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37)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12장 이번엔 태풍 나비가②
대하소설 「신불산」(537)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12장 이번엔 태풍 나비가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7.28 08:00
  • 업데이트 2023.07.26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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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번엔 태풍 나비가②

“과장님, 그럼 저는.”

고개를 꾸뻑하고 방을 나갔다. 과장이 자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처리할 판에 굳이 계장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모양이었다. 보통의 계장들이라면 상관인 과장이 자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어 어떻게든 집에 보내고 자신이 고생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말이다.
(내 저런 사람을 요직 문화계장에 추천까지 했다니...)
 
이튿날은 최정길재난관리계장이 근무조라 처음부터 자신이 자고 열찬씨를 어떻게든 보내려고 신경을 쓰는 통에 업무는 신경을 끊고 모처럼 귀가해 샤워를 하고 잘 잤다.
 

다음날이었다. 직원들이 야식을 먹느라고 분주한 사이 상황실에 들러 근부조별 메시지처리와 군사동향 등 종합상황을 꼼꼼히 챙겨 이튿날 아침 8시에 구청장, 4대대장이 참석하는 브리핑자료를 만들어 한번 읽어보며 보고준비를 한 후에 방으로 돌아와 누웠을 때였다. 상황실에서 시청의 점검반이 나왔다고 해서 황급히 달려갔다. 마침 어느 정도 면이 있는 사무관동기라 점검이기보다는 환담을 나누다 보내고 상황실을 나오려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을지연습주무계장이자 당일 근무자인 안승덕 계장이 보이지 않아

“안 계장은?”
 
상황정리담당 정현오씨에게 묻자
 
“그게...”
 
머리를 긁적거려
 
“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일부러 큰 소리로 묻자
 
“집에 간 모양입니다.”
“언제?”
“아까 과장님 침대 깔고 눕는 것 보고 바로 나간 모양입니다.” “에라이!”
 
혀를 끌끌 차던 열찬씨가
(그래 내 손으로 내 눈 찔렀지...)
 
푸욱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한해 여름이 무난하게 잘 넘어가고 있는 8월 말경이었다. 문득 방재안전과에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8월 29일 월요일 일기예보에 필리핀 북쪽 남중국해에서 제 14호태풍 <나비>가 점점 세력을 확보해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한다는 것이었다. 자라(鼈) 보고 놀란 토끼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지지난 해 태풍 <매미>에 놀란 열찬씨의 가슴은 사정없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나비>라고? 북한에서 지은 이름 <매미>때문에 혼쭐이 난 열찬씨의 뇌리에는 남한에서 명명한 이번의 <나비> 역시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모든 태풍이 그렇듯 직접 당해봐야 실제 그 위력을 알듯 태풍의 눈이 형성되고 있는 필리핀 남쪽 남중국해와는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이라 예로부터 <조용한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은 아직 그야말로 고요와 평화에 빠져있었다. 머나먼 바다에서 태동하기 시작하는 열대성 저기압, 그게 장차 태풍이라는 거대한 맹수가 되고 이어 걷잡을 수 없는 폭군이나 악마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방향도 서북쪽의 중국 양자강 방향이나 동북쪽의 일본본토나 더 동쪽의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어쩌면 곧장 북상 대한민국을 땅을 유린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신기루나 무지개처럼 언뜻 나타났다 슬며시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라 전국의 기상청이나 재난관련공무원 또는 어부나 등대지기정도나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 화요일아침에 방재과직원들의 책상위의 컴퓨터에 대부분 태풍진행사항의 위성영상이 켜진 채로
 
“오늘은 태풍 나비의 진로가 어떤가?”
“예. 아직은 필리핀 루손섬 북쪽해상에서 중심기압 980헥토파스칼, 풍속 28미리세컨드 정도로 조금 센 강풍에 이를 정도입니다.”
“그래요. 그만 슬그머니 주저앉거나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본토로 방향을 잡아 대한민국은 무사했으면 좋겠군.”
“아이구, 과장님도! 중국이나 일본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피차일반이지요.”
 
