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 22 - 인본 특집】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해양인문학적 성찰* - 남송우
【인본세상 22 - 인본 특집】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해양인문학적 성찰* - 남송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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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31 05:35
  • 업데이트 2023.08.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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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해양인문학적 성찰* / 남송우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들어서기

몇 년 전에 부경대학에서 수․해양 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바다·해역 관련 일반 항목 중 대표되는 것을 찾는 문항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 대표 항구는 ‘부산항’, 대표 섬은 ‘제주도’, 해수욕장은 ‘해운대’, 대표 생선은 ‘고등어’, 바다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해운대’, TV프로그램은 ‘도시어부’, 소설은 ‘노인과 바다’, 노래는 ‘여수 밤바다’, 바다를 대표하는 인물은 ‘이순신’, 음식은 ‘생선회’, 좋아하는 바다는 ‘동해’, 좋아하는 해양생물은 ‘고래’ 등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바다 이미지를 파악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바다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지만, 기후 온난화로 인해 지금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위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성

지금 현재에도 세계 곳곳은 이상기상 현상으로 피해가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기상재해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이 유례없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을 지난 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지구온난화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이상기후 현상의 발생은 지구온난화 추세처럼 일방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최근 수십 년간의 기후자료를 분석하면 그 속에 다년간에 걸친 기후변동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비교적 주기가 짧은 기후변동의 요인은 대략 화산폭발, 상층편서풍 순환의 변화, 또 엘니뇨/남방진동(ENSO) 현상 등으로 그룹 지을 수 있다. 미래의 장기적인 이상기후 발생을 예측하는데 지구 온난화 같은 장기적인 기후변화와 더불어 짧은 주기의 기후변동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온실기체에 의한 지구 온난화와 같은 비교적 긴 주기의 기후변화의 신호가 짧은 주기의 기후변동의 신호 속에 묻혀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짧은 주기의 기후변동도 미래에 예상되는 지구온난화라는 장기적인 기후변화와 수자원 부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계속되는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기후시스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1) 해수면 상승, 삼림파괴, 토양침식, 염분화, 침수, 사막화 등과 같이 장기간에 걸친 환경변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기후난민이 발생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특히 해수면 상승은 섬들을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염수의 유입으로 담수 활용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홍수로 인한 피해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 기후전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이미 우리의 과거 역사 속에서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기후 온난화가 빚은 어류(청어)의 이동은 이를 어획하기 위한 국가 간의 전쟁에 가까운 분쟁을 불러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김문기는 「온난화와 청어 : 천․해․인의 관점에서」를 통해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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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 부산해양주간 행사 때에 해양환경 콘퍼런스에서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수정 보완한 글임을 밝힌다.

1)오재호.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국에서 자연재해 발생 전망」, 『한국위기관리논집』 제3권 2집. 2007. p. 83

 

기후변동으로 인한 해양환경의 변화는 어류의 이동을 불러왔는데, 이것이 기존 어업체계에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해양환경의 변화가 역사에 끼치는 영향은 보다 종합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포괄적이라고 보았다.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이후 유성룡은 동해의 물고기들이 서해로 유입되고, 황해도의 청어가 산동의 바다로 이동했던 것을 임진왜란의 조짐으로 회고했는데, 그로부터 3백여 년이 지난 후에는 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해의 청어가 사라지고 동해의 청어가 흥하자, 김윤식은 이것을 러일전쟁의 전조로 보았다고 해석했다. 그들은 기후변동(天)과 이로 인한 해양환경의 변화(海)를 ‘전쟁’이라는 격변(人)에 연결하여 인식하고 있었다. 유성룡이 소빙기가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할 때의 경험이었다면, 김윤식은 소빙기가 종식되고 온난기가 진행되었을 때의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적인 기후변동을 인지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은 이런 변화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무언의 증언자’ 청어가 있었다고 해석한다.2) 그가 내린 다음의 결론은 기후 변화로 인한 해양환경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역사 속에 남겼는지를 새삼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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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문기. 「온난화와 청어 : 천•해•인의 관점에서」, 『역사와 경계』 90. 2014. p. 215

 

19세기 중후반부터 기후는 소빙기에서 온난기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기후변동은 해양환경에도 변화를 주었다. 청어의 이동은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청어의 이동이 동아시아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던 점이다.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후변동으로 인한 청어의 이동은 조청어업분쟁의 발단이 되었다. 1850년대를 전후하여 중국의 바다에서 청어가 사라져 갔다. 청국어선들은 청어를 쫓아 바다를 건너 조선의 바다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어를 강제로 매입했으며, 곳곳에서 약탈과 소요를 일으켰다. 청국어선의 불법 어업과 행패를 막기 위해, 조선조정은 청나라에 불법 어업을 금지하게 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국제적인 분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사실, 17세기 후반부터 청국어선의 불법 어업은 이미 심각했다. 그렇지만 1850년을 기점으로 그 성격은 전혀 달라졌다. 오로지 ‘청어’를 잡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것이다. 청어는 조청어업분쟁의 원인이었다.

