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 22 - 인본특집】 해양국가 대한민국의 비전 : 바다의 재발견 - 김영춘
【인본세상 22 - 인본특집】 해양국가 대한민국의 비전 : 바다의 재발견 -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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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26 15:27
  • 업데이트 2023.07.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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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국가 대한민국의 비전 : 바다의 재발견 / 김영춘 (인본세상 편집주간)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대한민국은 해양국가입니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니까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고 답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대륙에 붙은 반도국가입니다만 국토분단으로 인해 지난 70여 년 동안 북쪽이 막힌 섬나라보다 못한 섬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지를 통해서는 외국과 왕래도 못 하고 바다를 건너야만 외국과 교역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해양국가입니다. 

먼저 바다는 치열한 산업현장입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 수출, 수입을 통해 이룩한 눈부신 경제발전도 대부분 바다를 통한 수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도 무역량의 99%는 선박으로 실어 나릅니다. 금액으로 따질 때는 비행기를 통한 고가품 수송 비중이 크기에 비율이 달라지지요. 그런데 우리 무역 화물들을 수송하는 해운 선대 가운데 한국 국적 선사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불과 30%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60%를 자국 선대로 수송한다니 그 정도 돼야 해양국가 소리를 할 수 있겠지요. 그 30%마저도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조치로 20% 비중으로 추락했던 것을 2017년 제가 해수부장관으로 부임 후 해운재건계획을 통해 과거의 비중을 회복시켜 놓은 것입니다. 

과거 경제관료들은 우리나라의 해운업이 경쟁력이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물론 많은 해운사들의 경영이 부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잘못 지도, 감독한 정부의 책임도 큽니다. 문제는 일부 해운기업 경영진과 정부 모두 글로벌 해운산업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경쟁력을 갉아먹는 방향으로 바보 경주를 했던 데 있었습니다. 이런 반성 위에서 경쟁력 있는 선박의 확보와 글로벌동맹의 경쟁관계를 잘 활용한 전략의 구사가 우리 해운산업을 살리는 요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일본처럼 자국 무역량의 절반 이상을 자국 선박으로 수송하는 명실상부한 해양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만 연간 수십조 원의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겠지요. 수많은 연관 파생산업에 미치는 낙수효과는 훨씬 더 클 겁니다. 일본의 높은 자국선대 비중은 한국,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자국 조선산업을 지탱하는 방파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본 선주사가 우호적 관계에 있는 일본 조선소에 배를 발주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기 때문입니다. 이에는 일본 금융기관들의 중간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가장 중요한 선박금융을 공급해주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의 성장 잠재력이 고갈되었다고 합니다만 눈을 돌려보면 이렇게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특히 부산을 비롯해 바다에 인접한 지역들에서 이런 확장의 선봉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금융산업을 잠깐 살펴볼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대형 은행들은 각각 연간 수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잘 나가는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수익구조는 여전히 부동산대출을 중심으로 예대마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통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이나 미국의 큰 은행들은 투자은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요. 연간 5천억 달러가 넘는 전 세계 선박금융시장만 하더라도 근래 들어 퇴조 기미가 있긴 하지만 절대 강자는 유럽계 은행들입니다. 그들이 수백 년 전부터 해오던 일들이니 당연하다 여길 것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 동안 그들의 줄어든 비중을(80%에서 60%로) 중국, 싱가포르 등이 대체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우리가 분발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됩니다.

21세기 들어 세계 무역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오면서 특히 싱가포르, 상하이 등 해양도시들의 경제적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엄청난 무역 물류의 허브 위치를 차지하고자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함께 해양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산업의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산진해항이라는 좋은 무역중심항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대비전에 입각한 종합적 산업 육성에는 등한시하고 있지요. 산업 육성의 대원칙은 민간 시장을 만들고 키워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차치고 포치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지역은행인 부산경남은행을 해양금융 특화은행으로 지원, 발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국토균형발전의 성공적 모델이 될 수 있겠지요.

바다와 관련된 다른 산업은 어떨까요? 우리가 흔히 먹는 오메가3 영양제는 대부분 해양생물에서 추출한 것들입니다. 글로벌 시장 규모가 6조 원이 넘는데 약품이 아니라 건강식품이어서 시장진입 장벽이 낮지만 우리가 먹는 오메가3는 대부분 수입산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바다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약품, 식품 개발은 3면이 바다이고 과학기술 수준이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우리나라로서는 도전, 개척할 여지가 충분히 큰 영역입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바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해산물이고 그것을 잡고 키우는 수산업일 것입니다. 그 수산업이 지난 10여 년 동안 급전직하 추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안어업이 그렇습니다. 수산자원의 고갈, 기후온난화로 인한 해양환경의 변화 등으로 연안 어획고는 과거 전성기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하였습니다. 원양어업도 국제적 규제와 연안 국가들의 조업 및 수출제한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양식업도 연안어업 일반의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습니다만 나름의 돌파구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우선 전복, 해삼, 굴 등 기존 양식 품목들의 친환경적 품질 관리와 양식가공기술 고급화로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고부가가치화하는 것이 한 길입니다. 말린 해삼 상등품만 하더라도 거대 중국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품목입니다. 

