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잡초는 왜 창궐하는가?
【조송원 칼럼】 잡초는 왜 창궐하는가?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3.07.30 14:01
  • 업데이트 2023.08.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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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을 끝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반대했다. 그래서 두 달여 여론을 탐색하는 체했다. 이동관은 ‘방송 장악 기술자’이고,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 외압 행사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맛에 딱 맞는 인물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방송’은 국민들에게는 ‘세계를 보는 창’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독이다. 정체가 까발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PR 방송>(‘P’할 건 피하고, ‘R’릴 건 알리는 방송)이 필요하다. 신문은 ‘기득권 카르텔’ 덕분으로 대부분은 알아서 ‘PR’을 해 주고 있다.

그러나 방송은 좀 다르다. KBS는 일단 수신료 분리 징수로 방송재원 압박하여 길들이기 수순에 착수했다. ‘날리면’을 ‘바이든’ 식 보도를 여전히 계속하는 MBC는 어떻게 손 볼 것인가? 묘안은 김대기 비서실장의 발표문에서 읽어낼 수 있다.

“언론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 네트워킹, 리더십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분야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무릎을 탁 칠만한 탁견이다.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국정과제를 방송장악에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이동관보다 더 적합한 인사를 어이 찾을 수 있으리오.

실제 행동과 정반대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이동관은 윤석열을 빼닮았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BBC 인터내셔널, 일본 NHK 국제방송같이 국제적으로 신뢰받고 인정받는 공영방송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신뢰 받고 인정 못 받는 것은 우리 방송인의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동관 자기와 같은 ‘방송 장악 기술자’ 때문임을 기자 출신인 자신이 모르지 않을 터이다.

이동관의 뻔뻔함은 윤석열 정부에서 중책을 맡은 인사 대부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나쁜 방향 쪽으로, 윤석열은 초지일관하다. 이동관이 발탁된 또 하나 이유이기도 한, 윤석열과 윤 정부 인사들의 특징은 권력을 사적 이익추구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법적 처벌은 모면했더라도 잡음과 의혹의 생채기는 남는다. 이 생채기는 권력자(임명권자)의 무기가 된다. 충성을 강요할 무기, 반민주적·불법적·비인간적 직무수행을 강요할 무기이다. 동서고금 독재자 심성의 모든 권력자의 수첩(playbook)에 있는 내용이다. 모질고 악독한 독재자 밑에 어질고 선한 참모나 각료가 존재한 적이 있던가. 그러므로 윤석열을 보면 한동훈이나 이상민이나 이동관을 알 수 있고, 그들을 보면 윤석열의 본모습이 보인다.

각료나 참모 등 변(便) 묻은 견(犬)들은 끼리끼리 동류의식으로 뭉친다. 더구나 동료에 묻은 똥이 자신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많다고 서로를 인식하고, 거기서 서로서로 위안을 받는다. ‘국민의 눈높이 운운’은 개에게나 던져버린다. 그들은 애당초 국민을 루저로 본다. ‘국민의 눈높이’는 성공한 자에 대한 시기·질투쯤으로 치부한다. 좀 머쓱하면, ‘진영 논리’로 갈라 치고, ‘종북 세력’을 몰아치면 자연히 우군이 나서서 버티어준다.

2주 넘게 장마가 질척거렸다. 집 주변에 잡초가 무성히 자랐다. 특히 텃밭은 10년 좋이 묵혀둔 듯 하늘 찌르는 잡풀 천지다. 장마가 폭염으로 바뀐 이튿날, 해질녘에 낫을 들고 잡초 제거 작업하려다 잠시 생각해 본다. 자연에는 소유주가 없다. 잡초나 사람이나 스쳐가는 객일 뿐이다. 텃밭에서 잡초가 생명을 구가함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베어내고 잘라내도 장마 후 다시 무성해진 잡초는 ‘자연 생명력’ 혹은 ‘자연 복원력’의 상징 같아 경이로움을 갖게 한다. 잡초는 농사의 방해꾼이지만, 적은 아니다. 베어내고 농약을 뿌려도, 또 다시 솟아 무성해지는 잡초, 이런 자연 복원력이 없다면 벌써 이 땅은,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대로 변했으리라.

자연과 인공은 대비되는 말이다. 自然은 ‘스스로 그러함’ 이지만, 人工은 인위(人爲)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 인공의 결정체가 사회이다. 자연의 잡초는 선도 악도 아니다. 잡초 또한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조송원 작가

사회의 잡초는 자연의 잡초와 격을 달리한다. 애초 인공적으로 사회를 설계할 때 인간 잡초는 무조건 뽑아내어 제거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의 전성시대도 있었다.

자연의 잡초도 물기와 햇빛과 토양이란 조건이 필요하다. 사회의 잡초는 어둠과 음습함을 조건으로 한다. 그 어두운 음습함에서 공공선을 희생시키면서 사익을 추구하고, 이를 공공선이라고 강변한다. 이 강변을 고스란히 공공선의 외피를 입혀 국민에게 전달하고픈 게 바로 ‘기득권 카르텔’의 방송장악 음모이다.

자연과는 달리 사회의 잡초는 햇볕을 제대로 쪼이면 말라죽는다. 햇볕은 어둠을 몰아내고 음습함을 제거한다. 햇볕이 언론이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언론이 햇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 어둠과 음습함이 발붙일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천 년 묵은 동굴의 어둠도 촛불 하나 켜지는 순간, 일순에 사라진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촛불 하나, 햇볕 한 줄기마저 ‘기득권 카르텔’에 장악되어 꺼지는 날, 잡초는 영원히 창궐할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