둘째, 1882년 체결된 조청무역장정 제3조에 어업 규정이 포함된 것은 청어 때문이었다. 본래 조청무역장정의 안건에는 어업 규정이 없었다. 이것이 급작스럽게 제3조에 포함되었던 것은, 청국어선들의 불법 어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였다. 17세기 이후, 산동은 소빙기의 혜택으로 청어어업이 크게 발전했다. 19세기 중후반 청어가 중국 바다에서 사라져가자, 청어어업은 크게 타격을 입었다. 청어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바다로 몰려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이홍장은 조선의 바다에서 자국 어민들의 불법 어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것을 아예 조청무역장정에 집어넣어버린 것이다. 제3조의 각주에서 산동의 바다에서 조선의 바다로 옮아간 물고기는 바로 청어였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청무역장정에 어업 규정이 포함되자, 일본도 우리 바다에서의 ‘통어권(通漁權)’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 결과, 1883년 조일통상장정 제42관에 어업 규정이 들어갔다. 이로써 경기도와 충청도를 제외한 모든 해역이 중국과 일본의 어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청어는 우리 바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침탈을 촉진하는 작용을 했다.

셋째, 불행히도 1880년대에는 서해에서도 청어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청국어선들의 약탈과 소요는 더욱 격렬해졌다. 결국 그들은 청어를 대신하여 새우, 갈치 등 새로운 물고기를 어획했다. 서해에서 청어가 사라져갈 때, 남해에서도 청어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890년대에는 서해와 더불어 남해의 청어는 ‘절종’되다시피 했다. 1910년경에는 부산과 울산의 바다에서 청어가 사라지다가, 1940년경에는 동해에서도 청어가 사라져 갔다. 이런 현상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바다에서도 일어났다. 1830년경부터 줄어들었던 청어는 20세기에 들어서는 ‘옛날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물고기가 되었다. 1897년 절정에 달했던 일본의 청어어획량은 갈수록 쇠락하여 1958년경에는 홋카이도에서도 청어가 사라졌다. 거대한 지구적인 기후변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에 동아시아 3국은 모두 청어어업이 크게 발전했었다. ‘소빙기의 혜택’을 입었던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청어가 사라져가자 청어어업은 크게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적인 온난화는 소빙기가 가져온 ‘청어의 풍요로움’을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동아시아 청어의 역사는 기후변동(天)이 해양환경(海)에 변화를 주고, 그것이 역시 인간의 역사(人)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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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문기. 위의 논문. pp. 216-218

 

이러한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에는 기후 위기로 인해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이 잠기기 시작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임박한 생존의 문제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서남아의 가난한 국가들에게 ESG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선 하루하루 살기 위한 몸부림이 먼저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로 인구 28만 명에 불과한 바누아투는 해수면 상승과 잦은 태풍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협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었다. 다른 남태평양 섬 국가인 투발루는 낮은 지형 때문에 허리케인을 비롯한 돌풍이 불어올 때마다 바닷모래가 도심 쪽으로 불어오면서 해변가에 있는 나무들이 쓰러지는 등 각종 피해가 있어왔다. 하지만, 투발루를 더 가라앉게 하는 요인은 선진국의 탄소 배출로 인한 해수면 상승 때문이다. 1961년 이후 해마다 약 1.8mm씩 상승했는데 1991년 이후에는 해마다 약 3.1mm씩 상승했다. 현재는 매년 5mm 이상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어 전 세계 평균보다도 월등히 빠른 속도로 투발루는 가라앉고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2020년 발표에 의하면 “21세기가 지나기 전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남태평양의 섬나라, 인도네시아, 베네치아 같은 연안 지역들은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위협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우리의 인천국제공항도 멀지 않은 미래에 해수면 상승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아프리카, 서남아 국가 그리고 중남미 국가에서는 ESG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다. 아직 그 나라들은 지구 환경 변화로 목전의 위험을 실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지구촌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후위기 상황을 초극하기 위해 기후위기의 큰 매개로 작동하고 있는 바다에 대한 역할을 새로운 관점에서 제대로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다.

