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마음’이 부러워하는 뱁새와 들쥐
【조송원 칼럼】 ‘마음’이 부러워하는 뱁새와 들쥐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3.07.09 09:42
  • 업데이트 2023.07.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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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송원]

외발 짐승인 기(夔)는 발이 많은 노래기(지네)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발도 없이 몸만으로 움직이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자신에게 지시하는) ‘마음’을 부러워한다. -장자/추수 8-

그 ‘마음’은 무얼 부러워할까? 『장자』의 이야기는 어차피 우화이다. ‘장자적’ 상상력으로, ‘마음’은 뱁새와 들쥐를 부러워했을 것 같다. 아무 뱁새나 들쥐가 아니다. ‘뱁새가 둥지를 트는 곳은 깊은 숲속의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들쥐가 황하의 물을 마시는 것은 제 양만큼에 불과하다’(장자/소요유 4).

자연의 이치를 알아 숲 전체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황하의 모든 물을 탐하지 않는 뱁새와 들쥐, ‘마음’이 지향하는 궁극이 아닐까?

 

우물은, 고을은 고치되 우물은 고치지 못하니(井 改邑不改井)
잃을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无喪无得)
가고 오는 이가 ‘우물, 우물’하나니(우물을 길어 먹고 먹나니)(往來井井)
두레박줄이 거의 닿을듯하지만 아직 우물을 길을 수 없으나(汔至亦未繘井)
그 병(두레박)을 깨면 흉하니라(羸其甁凶). -주역/수풍정(水風井)-

 

임금이나 도읍지, 조정 또는 정치하는 정부 요인들이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을 하면 모두 들어내서 뜯어고쳐야 하지만(改邑), 백성이 살아가는 근원인 민생문제를 고쳐서는 절대 안 됩니다(不改井). 도읍지는 이리저리 옮길 수 있지만, 샘물이 나오는 우물은 짊어지고서 어디로 옮겨 다닐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바로 백성을 위한 정치의 원칙을 고칠 수는 없고, 정치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인들은 모두 들어내 새사람으로 교체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물물이 탁하거나 막혀서 물이 안 나오면 뜯어고쳐야 하듯이, 정객은 임금이고 뭐고 간에 들어낼 건 들어내서 새사람으로 채워 개혁을 해야 하지만(改邑), 물이 나오는 원천은 못 고치는 것과 같이 모든 제도나 법령 등은 백성의 민생안정을 근본으로 해야 합니다(不改井). -대산 김석진/대산 주역강의-

 

대산 선생의 ‘井 改邑不改井’ 풀이의 현실 적합성에 새삼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두레박줄이 거의 닿을듯하지만, 아직 우물을 길을 수 없다’(흘지역미율정)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 병(두레박)을 깨면 흉하니라’(이기병흉)으로 위안을 삼는다.

묵점 기세춘 선생의 좌우명이 ‘두레박줄이 거의 닿을듯하지만, 아직은 우물을 길을 수 없다’이다. 그는 동양고전의 기존 번역의 오류와 모호성을 바로잡고, 의병이었던 조부와 독립운동을 한 부친을 이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원로이자 진보적 한학자였다. 그러한 그도 두레박줄이 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동서양 고전과 정치, 경제, 사회과학은 물론 과학서적까지 탐독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자기고백을 한다.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줄이 짧다고 ‘그 병(두레박)을 깨면 흉하다’ 얕은 샘물에서는 두레박이 아니라 작은 쪽박이라도 제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 어쩜 사람은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내적 환경, 곧 자신의 한계에도 적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뱁새나 들쥐라도 자기 한계의 인식 속에서는 바람이 부러워하는 ‘마음’의 부러워함이듯이.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