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38)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12장 이번엔 태풍 나비가③
대하소설 「신불산」(538)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12장 이번엔 태풍 나비가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7.29 05:50
  • 업데이트 2023.07.27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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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번엔 태풍 나비가③
“그럼 송도연안정비로 새로 만든 스탠드 시멘계단이랑 목재 데크가 큰일 아니가?”
“예. 다행히 2사장 현장에 임해행정센터를 짓는 바람에 거기서 바로 바다와 백사장을 살피며 비상근무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한반도에는 그렇게 심각한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알았네. 자네만 믿네.”
“예. 잘 알겠습니다.”
 
돌아 나오면서도
(저 놈의 영감탱이! 또 피해가 나면 죄 없는 방재과장 이 이열찬이만 개 잡듯이 잡겠구나. 방재과장이 태풍을 부른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막을 수도 없는데...)
 
혀를 끌끌 차면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나자 제법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 이제 여름이 완전히 갔다 싶은 기분이었는데 오후 세시쯤 가는 빗방울이 돋기 시작하더니 비도 바람도 점점 거세져 오후 6시 퇴근 전에는 온천지가 깜깜해졌다.

직원 1/2 비상근무명령을 부구청장전결로 받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자
 
“제 14호 태풍 나비는 현재 제주도 동북쪽 해상을 거쳐 일본 쿠우수우 방향으로 중심기압 930헥토파스칼, 순간풍속 70미리세컨드 초대형 태풍으로 북서진하고 있습니다만 일본 쿠우수우에 상륙하면서 방향을 북동진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할 만큼 집중호우를 퍼부어 일본 오키나와에 1,300밀리미터의 전대미문의 강수량을 기록한 태풍나비는 우리나라 제주에는 산간지방의 호우로 일부 저지대가 침수된 것을 빼고는 아직 큰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부산, 울산 등 한반도 동남해안쪽에 미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바 국민여러분들께서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태풍속보를 경청하시고 태풍발생시 행동요령에 따라...”
 
아나운서의 숨 가쁜 목소리를 들으면서
 
“최 계장, 우리는 이제 송도 임해행정센터로 옮깁시다. 사무실은 안승덕 민방위계장이 지키고.”
 
하면서 허겁지겁 송도해수욕장 임해행정센터로 가서 자리를 잡고 컴퓨터를 켜는데 따르릉 전화가 오더니
 
“어이, 이 과장 괜찮나?”
 
구청장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예. 비가 오고 바람이 불지만 아직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바다는, 파도는?”
“예.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평소보다 조금 거센 정도고 아직 백사장이 절반 이상 남아 있어 스탠드나 목제데크, 도로와 횟집이 침수될 우려는 없습니다.”
“그럼 잘 살피게.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게.”
“예.”
 
하고 겨우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30분이 채 안 되어 또 전화벨이 울리더니
 
“이 과장 괜찮나?” “예. 아직은 요. 그러나 파도도 점점 거세어 방파제위로 하얀 포말이 보입니다. 백사장도 반 이상 물에 잠겼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 나가볼까?”
“아, 아닙니다. 오셔도 특별히 하실 일도 없고 제가 자주 보고하겠습니다.”
 
하고 9시 땡 치는 것을 보고 먼저 전화를 걸어
 
“청장님, 이제 백사장이 모두 사라지고 스탠드가 잠기기 시작합니다. 태풍속보에 지금 일본 쿠우수우를 강타한 나비가 일본 동북해방향으로 물러나고 있다고 하니 여기도 앞으로 한두 시간이 고비일 것입니다.”
“그래. 제발 아무 피해 없어야 될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자, 계속 수고하고 또 연락 주게.”
“예.”
 
전화를 끊고 나니 밖은 더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통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도 타닥타닥 콩을 볶듯 한결 거세어졌다. 우의를 단단히 조여매고 밖으로 나가니 이제 완전히 잠긴 백사장위로 밀려온 파도가 스탠드꼭대기를 넘어오려는 판이었다. 노란 가도등빛을 빗줄기가 빗금으로 스쳐가는 시야는 이제 백사장도 방파제도 보이지 않은 일망무제의 깜깜한 밤바다에 간혹 한 덩어리로 밀려오는 파도의 포말과 문득 후두둑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이제껏 살아온 이승이 아닌 꿈속이나 별천지만 같았다.
 
“사무실에 연락해보게. 침수나 별 다른 피해는 없는지.”
 
2층 임해행정사무소에 들어와 밤바다를 투시하는데
 
“사무실엔 별 이상이 없답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가 큰일 났습니다.”
“우리가 큰일이라니? 설마 해일이나 쓰나미에 우리가 갇혔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아래층 공중화장실이 완전히 침수됐단 말입니다.”
“난 또 뭐라고? 백사장이 끝까지 침수되었느니 당연히 침수되었겠지. 태풍 그치면 깨끗이 청소하고 방역소독이나 하면 되지 뭐.”
 
하고 한참이나 태풍속보를 보는데 이제 북쿠우수우와 시코쿠를 지난 나비호는 동북동방향의 태평양을 향해 급선회하고 있었다. 다시 따르릉 전화가 와서
 
“어이, 이 과장! 어떻노? 목제대크위에도 완전히 물이 찼나?”
“글쎄요. 지금 확인중인데 아마도...”
 
하는데 정현오씨가 황급히 올라오며 열찬씨에게 눈을 끔뻑끔뻑했다.
 
“잠깐만요. 청장님.”
 
송화기 쪽 구멍을 손으로 막고
 
“와?”
 