 

세계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1) 육지 중심의 사유에서 바다 중심의 사유로

지금까지 인류는 육지를 중심으로 인류 문화사를 창조해왔다. 인간 문화사나 정신사가 대체로 육지 중심적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도 육지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삶에 주로 관심해왔다. 그 결과로 인간이 창조한 대부분의 문화적 결실은 거의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땅 위에 기초해 있었다. 인류의 삶이 육지 중심으로 펼쳐져온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제 육지의 자원은 갈수록 고갈되어가고 있고, 생태계 파괴로 인한 인류의 삶의 공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맞은 육지 중심의 삶에 대한 비극적 전망이 예견되기도 한다.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나는 긴 항해를 이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길고 긴 항해의 도정은 어디인가?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인류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갈수록 해양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4)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하면서 한순간도 해양을 벗어나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해양에 대한 인식은 무시되거나 경시되었다.

더욱이 비교적 일찍 공업화 사회에 진입한 일부 국가에서는 육상 자원을 이용하고 개발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였기 때문에 왕왕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기대지 않으면 안 될 자연자원과 환경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들은 선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해서 약탈적 개발을 또다시 전개했다. 이러한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지구촌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 표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직은 개발 여지를 많이 남겨둔 마지막 영토인 해양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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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곡금량 저. 김태만, 안승용, 최낙민 역. 『바다가 어떻게 문화가 되는가』. 산지니, 2008. p. 90.

5)위의 책. p. 91.

 

그러나 막연하게 바다로 눈을 돌린다고 현재 지구촌이 당면한 현안을 당장 풀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육지로부터 비롯된 오염은 바다도 오염시켜 사해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자국 중심의 팽창 논리는 이제 육지에서 바다로 향해 영해와 도서 분쟁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로 눈을 돌리되, 육지에서 이루어진 그동안의 사유로 바다에 눈을 돌린다면, 인류의 미래는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육지에서 이루어졌던 전쟁과 갈등의 인류 문명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육지와는 다른 바다가 지닌 특성에서 연원하는 사유를 통해 육지에서 이루어졌던 오류를 넘어설 수 있는 사유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육지 중심의 사유에서 바다 중심의 사유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천지인(天地人)의 사유체계 속에 갇혀 있었다면 이제는 천지해인(天地海人)의 사유체계로 인식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2)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평화공존을 위한 인문적 사유

인간은 이제 하늘과 땅과의 관계론적 존재론을 모색할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과 바다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땅이 지닌 경계와 분열과 전쟁의 역사를 전환시킬 사유의 틀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야 한다. 바다의 원형적 이미지에서 우리는 생명과 평화, 공존과 열림, 순환과 교류, 그리고 평등의 토대를 모색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통해 생명, 평화, 공존, 열림, 순환, 교류, 평등 등을 모색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인류의 문화가 부산물로 남겨놓은 경쟁과 갈등과 전쟁, 경계와 불통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해양 문화의 가치를 상정(想定)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지를 중심으로 계속되어 온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삶에 공헌한 바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해 있는 갈등구조를 초극하지 않으면, 미래를 온전히 전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는 근원적인 인식사유의 전복이 필요하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지녔던 하늘·땅·사람 중심의 세계 인식 틀을 하늘·땅·바다·사람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바다를 새롭게 인간과의 사이에 중요한 관계론적 존재론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때 바다는 새롭게 육지의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면 육지 중심으로 살아오면서 인류가 과제로 남겨놓은 현안을 초극할 수 있는 바다의 원형적 이미지는 무엇인가? 이는 달리 말하면 육지와는 다른 바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해양문화의 특성을 통해 그 방향성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해양문화의 특성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볼 수도 있지만6), 첫째는 생명의 본연성과 아름다움, 둘째는 공존성, 셋째는 교류성, 넷째는 개방성을 우선 들 수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우선 바다가 지닌 이 원형적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해양문화가 지닌 가치를 모색해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의 담론을 형성해 보고자 한다.

