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기득권 카르텔과 환영적 우월감
【조송원 칼럼】 기득권 카르텔과 환영적 우월감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3.07.06 12:41
  • 업데이트 2023.07.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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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카르텔’(The establishment)은 현재의 지배질서에서 특권적 지위와 권력과 이익을 나눠서 누리는 ‘정(政)·관(官)·경(經)·언(言)·학(學) 결속체’를 말한다. 검찰은 과거 군부 권위주의체제에서는 지배질서와 기득권 카르텔의 경호대로 기능했다. 공공적 견제나 감시를 벗어나 법 바깥에 있었고, 오직 정보기관의 은밀한 통제만 받았다.

민주화로 통치세력의 은밀한 통제가 약화하자 기득권 카르텔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전면으로 부상했고, 마침내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검찰은 심지어 정부의 다른 부처의 ‘심사과정’까지 압수수색으로 수사할 정도의 강력한 지배력을 휘두르고 있다. 현재로서는 기득권 카르텔의 정점이 검찰이다.

카르텔은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부당한 공동행위’를 말한다. 카르텔은 존재 차체만으로 불법이고, 중한 처벌을 받는다. ‘이권 카르텔’, ‘부패한 카르텔’, ‘우리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카르텔의 오남용이다. 시민단체나 노조, 그리고 일타강사의 잘못은 그냥 불법을 저지른 것이지, 카르텔이 아니다. ‘대장동 50억 클럽’을 ‘법조 카르텔’이라고 하면, 얼추 카르텔 뜻에 맞는다.

윤 대통령의 언어행위는 국어사전을 폐지 뭉치로 만든다. 그는 전 정부를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했다. ‘반국가 세력’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들, 또는 반국가단체를 지지, 성원하는 세력을 말한다. 그런데 전 정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은 ‘반국가단체의 주요임무 종사자’로서 국가보안법상 처벌 대상이다. 왜 처벌을 자처하는 주장을 대놓고 할까? 참 난해한 일이다.

이 난해한 언어행위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로 의사소통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땅띔도 할 수 없는 깊은 철학적 사유의 언표일까? 후보 시절부터 역대급 ‘아무 말 대잔치’의 주역이었다는 경험칙은 고개를 젓게 한다.

‘윤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 비리 의혹 수사를 해서 입시 전문가’라는 희한한 전문가관을 가진 사람이 여당 정책위의장인 박대출이다. 겸손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나도 전문가지만 대통령한테 많이 배운다’고 거든다. 이런 ‘천재적 알랑쇠’들을 곁에 두었기에 ‘정신승리’에 도취한 것일까? 더 깊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무지(無知)는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것이다. 모름을 모르면 아는 것만 확신하게 된다. 무지한 자는 용감하게 확언을 한다. 한 분야에 ‘1만 시간’ 이상을 들인 전문가는 확언을 하는 데 무척 조심스럽다. 앎 너머의 모름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연구 결과가 있다.

인지편향(認知偏向. Cognitive bias)의 하나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게 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도, 능력 부족으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능력이 없는 사람은 ‘환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턱없이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1999년 코넬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당시 대학원생이던 저스틴 크루거가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실험과 검증을 통해 본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

1.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2.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3.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한 곤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4. 훈련을 통해 능력이 크게 향상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깨닫고 인정한다.

훈련이나 학습은 무지의 자각에서 비롯한다. 무지의 자각은 비판의 수용이 출발점이다. 무지하더라도 현명한 리더는 조직 내에 레드팀(Red Team/조직 안에서 모의 적군의 입장을 취하는 그룹)을 둔다거나, 이너서클(Inner Circle/권력 실세) 내에서 비판을 활성화한다.

윤 대통령 주위에는 어떤 인사들이 있는가. “김정은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통일부 장관 지명자, 극단적 음모론을 펼쳐온 유튜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임명자, “문재인 간첩인 걸 국민 70%가 몰라” 라고 막말한 검찰 출신 경찰제도발전위원장 등 극우 인사들이다. 이런 인사들은 대통령을 자각시키는 비판은커녕 환영적 우월감을 부추길 뿐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힘은 권력기관에 대한 장악력 못지않게 국정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극우 인사들의 국정 지지에 대한 기여는 극히 제한적이다. 범위를 넓혀 기득권 카르텔은 국민의 지지에 얼마나 기여할까?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은 기득권 카르텔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친 정치인이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2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유죄(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2013년에 사면, 복권되었다.

방통위는 수신료 분리 징수 내용을 담고 있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는 국민들에게 의견을 내라는 뜻이다. 국민 의견을 분석해 보니 89.2%가 ‘분리 징수 반대’로 나타났다. 야당 의원이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김 직무대행은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 이런 데 의견 내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입법 예고의 취지를 부정하는 발언이자, 과거 ‘개돼지 발언’을 연상시키는 국민 무시 발언”이다.

조송원 작가

환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대통령은 기득권 카르텔에 기대 통치를 하려 한다. 그 기득권 카르텔은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대통령에게 국민을 조작의 대상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조작에 실패해도 기득권 카르텔은 온존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몰락한다.

따라서 대통령을 지켜주는 집단은 기득권 카르텔이 아니라 비판적인 시민이다. 대통령이 기득권 카르텔과의 연결 끈은 이익(기득권)이나, 시민과의 연결 끈은 정의이다. 대통령이 특정 집단에 이익을 줄 수 있는 권력은 유한하나, 정의는 세월을 초월한다.

대통령은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그만큼 시민들도 환영적 우월감의 대통령뿐 아니라, 기득권 카르텔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부정의의 시작과 끝이 기득권 카르텔이기 때문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