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거짓말과 트럼프, 그리고 열성지지층
【조송원 칼럼】 거짓말과 트럼프, 그리고 열성지지층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3.06.23 17:30
  • 업데이트 2023.06.26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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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회심리학 박사)는 한 남성이 8세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군사 재판에 피고 측 감정인으로 출석한 적이 있다. 그 여자아이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도중에 갑자기 “그 아저씨가 나를 만졌어!”라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매질을 당장 멈추고 아이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의사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누가 너를 만졌니? 어디서? 얼마나 자주? 언제?

아버지가 그만 때리기를 바랐을 뿐인 이 가엾은 아이는 이제 처음의 거짓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했다. 결국 곧바로 떠오른 단 한 사람, 즉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자 이웃 남자의 이름을 댔다.

그는 즉시 체포되었다. 나는 한 배심원이 내게 던진 질문에 깜짝 놀랐다. “저 아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속일 의도를 가진 거짓말, 즉 어른들이 이해하는 의미의 거짓말이 아니었다, 고 나는 설명했다.

아이는 매질이 멈추기만을 바랐고, 첫 번째 거짓말은 성공했다. 다만 아직 어려서 자신의 충동적인 대응이 가져올 장기적인 결과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친구가 체포되어 재판정에 서고, 그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무게 될 거라는 결과 말이다.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아버지가 더 화를 낼 것이기에 아이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이는 덫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SKEPTIC Korea Vol.34/거짓말이 더 이상 수치스럽지 않은 시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37가지 혐의로 연방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전·현직 대통령으로 기소된 건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37가지 가운데 31건은 국가 기밀을 고의로 자택에 불법 보관한 혐의이다. 나머지 6건은 기밀 은닉 및 허위 진술 등의 혐의다. 각 죄목의 형량을 감안할 때 유죄가 확정되면, 트럼프는 최대 420년 징역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이번 기소와 관련해 잭 스미스 특검은 공정성 시비 등을 차단하기 위해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 기밀 누설 건을 심리하고 판단할 대배심원단을 구성하기 위해, 트럼프의 거주지인 남부 플로리다 주민 가운데 23명을 무작위로 선발했다. 그 대배심원단이 트럼프의 혐의를 인정한 이후에 기소를 결정했다.

트럼트 전 대통령은 기소 직후 영상 메시지를 통해 “나는 결백하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그리고 이번 기소는 자신을 낙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규정했다. 트럼프는 또 이번 기소는 형평성을 잃은 기소라며, 바이든의 사례를 들었다.

바이든은 과거 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기밀이 담긴 약 10개의 서류 상자를 자신의 저택과 사무실에 보관해 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연방 수사국이 압수수색했고, 해당 사실을 인지한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문제의 기밀문서를 자진 반납했다. 기밀문서를 은닉하고도 자진 반납을 거부하는 트럼프와는 분명히 사안이 다르다.

트럼프와 트럼프 진영의 사람들은 트럼프의 범죄사실에 대한 공방을 차라리 열성지지층 결집과 선거자금 모금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기소가 되기 전에도 트럼프 캠프 측은 조 바이든, 마이크 펜스, 힐러리 클린턴을 맹비난해 왔다. 이들 모두 기밀문서를 부주의하게 다룬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트럼프만 기소되었다. 이는 명백히 트럼프가 마녀사냥의 증거라고 트럼프 캠프 측은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미국 안보 관련 부처는 수많은 문서를 비밀문서로 분류한다. 하여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실수로 비밀 파일을 보관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 기소되는 경우는 세 가지이다. 최고비밀의 문서와 관련될 때, 비밀문서를 돌려주기를 거부하거나 사법정의를 방해할 때, 소유한 비밀문서를 타인이 보거나 공유하기 쉽도록 방치할 때이다. 트럼프는 이 세 가지 모두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되어 기소된 것이다.

이번 기소가 ‘정치적 음모’라는 트럼프의 주장이 먹히고 있다. ‘열성’ 지지층에게는 ‘팩트’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트럼프는 자신과 성관계를 한 포르노 여배우에게 입막음용으로 돈을 지불하면서 기업회계를 조작한 혐의로 뉴욕지검에 기소되었다. 정상적인 정치지형이라면 트럼프라는 정치인은 몰락함이 정상이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기소된 지 불과 2주 만에 정치자금 1500만 달러(약 192억 원)가 몰려들었다.

트럼프는 이번 기소 외에도 친트럼프 세력의 의사당 난입 사건의 배후 조종 혐의, 조지아주 대선 결과 조작 지시 혐의 등으로 조만간 추가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공화당 대선주자 1위인 그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외눈박이 열성 지지층은 ‘범죄에 대한 기소’라는 팩트에 대한 검증을 싫어한다. 그들의 외눈에는 오직 ‘박해 받는 정치인’ 이미지만 극대화할 뿐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트럼프는 ‘옥중유세’도 불사할 결심이라고 한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취임 직후 ‘셀프 사면’을 할 것이다. 하여 내년 미국 대선은 어쩜 트럼프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한 한낱 퍼포먼스로 전락할 수도 있다.

도깨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깨비를 ‘믿는’ 사람들은 반딧불도 도깨비불이라고 서슴없이 주장한다. 누가 검증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믿음과 다르면? 음모론이라고 딱 잘라 무시한다. 괴물 정치인은 자수성가하는 게 아니다. 괴물을 ‘메시아’로 믿는 열성 지지층이 만들어내는 도깨비 같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

지지층의 그 열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며, 무엇을 위한 열성일까?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