 

㉮ 생명의 시원과 생명재생의 공간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결론은 생명의 시원이 바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인류의 생명은 해양에서 오고, 해양이라는 자연천성의 광대한 장관, 변화무쌍함, 거대한 에너지, 자유분방함, 무궁한 신비감 등이 인류로 하여금 이 해양을 생명본능의 대상물이자 힘과 지혜의 상징이자 담지자로 여기게끔 만들었다.7) 그런데 산업화, 도시화된 현대문명은 자신들의 배설물을 쏟아내며 생명의 근원이었던 바다를 재생 불가능한 바다로 만들고 있다. 아직 심해까지는 미치지 않았지만, 연안의 바다는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다가 육지에서 배출하는 다양한 오염물질들을 정화시키고 있지만, 바다가 지닌 재생력을 넘어서 있기에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바다가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육지 중심의 사유로 인해 빚어진 생명파괴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사유가 가능하다. 즉 바다는 육지에서 삶을 주체하고 있는 인간의 아픔과 슬픔, 절망을 치유하는 생명재생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다와 육지를 두고 본다면, 바다는 육지보다 더욱 큰 인류생명의 본연성과 장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바다가 지닌 원형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들은 육지 중심의 사유가 파생한 비생명적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한다. 이 대안을 구체적인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생성해 나간다면, 해양문화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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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해양문화의 특성을 여러 논자들이 몇 가지의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방성, 외향성, 모험성, 숭상성(崇尙性), 다원성, 개척성, 원창성(原創性), 진취성, 표류성, 섭해성(涉海性), 생명의 본연성과 아름다움 등이다. 곡금량 저. 김태만, 안승용, 최낙민 역. 앞의 책. pp. 51~60 참조.

7)위의 책. p. 58.

 

㉯ 월경하는 공존공영의 공간

바다를 통한 인류와 물자 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월경성(越境性)이다. 바다는 원래 경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육지의 땅에 국경을 정하듯이 바다에도 인위적으로 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에 선을 그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의 설정 범위와 방법 그리고 논리가 문제시되었다. 이러한 바다의 경계론에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된 사상이 관여하고 있다. 하나는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다는 우리의 것이라는 사상이다. 전자는 바다는 광대하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공유론을 의미하며, 후자는 소유권, 이용권, 점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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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모토 케이이치 외 저. 김정환 역. 『바다의 아시아』1. 다리미디어. 2003. p. 52.

 

땅은 개인 혹은 국가 단위의 소유 대상으로 인식하였고, 바다는 이런 소유 개념이 땅에 비해 현저히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바다에 대한 소유와 분할에 대한 논쟁은 상당해졌다. 중세 이전까지 해양은 모두에게 개방된 자유영역이었으나, 16, 17세기에 걸쳐서 포르투갈은 인도양에, 스페인은 태평양에 대하여 주권을 행사하여 외국선박의 항해를 제한하려고 하였다. 1609년 네덜란드의 후고 그로티우스(Grotius, H.)는 해양자유론(Mareliberum)을 발표하여, 해양은 광대하여 점유의 대상이 되지 않을뿐더러 해양의 자원은 무궁무진하므로 소유권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 사용이 자유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많은 반대에 부닥쳤다. 1618년 영국의 존 셀든(Selden, J.)은 해양폐쇄론(Mare clausum)을 발표하여 영국의 해양주권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몇몇 국가에 의하여 행하여지고 있던 광대한 바다에 대한 주권의 주장이나 영국의 바다에 대한 요구도 그 뒤 점차 미약해지고, 바다는 연안에 인접한 영해와 자유로운 공해로 구분되었다. 1958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1차 국제연합해양법회의에서 종래 관습법의 형태로 형성, 규제되어 온 공해에 대한 일반적인 법과 각종 조약을 제정하여 ‘공해에 관한 협약’을 채택한 것이 최초의 성문화된 공해조약이다. 그 뒤 1982년 <해양법> 전반에 걸친 재검토를 위한 제3차 해양법회의에서 ‘해양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었는데, 제86∼115조에 걸쳐 공해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국제수역 공해 조약’이 20년 만에 200개 유엔 회원국들의 합의 찬성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바다가 각국의 위치에 따라 해면의 소유나 영유를 하고 있기는 하나 육지와 비교하면 바다는 많은 공간을 공유의 영역인 공해로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육지와는 다르게 지구촌 전체가 공용할 수 있는 공해가 있다는 것은 바다가 지닌 육지와는 다른 태생적 조건이며, 중요한 해양문화의 가치를 생성해 나갈 수 있는 원형적 이미지이다. 바다가 지닌 이 공해의 원형적 이미지를 육지를 중심으로 살면서 상실한 공존성을 회복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로 확산시켜 나간다면, 해양문화의 정체성을 평화공존의 토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해수의 순환과 교류의 공간