다음으로는 연어, 참치 등 어종들을 기업 수준에서 양식하여 수입을 대체하는 사업이 유망한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통영 욕지도 앞바다에서 양식회사들이 20년 동안 고생한 결과 그동안 일본, 하와이 등으로부터 수입에만 의존하던 고가의 참다랑어 대량 양식에 성공하였고 전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원양어업의 선구자 격인 한 기업은 강원도에서 노르웨이산 수입 연어를 대체할 육상 양식장을 건설 중입니다. 이런 류의 수입대체형 양식사업은 기존 어민들과 이해 충돌이 크지 않기에 적극 장려하여 수출 품목으로도 육성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바다는 사람들의 휴식과 재충전 공간이다

바다와 관련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는 그 바다가 사람들이 가까이서 즐기고 휴식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거기서 치열한 삶의 현장이나 비즈니스를 떠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각박한 생활 속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의 에너지를 얻고자 희망할 것입니다. 선진국가들에서는 바다를 질병과 사고로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는 공간으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바다 여건이 열악한 독일에서도 북쪽 발트해 해변에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해양치유사업이 진행되고 있지요. 우리는 그런 소중한 바다를 오염과 난개발로부터 잘 지켜낼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힐링 공간으로서의 바다와 직결되는 일이 해양관광산업입니다. 부산이나 여수, 제주의 관광산업이 바다를 빼놓고 성립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이 해양관광산업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걸음마 수준이라고 여겨집니다. 기껏 해변의 숙소에서 숙박하면서 물놀이하고 해산물 사 먹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한국 정도의 소득 수준에서 해양레저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않은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늘어난 낚시 인구만 봐도 저변의 수요는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인프라가 태부족이라는데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요트마리나인 부산수영만 마리나에 처음 가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전에 들러봤던 미국 마이애미의 요트마리나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의 선박 인프라는 훨씬 더 열악합니다. 섬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안 포구들에는 타지에서 건너간 배를 정박할 부두시설이 태부족입니다. 모처럼 요트나 보트를 몰고 바다에 나갔는데 하루 항해 끝에 배를 정박할 부두가 없다면, 또 적당한 숙소가 없다면 어떻게 해양관광이 발전할 수 있을까요? 관광여행의 꽃이라는 크루즈산업의 발전도 더디기만 합니다. 한국 항구를 모항으로 하는 관광크루즈선이 없으니 그런 기회를 찾아 외국의 항구까지 비행기로 날아가서 크루즈에 승선하는 여행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희망의 실마리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화성 전곡항이나 여수의 이순신마리나 등 요트하버들이 성업 중에 있고 부산 북항 등 새로운 요트 마리나들이 속속 완공되고 있습니다. 제가 해양수산부에서 일할 때 시작했던  어촌뉴딜300사업을 통해 섬이나 연안 포구들에도 작은 다목적 정박시설들이 만들어지고 있고요. 수상레저기구, 소형선박 조종면허를 획득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남 신안군의 안좌도 퍼플섬이 잿빛 서해바다를 환상적인 꿈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이런 물리적, 인적 인프라들이 모여 해양관광산업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남해, 동해, 서해 바다가 국내외의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해양관광과 힐링의 명소가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지역마다의 특색을 잘 살려 친환경적 관광 인프라를 잘 만들어 주면 우리 바다를 둘러싼 연안과 섬들은 지중해 못지않은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바다와 관련한 저의 마지막 소망은 하루빨리 남북 화해와 통일의 길이 열려 한강이 바다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한강 하구가 다시 터져 서울, 경기도 사람들이 요트, 보트를 타고 강화도 앞바다를 거쳐 백령도로 평양으로 항해하고 남쪽 바다로도 나아갈 수 있다면, 전쟁과 충돌의 긴장으로 점철된 서해 바다는 거꾸로 한반도 평화의 상징적 공간이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온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 김영춘 

▷제 16·17·20대 국회의원, 제20대 해양수산부 장관, 제34대 국회사무총장

▷현 (사)인본사회연구소의 정기간행물 『인본세상』 편집주간

<pineread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