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12)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5장 상처뿐인 영광③
대하소설 「신불산」(512)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5장 상처뿐인 영광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7.01 06:05
  • 업데이트 2023.06.30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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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선배 실장님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자
“식당은 어디로? 뭘 자시고 싶지요?”
“아무러면 어때요? 그렇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바다에 가까운 만큼 복국이나 생태탕 뭐 이런 시원한 것 말입니다. 청장님 그러고 보니 제가 서구출신으로 생선요리마니아 아닙니까?”
하여 복요리로 제법 이름이 난 미도복국으로 결정되어
“가실장, 내일 점심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준비를 잘 하게. 우리 구에선 부구청장에 국장 셋이 배석하는 것으로 하고.”
분위기 좋게 진행되고 있었다.

5. 상처뿐인 영광③

이튿날이었다. 총괄주무와 감사보고서를 작성한다고 머리를 맞대고 있던 김정효 계장이
 
“겨우 경징계 두 건에 훈계 열한 건이라. 이거 암만 작은 구라해도 건진 게 너무 없네.”
 
하며 열찬씨를 올려다보고
 
“아이구, 징계가 두건이나 되면 안 되는데...”
 
서로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걱정을 하는데
 
“이 실장, 식당준비는 잘 됐지요. 인자 반장님 모시고 슬슬 출발하지요.”
 
구청장의 전화가 와서
 
“예.”
 
하고 김 계장과 감사원들을 인솔해 충무동로터리를 지나 건널목을 건너 미도복국에 도착하자
 
“반장님, 청장님 기다리십니다.”
 
준비 차 미리 왔던 하계장과 김형탁씨도 굽실거리고 인사를 하고
 
“어서 오시오”
 
구청장의 환영과 함께 김계장이 주빈 석에 마주 앉자 부구청장과 세 국장들이 감사원들과 끼어 앉아 다들 본청출신인 만큼 서로의 안부도 묻고 같이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도 나누는데
 
“자, 귀한 복수육도 있으니 한 잔 하십시다. 복요리는 술도 잘 받고.”
 
하면서 잔을 건네 소주를 따르던 구청장이
 
“참,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 후배님들하고 건배나 한 번 해야지. 자, 맥주잔 하고 맥주도 같이 좀 올리시오.”
 
하는데 갑작스런 부탁이라 미처 준비가 안 되었는지 아니면 소규모 식당이라 서른 개 가까운 맥주그라스가 없는 건지 한참이나 부스럭거리다가 겨우 여남은 개가 들어와 소주를 한 잔씩 붓고
 
맥주를 따라 완성하는 폭탄주제조가 중단되자
 
“이런!”
 
표정이 홱 변한 구청장이
 
“이 봐! 도대체 니는 뭐하는 인간이고? 마 능력이 안 되면 자리를 내놓든지!”
 
열찬씨를 보고 더럭 화를 냈다. 갑작스런 사태에 식당 안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고 감사계장과 김형탁씨, 입구에 앉은 시청과 구청직원들 까지 나서 와인 잔처럼 생긴 이상한 글라스까지 총동원해 겨우 숫자를 채우는데
 
“감사원 오찬이면 감사실장이 챙겨야지. 이기 무슨 짓이고?”
 
성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손을 달달 떨었다.
 
“저어, 청장님, 그만 참으십시오. 우리 이 실장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또 술잔 챙기는 거쯤이야...”
 
김정효 계장이 간곡히 만류해 간신히 분위기가 수습되자
 
“아이구, 미안합니다.”
 
부구청장까지 나서 사과를 했다. 식사가 끝난 뒤
 
“자, 갑시다. 커피라도 한 잔 하게. 어이 김형탁씨, 감사장에서 커피 되제?”
 