지구에는 대기의 순환이 있고, 바다에는 해수의 순환이 있다. 세계 각지의 기후는 이 두 가지 순환계의 상호작용에 지배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기의 순환은 태양 복사 에너지의 편재(偏在)로 인해 발생한다. 적도 부근에서 뜨거워진 대기는 상승하고, 극 부분에서 차가워진 대기는 하강하여 양 지역 사이에 대기의 대순환이 일어난다. 대기 순환은 태양 복사열의 지역차로 인해 일어나지만, 해류는 바람에 의해 발생한다. 저위도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과 중위도에서 동쪽으로 부는 편서풍으로 인해, 북반구에서는 시계방향, 남반구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류의 큰 흐름이 생긴다. 해류는 대기의 순환 시스템과 연동할 뿐만 아니라 각지의 해양환경도 결정짓는다. 이 바다의 순환 시스템이 각지의 해양환경을 지배하고 있는데, 태평양으로 보면, 아시아 최대의 해류는 태평양 서안으로 북상하는 쿠로시오 해류이다.

오대양에서 생성되어 흐르고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해류의 흐름은 해안의 생태계를 다양하게 형성할 뿐만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순환하는 특징을 가진다. 바다의 해류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교류하면서 바다의 다양한 생물들을 살아가게 하는 환경과 조건을 형성해준다. 이러한 바다 해류가 지닌 순환과 교류의 특성은 땅을 경계 지어 국경을 만들고 갈등해 온 인류의 갈등을 소통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유의 터를 마련해 준다. 바다가 지닌 교류의 원형적 이미지는 땅 중심의 사유가 지닌 불통의 이미지를 초극할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바다의 원형적 이미지를 해양문화의 가치로 현실화할 수 있다면, 새롭게 인류평화의 진전을 위한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열림을 통한 개방성과 다양성

바다는 6대 주의 육지와 크고 작은 섬들과 연결되어 있고, 인류가 사는 대다수 민족, 국가, 지역은 바다에 면해 있다. 바다는 인류를 향해 남김없이 개방되어 있다. 육지의 도로나 철로는 인공으로 부설되었지만, 바다의 길은 자연이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천연적 개방성이야말로 그 누구도 가로막거나 끊어 없애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인류는 이러한 바다의 개방성을 이용해 인류문화를 전개해 왔다.9)

바다라는 공간은 광역 지역을 구성하는 다문화, 다민족, 다권력의 상호관계를 형성시켰으며, 대량의 물자나 인원 수송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해양자원은 배후지나 내륙과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연안에 인구가 집중되고 도시가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10) 이러한 도시를 가능하게 한 것이 해역이다. 해역 세계는 연해(沿海), 환해(環海), 연해(連海)의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연해(沿海), 환해(環海), 연해(連海)에 의해 성립된 해역 세계는 육지와는 달리 다원성, 다양성, 포괄성을 지닌 개방적이고 다문화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하고 개방적인 항구도시를 가능하게 한 근원적 토대는 바다가 지닌 열린 공간에서 비롯된다. 바다가 지닌 이런 열림이란 원형적 이미지는 끊임없이 세계를 열어 교류를 통한 평화를 현실화하는 문화가치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양 문화가 지닌 인류 평화를 위한 해양 인문학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의를 심화 확대시킴으로써 지속 가능한 지구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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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곡금량 저. 김태만, 안승용, 최낙민 역. 앞의 책. p. 57.

10)오모토 케이이치 외 저. 김정환 역. 앞의 책. p. 136

 

맺으면서

지금 바다는 또 다른 위기 앞에 놓여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의 방류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육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오염수로 인해 연해는 죽음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다. 여기에다 핵 오염수가 방류된다고 하면, 생명의 바다는 죽음의 바다로 변할 수밖에 없다. 바다가 오염수로 죽으면 인류도 함께 종말을 맞게 된다. 생명의 바다를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계산을 넘어서야 한다. 경제성 때문에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서는 안 된다. 인류 미래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경제성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시퍼런 바다가 다시 눈을 부릅뜨고 응전을 채비하고 있다는 살아있는 시인들의 예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필자는 올 5월에 이렇게 매주 비가 내리는 날을 평생 처음 경험했다. 올여름에는 우리가 또 어떤 기후재앙을 만나게 될지 두려울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다를 다시금 새롭게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이다.

 

남송우 교수
남송우 교수

◇ 남송우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부경대 명예교수
(사)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문학평론가
전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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