하고 실실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마침내 8월말일인 수요일아침에도
 
“오늘은 어디까지 왔지?”
“예, 오늘 새벽 0시부로 일본 오키나와 서쪽해상을 지나면서 갑자기 세력을 확산 중심기압 950헥토파스칼, 순간최대풍속 46미터의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하였답니다.”
“그래요. 제발 태풍진행방향이 우리나라는 피해가야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같은 비상근무조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하느님아버지께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에라이! 그 기 말이나 되나? 태풍추이를 봐서 언제 쯤 어느 규모로 직원비상근무를 발령할지나 검토하세요. 오늘 오후나 내일 아침엔 청장실에 간단한 보고서도 올리고.”
“예.”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일찍 퇴근해 저녁을 먹는데
 
“보소. 당신 태풍이 온다는데 그래 태평스럽게 저녁이나 먹어도 되능교?”
“그럼 우짜란 말이고? 내가 시방 일본 오키나와로 가서 바람이라도 가로 막을까?”
“그 기 아이고 지금 오키나와에 사람이 죽고 집이 무너지고 난리가 났다 아잉교? 커다란 야자수랑 바나나나무가 몽땅 부리째 뽑히고.”
 
안 그래도 궁금해서 숟가락질을 하면서도 유심히 듣고 있는 열찬씨의 마음에 불안감을 키우는 것이었다.
 
“우짜면 내일부터 한동안 집에 못 올지도 모른다. 당신도 각오 단단히 하소.”
“아이구야! 나는 태풍 매미 때 당신 집에도 못 들어오고. 우짜다가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다싶을 몰골로 들어와서는 무슨 악몽을 꾸는지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소리를 지르고 침대에서 떨어지고...”
“씰 데 없는 소리. 지나간 이야기는 마로 자꾸 하노?”
하고
“며칠 못 볼낀데 아아 재워놓고 같이 잘까?”
 
눈을 찡긋하자
 
“이 양반이 태풍 온다카이 정신이 살짝 했나? 전에 안 하던 짓을 다 하네.”
 
하는데 안방에서 갑자기 “으앙!” 아이우는 소리가 들려 영순씨가 황급히 달려갔다.
 
 
자고나서 달이 바뀌어 9월 1일.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집에서 기상속보를 봐서 그런지 방재안전과 직원들의 얼굴들이 잔뜩 굳어 있는 것은 물론 천하태평 조명순계장이 다가오며
“과장님, 괜찮겠습니까?”
“아니, 괜찮기는? 시방 이웃 일본에서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나가고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언제 덮칠지 모르는 판에.”
하고 계장과 주무들을 원탁으로 모으고.
“다들 아시겠지만 태풍 나비가 심상찮아요. 오늘 새벽의 세력이 중심기압 935헥토파스칼, 순간풍속 60미리세컨드에 육박한다고 하니 대형태풍 중에서도 초대형태풍일 것이요. 각 실과동에 미리 통보를 해서 태풍이 상륙하기 전에 공사장이나 해수욕장의 안전점검, 선박통제와 대피, 남부민동방파제와 암남공원등에 낚시꾼을 비롯한 출입자통제, 하다 못 해 지붕이나 간판 결속(結束)까지 세심하게 대비토록하고 특히 태풍의 진전에 따라 어느 시점에 어느 규모로 직원비상근무를 시킬지도 검토하시오.”
 
하고 한 장짜리 <제 14호 태풍나비 대책보고서>를 작성해 국장실과 부구청장실, 구청장실을 한 바퀴 도는데 다들
 
“아이구, 이과장님 고생 많겠네.”
 
걱정을 하는데 비해 김모구청장은
 
“태풍이라 카면 우리 이 과장이 또 전문가 아이가? 그 심한 매미도 넘겼는데.”
 
하면서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순간
(관동대지진 때 일본사람들이 죄 없는 조선사람들을 학살하듯이 매미태풍으로 송도연안정비사업이 좌초되자 괜히 생사람 기획감사실장 이열찬이만 잡은 사람이...)
 
불끈 치솟는 생각을 삭히면서
 
“직원 비상근무는 태풍이 한반도방향으로 진행하는 상태를 봐서 우선 직원 1/3 정도로 시작할까 합니다.”
 
하고 방을 나왔다.
 
그날 오후 여섯시 퇴근시간이 가까워 태풍진행 위성사진을 보던 열찬씨가
 
“중심 기압 930에 순간풍속 72라 이건 우리가 직접 맞지 않아 그렇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태풍이군. 우리 어릴 적 사라호나 지난번 매미호보다도 더 세군.”
 