뜻밖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직원을 불렀다. 아무리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고 해도 점심준비를 직접 챙겨야 하는 실무자와 계장을 다 두고 부서장인 자신을 그렇게 못 견디게 몰아붙이더니 벌써 봄눈 녹듯 마음이 풀렸는지 문제의 장본인에게 다정하기가 그지없는 것이었다. 청장과 나란히 걷는 김계장 뒤로 동석했던 감사관들과 간부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가는데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열찬씨가 부산은행골목을 빠져 부둣가나 한참 걸으려고 방향을 틀자
 
“실장님, 죄송합니다. 괜히 우리 때문에 욕을 먹고...”
 
하용주 계장이 송구한 표정으로
 
“일단 감사장으로 가봐야 하니 나중에 사과드리겠습니다. 소주나 한 잔 하십시다. 죄송합니다.”
 
하고 떠나고 열찬씨는 공중화장실 앞에서 장기를 두면 소일을 하는 땟물이 쪼르르한 군상과 야바위 윷판을 벌이고 손님을 유혹하거나 망을 보는 사내들을 지나 오징어하선작업이 한창인 배와 얼음운반리어카 사이로 휘적휘적 걸어 어판 장에 도착하니 마침 커다란 개복치 한 마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물량장에 누워있는지라
 
“아이구야!”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다. 개복치는 콩잎처럼 둥근 몸체를 거대한 상어가 한 입에 물어뜯는 이빨자국이나 누가 톱으로 자르기라도 한 것처럼 꼬리 쪽이 뭉툭 잘려나간 것처럼 꼬리도 없이 급히 봉합된 흉측하고 괴상한 몸매로 어떤 어종과도 다툼 없이 그저 조용히 해파리나 잡아먹으며 해면 위를 유영하다 그대로 잠이 드는 그 잠꾸러기에 게으름쟁이에 느림보라고 했다.
 
한번 잠이 들면 누가 떼 메고 가도 모를 판이라 지나가는 어부들이 발견하면 <바다의 로또>라고 부르며 즉석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피투성이를 만들어 잡아 올려도 아무 반향도 없이 마치 아직 잠도 안 깬 것처럼 그대로 죽어버린다고 했다. 또 투명한 해파리만 먹어서 껍질만 벗기면 온몸이 마치 청포묵이나 젤리처럼 흐물흐물한 그 육괴를 삶으면 무색무취의 담담한 술안주가 되어 포항죽도시장을 중심으로 어느 생선보다도 비싼 귀하신 몸이 되어 팔린다고도 했다.
 
그 피투성이의 모습이 특별히 남을 해치거나 미워한 일도 없이 무단히 가는 곳마다 수난을 당해 매일 수모를 당하는 자신만 같아 가만히 한숨을 쉬며 이젠 다시 감사장으로 가서 김정효 계장이나 감사반원들을 볼 기분이 아니라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와 털썩 의자에 앉아 넋을 놓고 앉았는데
 
“저어, 실장님!”
 
커피를 들고온 서무여직원이 공연히 눈치를 보며
 
“저, 전화왔습니다. 감사장입니다.”
 
해서 전화를 받으니
 
“아니 이실장님 괜찮소?”
 
김정효 계장의 목소린데 걱정의 빛이 가득했다.
 
“뭐, 그렇지요. 뭐 잘한 일도 아니고?”
“아니, 그까짓 유리컵이 없는 거야 실무자 잘못이지 우째 부서장인 이 실장책임이란 말이요?”
“...”
“이 실장이 마음고생 많이 한다는 소문은 들어도 이 정도인지는 몰랐네. 해도 해도 너무하네.”
“...”
“그라고 직원들이 맘에 안 들면 좀 조지기도 하고 성질도 좀 부리고 그만한 자리답게 힘도 좀 쓰고 말입니다.”
“...”
“아무튼 마음을 잘 다스리고 천천히 감사장에 오이소. 기분이 안 나면 오늘은 안 나와도 되고.”
“...”
 
오후 내내 그 피투성이의 개복치를 떠올리며 빈둥거리다 다섯 시가 넘어 감사원들이 철수했다는 소리를 듣고 어슬렁거리며 감사장으로 올라가는데
 
“어이, 하 계장, 김형탁씨! 감사받는다고 고생이 많제?”
 