묻는데
 
“비바람이 조금 약해지고 물이 빠지고 있어요. 목재데크에 찰랑찰랑 차기 시작하던 물이 갖아지고 지금은 계단 윗부분이 드러났어요.”
“그래?”
 
하고는
 
“예, 청장님. 다행히 비바람이 조금 약해지고 물이 빠지고 있어요. 목재데크에 찰랑찰랑 차기 시작하던 물이 갖아지고 지금은 계단 윗부분이 드러났답니다.”
 
정현오씨의 말을 그대로 리바이벌하는데
 
“그래. 다행이네. 계속 주의 깊게 관찰하게.”
“예.”
 
우산을 찾아 쓰고 밖으로 나가니 어느 새 빗방울이 드문드문해지고 바람도 한결 가벼워져 우산이 견딜 만 했다. 목제테크 아래로 스탠드도 두 계단이나 드러나 계단마다 소복하게 밀려온 모래와 파도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자네는 1사장 끝에서 거북섬 앞까지 자네는 2사장 지나서 횟집촌 끝까지 살펴보고 오게.”
 
직원 둘을 순찰 보내고 돌아와
 
“청장님, 급한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비바람도 거의 그치고 물이 계단 아래까지 내려가 백사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건설인부, 직원, 단체원들을 동원해서 밀려온 파래와 쓰레기를 치우고 모래평탄작업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만하기도 다행이네.”
 
하는데 직원 둘이 돌아와 별 이상이 없다고 팔을 양가로 벌리는 지라
 
“방금 거북섬하고 2사장 횟집 끝까지 직원들이 돌아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아, 알았네. 다들 수고했네. 자네들도 현장 사정 봐서 돌아오도록 하게.”
“예.”
 
하고 전화를 끊는데
 
“과장님, 이거 생각보다 영 싱겁네요. 저는 처음 맡은 주무라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오늘 집에도 안 들어간다고 했는데요.”
“와, 그라면 인지라도 비바람이 좀 더 오라고 할까?”
 
한결 느긋해서 농담이 나오는데
 
“과장님!”
 
아직도 긴장이 역력한 서정미씨를 필두로 도로계장과 순찰차 기사 강세훈씨까지 올라오며
 
“수고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각자 손을 내밀어 서로서로 악수를 했다.
 
“자, 상황 끝! 철수!”
 
열찬씨가 컴퓨터를 끄고 일어서는데
 
“과장님, 그 게 아니지요? 지금부터 태풍나비기념 소주태풍을 맞아야지요.”
 
이종철 계장의 말에
 
“그러게. 어디 장사하는 집이 있을는지? 정현오씨, 사무실 팀도 같이 가자고 연락하게.”
 
하고 이제 평온하게 잠든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거 싱겁구먼.”
“이거 아이도 낳기 전에 똥두디기 걱정부터 한다고 우리가 너무 심하게 겁낸 거 아이가?”
“이기 다 유비무환 아이가?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안 했나?”
“내사 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매미 때 식겁 묵은 기 아직도 안 내려갔다.”
 
아침의 방재안전과가 시끌벅적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기도 했지만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것 같은 일종의 개선의식과도 같아보였다.
 
계장회의에서 저녁에 직원회식을 하자고 약속하니 도시국장이 전화를 해서 자신과 부구청장도 잠시 참석을 하겠다고 했다. 격려도 격려지만 업무추진비로 회식비를 내겠다는 말 같았다.
이제 느긋하게 TV와 인터넷의 태풍속보를 보며 여운을 즐기는데
 
“이제 태풍 나비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완전히 동해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기압골의 영향인지 울릉도일대에선 아직도 계속 집중호우가 내려 상당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일본 쿠우수우지방과 울릉도의 산사태와 침수피해를 보도하는 것이었다. 속보의 끝엔
 
“이번 태풍 나비의 특성으로는 발생 이후 29℃ 이상의 높은 해수면온도 지역을 통과하면서 급격히 발달하여, 9월 2일에는 중심기압 925hPa, 중심부근 최대풍속 49m/s로 매우 강한 대형 급 태풍으로 발달하였고, 또한 태풍의 이동 방향에 높은 해수면온도 지역이 분포하고 있어,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북상하여 일본 쿠우수우지방에서는 1,300mm가 넘는 집중호우를 기록하였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강수는 동해안지방과 경남 남해안지방, 울릉도, 독도를 중심으로 100~600mm의 많은 양을 기록하였고, 바람도 남해안과 동해안 및 울릉도지방을 중심으로 초속 20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또 울산 350.5mm 강릉 271.0mm 동해 254.0mm 울릉도 248.0mm 부산 164.0mm 등의 많은 비가 내렸고 그중에서도 집중호우가 내린 울산 정자 622.5mm 경주 토함산 537.5mm 울진 하당 352.0mm 등의 폭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순간최대풍속의 기록은: 울릉도 27.9m/s(47.3m/s), 여수 22.8m/s(30.0m/s), 영덕 18.3m/s(32.7m/s) 강풍이 불었습니다.”
 
방송을 듣다 어느 새 열찬씨는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다 잠이 들었다. 완전히 긴장이 빠진 것이었다. 저녁에 회식까지 잘 마치고 들어와 모처럼 푹 자고 나서 텔레비전을 트니
 
“태풍 나비의 이름은 대한민국에서 나비로 제출하였으나, 일본에 입힌 막대한 피해로 인해, 일본 측에서 요구한 대로 태풍 이름 목록에서 "나비"라는 이름이 영구 제명되어, "독수리"로 교체되었습니다.”
 
참으로 묘한 내용이 보도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묘한 태풍이 지나간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