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사랑을 노래하다
가령, 이런 사랑
박화남
울타리 넘어가다
울타리가 된 등나무
어깨를 뒤틀어서 철조망을 품었다
차갑게 얼어있는 네게
뼈를 심듯 몸을 연다
산등성이 넘어가다
발목 잡힌 나무처럼
그 자리 몸을 굽혀 너를 안아들었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
멀리 함께 가겠다고

얼마나 이타적 사랑이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타리가 되었을까요? 그것도 뾰족하고 차가운 ‘철조망’을 ‘어깨를 뒤틀어서’ 품고, ‘차갑게 얼어있는 네게’ ‘뼈를 심듯 몸을 열’ 수 있을까요? 또 ‘그 자리 몸을 굽혀 너를 안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 멀리 함께 가겠다’는 등나무를 통해 조건 없는 사랑, 자발적인 사랑의 본보기를 봅니다.

◇ 손증호 시인 : ▷2002년 시조문학 신인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성파시조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등 ▷시조집 《침 발라 쓰는 시》 《불쑥》, 현대시조 100인 선집 《달빛의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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