계장들과 주무들을 원탁에 모으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네. 특히 이번 태풍은 오키나와에 무려 1,000미리의 강수량이 기록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다니 저지대가 많은 우리 서구 같은 경우에는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겠군. 이종철계장은 내일 아침 6시부터 준설인부, 건설인부 할 것 없이 몽땅 투입시켜 상습침수지의 하수구를 점검하게. 그리고 각 실과동의 직원 1/3을 비상근무토록 하령하고 오늘 밤 근무자명단을 제출하라고 하게.”
 
하는데
 
“과장님, 지금 상태로 봐서 아무리 빨라도 내일 오후 또는 저녁에야 제주도동쪽 해상을 지나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답니다. 오늘은 직원비상근무를 시키지 말고 동사무소 유인당직 정도로...”
 
최정길 재난관리계장이 간절하게 바라보는지라
 
“그러면 각동에서는 유인당직, 현업부서인 도시국의 건설, 건축, 교통행정, 사회산업국 지역경제과에서도 1명씩 근무토록하고 우리 과에서는 직원 1/2이 근무토록하세.”
 
하고 남은 직원들의 저녁으로 중국집에 짜장면과 짬뽕을 시키니 서비스로 군만두를 가져와 급히 소주 두병을 사와서 몇 잔씩 마시고 발그레한 얼굴로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정이 다 되어
 
“이제 제주도 동쪽 해상에 거의 근접했는데 여전히 중심기압 930 순간풍속 72로 초대형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군. 다행히 제주도에는 아직 특별한 피해가 보고되지 않고 오키나와에는 강수량이 무려 1,300밀리미터가 넘었다는구먼. 자, 최정길계장님, 물론 아침까지 태풍이 안 오겠지만 일단 내일아침 6시부로 직원 1/3 비상근무를 발령하세. 이대로 손 접고 있다가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괜한 욕이나 먹을지도 모느니.”
“그래도 아직 하늘이 말간데요?”
“허어, 참 그 사람도! 여섯 시로 한다는 것은 아홉 시 출근시간 전까지 알아서 나오라는 것과 다름없다 아이가? 여섯 시에 발령하면 집이 가까워 걸어오는 사람이 아니면 일곱 시나 여덟시에 오면 그게 그거지. 단 우리가 태풍을 맞아 신경을 쓰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뜻이잖아?”
 
직원비상근무계획을 짜서 과감히 과장전결로 처리하는데
 
“전결(專決)로 해도 되겠습니까? 비상소집은 걸더라도 결재는 내일 출근 후에 후결로 하는 것이...”
 
신중을 지나 소심한 느낌으로 최정길계장이 쳐다보는데
 
“태풍이나 전쟁이나! 급하면 급한 대로 그냥 갑시다.”
 
하고 다시 눈을 붙였다.
 
 
목요일 9시 구청장의 출근시간에 맞춰 밤새 직원비상근무령을 내린 일과 현재 태풍방향과 기압, 풍속을 설명하는데
 
“그놈의 나비가 온다온다 말만 하고 도대체 언제 온단 말이요? 오기는 올 거요?”
 
그날따라 느긋이 물어
 
“예 오늘 중으로 제주도에 가시적인 영향이 나타날 것 같고 내일 금요일 오후쯤에는 우리 부산지방에도 강풍이나 폭우 등 다소 영향을 미칠 것으로도 보입니다. 경우에 따라 상당히 높은 파고가 일지도 모르고요.”
“그럼 송도연안정비로 새로 만든 스탠드 시멘계단이랑 목재 데크가 큰일 아니가?”
“예. 다행히 2사장 현장에 임해행정센터를 짓는 바람에 거기서 바로 바다와 백사장을 살피며 비상근무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한반도에는 그렇게 심각한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알았네. 자네만 믿네.”
“예. 잘 알겠습니다.”
 
돌아 나오면서도
(저 놈의 영감탱이! 또 피해가 나면 죄 없는 방재과장 이 이열찬이만 개 잡듯이 잡겠구나. 방재과장이 태풍을 부른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막을 수도 없는데...)
 
혀를 끌끌 차면서 돌아왔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