문을 열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감사가 잘 끝나면 나름대로 근무평정이라도 잘 안 받겠나? 이 사람들아, 고생이 많네.”
 
친절하게 두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는 김모구청장을 보며
 
“...!”
열찬씨가 후다닥 발길을 돌리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직원들이 눈치 채지 못 하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한참이나 가슴을 진정시켜 사무실에 돌아온 그는 문득 벌써 7, 8년 전 중구에서 근무할 때 <안경 낀 구청장>의 필화사건으로 구청장은 물론 많은 사람들로 부터 지탄받고 무시당하던 시절에 쓴 <질경이 풀>이라는 시가 생각나 조심조심 기억을 되살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질경이풀(車前子)
 
짓밟혀도 좋아, 밟히는 대로
물러앉은 자리마다 뿌리내리며
가장 낮은 목소리로 웅성거리며
나 끝까지 살아남으리.
 
키 작고 볼품없는 질긴 잎새들
수레바퀴 지나가면 버둥거리다
억눌린 자국마다 궤적(軌跡)이 나면
원망은 않아도 기억하리라.
노끈처럼 질긴 꽃대 매달리라.
 
그러나 잊으려 애쓰리라.
지나가는 가랑비에 머리 행구고
달빛에 가슴 열어 이슬 매달고
풀벌레 우는 소리 듣고 살리라.
 
 
본청의 부이사관 감사관이 직접 참석한 금요일 오후의 감사총평에서
 
“서구는 행정, 법조, 교육과 스포츠 등 부산의 근대문화를 이끌어온 도심지였으나 근간 도심의 공동화와 노령화, 심각한 인구감소로 인하여 쇠퇴일로에 있었으나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인 민선3기를 맞아 김형호 구청장을 중심으로 600여 직원은 물론 14만 구민이 새로운 의지와 열정으로 하나 되어
 
그간의 전례답습과 무사안일의 비능률적인 행정행태를 탈피하고 과거 화려한 명성을 되찾기 위한 도심의 정비, 행정의 내실화와 주민복지향상에 힘쓰면서 서구의 얼굴인 송도해수욕장의 옛 명성회복을 위하여 매진하였으나 2003. 9. 12 전대미문의 태풍매미를 맞아 공들인 송도연안정비사업이 좌절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청장과 전 직원이 똘똘 뭉쳐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송도연안개발과 해수욕장정비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중앙정부의 예산을 확보하여 현재 그 면모를 일신하고 있으며 서대신동 꽃마을의 구덕수목원을 비롯한 문화와 휴식을 겸한 웰빙의 공간을 조성하는 등 그 발전의 기세가 역력한 가운데서 그 행정 내부의 짜임새와 봉사의 자세도...”
 
 
감사총평으로서는 좀 심하다싶을 정도로 우호적인 내용을 읽어나갔다. 아마 코너에 몰린 열찬씨를 위하여 김정효총괄계장이 많이 배려한 문맥인 것 같았다. 경징계요구 1건, 훈계 8건, 주의 11건, 현지시정 21건이면 피감사기관에서는 선방이요, 감사기관에서도 체면치례는 되는 셈이었다.
 
“수고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관일행과 구청장과 간부들이 배구코트에서 경기가 끝난 선수들이 인사를 나누듯 마주보는 줄을 지어 인사를 나누는데
 
“고맙습니다.”
 
열찬씨의 손을 잡는 김계장이
 
“수고했습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입술을 달막거리며 돌아섰다. 감사관들이 철수한 뒤
 
“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부구청장의 치하에
 
“내가 뭐로? 직원들이 고생했지.”
 
악수를 나누고 돌아선 구청장이
 
“직원들 모두 고생했어요.”
 
가까운데 있는 감사계장과 김형탁씨는 물론 다과를 접대하고 전화심부름을 하느라고 감사장에 차출된 여직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다가 열찬씨의 차례가 되자
 
“...”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지 못 해 그 싸늘한 손을 잡은 열찬씨가
 
‘수고했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삼키고 돌아섰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