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송사宋史』/「유일지전劉一止傳」-
#1. “정말 정부를 담당해 보니까, 우리가 지난 대선 때 힘을 합쳐서 그야말로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느냐 하는 정말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든다.”
“(문재인 정부는) 그야말로 나라가 거덜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자신감으로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윤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정말 나라를 거덜 내고 있는 장본인의 적반하장을 듣노라니, 아찔하다.
#2. “먹구름 위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먹구름을 걷어내고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신 구국의 지도자, 우리 민주평통 의장이신 바로 윤석열 대통령”
“오직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와 연대의 기치 아래 숨 가쁜 정상외교를 전개하고, (…) 포성 울리는 우크라이나 현장에 위험을 무릅쓰며 국익에 도움 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경제와 안보, 안보와 경제, 지금까지 이런 지도자를 만난 적 있느냐?”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민주평통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에서 윤 대통령의 격려발언을 이어받은 답사에서 한 발언이다.
민주평통은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이 수석부의장이 실질적인 조직의 수장 역할을 한다.
#3.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9월 1일 18 : 00)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있다(다행히 20시에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속보를 확인함). “채수근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과 다짐”으로 수사를 시작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사에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혐의는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이다.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이 사단장 등 지휘부에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넘기려 하자, 상부의 압력이 들어왔다. 끝내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수사단장에게 항명죄를 뒤집어 씌웠다. 상부 압력의 정점이 윤 대통령이란 의혹이 짙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윤 대통령은 분개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이런 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채 상병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인 7월 18일 유속이 얼마나 빨랐냐면 장갑차가 들어갔다 5분 만에 나왔다. 사단장이 직접 가서 이거 봤다. 그리고 물이 너무 탁해 아스팔트 덩어리가 내려오는지, 파이프가 내려오는지, 칼이 내려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위험했으면 7월 19일 같은 날 최고의 구조전문직이라고 하는 119대원들도 로프에 구명조끼, 안전장구 다 하고 무릎 높이 물까지만 들어갔다.
그런데 구명조끼, 안전장구는커녕 로프도 없고 빨간색 반팔티만 입고 허리 깊이까지 들어가서 수색하게 만든 게 사단장이다. 사진을 보고도 위험하다고 얘기하기는커녕, 내가 말한 대로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적색 티 입고 작업 잘했구나, 이랬던 게 사단장이다. 이게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고 뭔가.”(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런 일’이면 사단장을 열 번이라도 처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해병대 수사단의 판단도 그랬으므로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무슨 잘못이 있는가.
#4. 간신의 최대 적은 충신이다. 친일 매국노의 최대 적은 독립운동가이다. 항일무장 독립투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폄훼는 ‘역사 쿠데타’일 뿐이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업보를 해방이 되고 반세기가 훌쩍 지난 이 시점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역시 종기는 아무리 덮고 덮어두어도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세상사 만사, 정말이지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최영미/선운사에서)이다. 나라를 망치게 하는 데는 소인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소인은 결코 외롭지 않다. 친일과 매판자본으로 부와 명성을 일군 ‘이권 카르텔’에게는, 역사 쿠데타로 과거를 세탁해 주니 그 소인이 얼마나 고맙겠는가. 또 나라야 망하든 말든, 옳음과 진실에는 눈 감고 ‘윤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인사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다준다. 그들은 그 소인을 얼마나 은혜롭게 생각하겠는가.
‘비정상’이 정상으로 행세하고, ‘불의’가 정의로 둔갑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현실화할지도 모른다. 그 시대에서는 대의(大義)나 정의(正義)나 공공선 같은 단어는 폐어가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적 동물만이 적자(適者), 곧 ‘살아남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세상에서는 상위 10%에게는 천국일 것이나, 상위 11%~49%에게는 연옥에 불과하고, 하위 50%에게는 지옥이라는 사실이다. 이뿐 아니라 이 하위 50%가 계급 상승할 사다리는 전혀 없다. 한데도 이 하위 50% 대부분이 자신들의 삶을 망치는 그 ‘소인’을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지금, 그들은 자기 발등을 찍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까? 죽어 봐도 저승을 모르면, 결과는 ‘뉴 노멀 시대’로 직행할 뿐이다.

다행히 역동적이고 불의에 항거하는 우리의 민중성을 고려하면, 그 뉴 노멀 시대 도래 이전에 비록 많이 망가졌지만, 뒤늦은 깨달음으로 그 소인을 타파할 것으로 예견한다. 이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그 소인의 타파에 그칠 게 아니라, 그 부역자들 또한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기를 베어냄만으로는 부족하다. 뿌리를 그대로 두면, 언제가 몇 개의 줄기를 또 세워 올린다.
뿌리 없이 줄기 없다. 줄기를 없애려면 뿌리마저 뽑아내야 한다. 지금까지 줄기 베어내기에만 그쳤기에, 역사가 한 두 발 전진하면, 또 한 발 퇴보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줄기가 제거되어도 뿌리는 온전했고, 그 뿌리들은 부귀영화를 대물림해왔다. 그러므로 ‘불가역적, 최종적’ 역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뿌리 제거 작업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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