 인간’을 상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평균적인 인간’에서 벗어나면 그들을 짐승 취급을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윤석열이나 오세훈이나 악질 경찰이 나오겠는가.
사사로운 인간은 남들도 모두 사사롭다고 지레짐작한다. 하여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단언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이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

6월 1일 감사원 감사위원회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특별감찰에서 드러난 개인 비위 혐의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특별감찰을 진행한 감사원 사무처의 보고와는 달리, 관련 내용이 책임을 물을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탈탈 털어도 먼지가 안 나더란 말이다. 편법으로 감사를 밀어붙인 유병호 사무총장에게는 공수처 수사만 기다릴 뿐이다.
사사로움을 추구하면 반드시 사사롭지 않는 자연의 되갚음을 빠르든 늦든 반드시 받는다. 천벌이니 지벌이니 하는 희망적 사고가 아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니 당연히 자연의 이치에 반한 행위에는 응보가 따른다. 인간이기에 법적 처벌이다.
이제 ‘사사로움의 시간’이 저물고, 바야흐로 ‘응보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작가/본지 편집 위원, ouasaint@injurytime.kr>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