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②
잔인한 봄
어제
한 농부가 천식으로 죽더니
오늘
한 시인이 간암으로 떠났다
농부는
묵정밭과 농협 빚을 남기고
시인은
끝끝내 완성 못한 詩句 몇 개 남기고
...남겨진다는 건 또 다른 슬픔의 실마리
닳아가는 살점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의
버려진 엄나무와 트랙터가 안타까워
주인 없는 서재의 古書냄새가 아쉬워
어둑한 방파제 술 취해 비틀대는
내겐 유독 올해 봄이 잔인하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출근하자말자 서규수 부구청장이 구청장실로 토끼 띠 네 사람을 모이게 하고 작금의 위기를 넘어갈 비책이라며 탈출전략을 브리핑했는데 참으로 기묘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서구의 행정서기관은 시청 출신의 최용걸 총무국장과 서구 출신의 신해기 주민복지국장과 이병인 의회사무국장이 있었는데 주민복지국장은 김모구청장이 물러가면서 승진을 시킨 경우였고 의회사무국장은 불과 몇 달 전 열찬씨와 승진경합을 벌인 사람이었다.
서구청이 정부의 지침을 곧이곧대로 따를 경우 그해 연말이면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신해기 주민복지국장의 자리에 이병인 의회사무국장이 옮겨 앉고 직제가 없어지는 의회사무국장자리에는 아무 사무관이나 과장을 앉히면 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열찬씨가 승진할 자리만 없어지는 것이었다.
만약 열찬씨가 서기관승진의 맛을 보려면 시청에서 승진한 최용걸 국장을 뺀 신해기, 이병인 국장 두 사람 중 누구 하나가 의회사무국의 직제가 확정되기 전에 정년퇴임이 아닌 명예퇴임으로 자리를 비워주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쉽지 않은 일을 만들어보는 것이 바로 그의 대책이었는데 그 대상은 바로 신해기주민복지국장의 명예퇴직이었다. 같은 서구전입동기로서 동병상련의 정으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앞서거니 뒤서기니 지내온 정을 보아 아직 1년 이상 남은 만 59세 공로연수를 앞당겨 아직 만 58세인 지금 바로 공직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부단체장의 회의를 이틀 앞둔 날 서규수 부구청장은 신해기 주민복지국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회의 중인 현장에서 갑자기 지자체의 4급 승진을 동결하기라도 한다면 이제 전입동기 가열찬 과장의 승진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마니 그간의 미운 정 고운 정을 생각해 어떻게 생각을 좀 해달라고.
사람이 갑자기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심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인 줄 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전입동기에 평생동지인 가열찬총무국장의 서기관승진의 길이 영영 막혀버리고 만다, 하니 좀 황당하기는 하지만 이제 한 1년 쯤 남은 정년을 친구를 위해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달라, 이 경우에도 다행히 급여는 명예퇴직수당으로 그 1/2을 줄 뿐더러 공무원연금이 나오니 금전적인 손실은 없는 것이 아닌가, 또 지금껏 서구청에서는 직전의 김홍보, 이승암서기관이 각각 후진을 위해 한두 해를 남기고 서슴없이 용퇴한 관례가 있으니 이 미풍을 이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었다.
순간 신모국장의 얼굴이 한 순간 하얗게 질리더니 이내 평정심을 찾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전화가 왔다. 고생했다고 만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는 말에 오늘은 자신의 약속이 있다고 신국장이 개인적인 인연이나 친분을 떠나서라도 상당기간 총무과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런 인사상의 애로나 묘미, 특히 조직의 원리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 아마 잘 풀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날 밤 조마조마 애를 태우는 열찬씨에게 밤 열 시가 지나 신해기 국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는 대뜸
“친구 잠이 잘 안 오제? 니가 밤새 못 잘까 싶어 내가 전화했다.”
“미, 미안해.”
“미안하기는. 우리가 그런 조직의 원리, 아니 조폭들이 말하는 그 조직의 무서움보다 더 무서운 원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대체 누가 그런 묘한 아이디어를 내었나? 보나마나 서규수부구청장이제?”
하고 껄껄 웃는 것이었다.
“아니야. 모두 이 못난 친구 때문이야. 38년간이나 서기관이라는 골대를 향해 대시하다 이제 골키퍼도 없는 문전에 쇄도해 바로 슈팅을 하려는 순간 문득 골대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잖아? 하도 급해서 이 못난 친구가 저지른 일이네.”
“뭐 내가 그것 모르고 그것 모를 나이가? 아무튼 잘 생각했다. 덕분에 나도 좀 일찍 쉬어보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 퇴임식이라든지 여러 가지 절차도 남았고 무엇보다 아직 가장의 퇴직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족들의 쇼크도 있을 것 같아 오늘 저녁 하루만 기다려주면 가부간 결정을 내겠다고 했다.
그 숨 막히는 하룻밤이 지나고 이튿날 출근을 하자 그는 그야말로 절에 간 색시처럼 고분고분 사직서를 내어주었다.
홀아비사정은 과부가 알아준다고 왜 가열찬과장의 치지를 모르겠냐며 일단 물러날 것은 결심했지만 아내의 반발이 있을 것 같아 밤새도록 설득하여 ‘그럼, 당신 알아서 하시요.’의 반승낙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구청장을 모시고 실국장과 총무과장이 참석하는 오찬, 쉽게 말해 점심식사를 하고 인사명령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 듯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과히 제갈공명이라 할 서규수부구청장의 각본에 따라 오전에 서류를 준비하여 오후 두시에 인사위원회를 열고 오후 세시에 바로 승진발표 방송을 한 것이었다.
이병인 의회사무국장은 아직 발령받은 지 며칠 되지 않고 또 의회의 동의를 얻는 절차도 번거로워 그대로 두고 후임 열찬씨가 바로 선임자리인 주민복지국장으로 앉게 되었다. 의회사무국장 직제가 없어져도 이미 서기관으로 승진된 현직국장은 정년퇴임시까지 한시적으로 그 직을 유지한다는 예외조항이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비로소 서규수부구청장은 여유 있게 휘파람을 불며 KTX 밤차로 행정안전부의 회의를 떠났다.
승진인사방송을 듣고 온 청 내가 수런거리는 것은 물론 구청과 동사무소, 심지어 시청과 다른 구청에서도 많은 축하전화가 쇄도했다.
후배들은 주로 축하한다는 말,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였지만 특히 시청이나 사업소, 타구청의 옛 동료나 동년배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래 기어이 하기는 하는 구나, 정기인사 때마다 승진은커녕 매번 이름조차 낯선 신설부서로 전전하던 당신이 또 이렇게 벼락같은 승진을 하는 것을 보면 과연 참 홍길동 같은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또 김정효 전 총괄감사계장은 두 번째 시집 <꿈꾸는 율도국>을 들먹이며 늘 변화와 혁신을 꿈꾸던 젊은 사무관이었지만 마치 서자인 홍길동의 태생적 한계처럼 거칠고 무딘데다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고립무원의 촌놈으로 남부민1동장을 지내면서 기껏 천마산에 꽃을 심고 산토끼를 풀고 달동네 노파들에게 과일과 제수용 생선을 나눠주는 골목대장, 그 마저 어느 무뢰배에게 산토끼를 몽땅 도둑맞아 좌절당한 그 알량한 사무관자리가 한계였는데 이제 서기관이 되었으니 한층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율도국이 펼쳐지겠다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러면서 지난 번 정기감사 때 김모구청장의 일방적인 매도(罵倒)를 보고 덜컹 내려앉았던 가슴이 이제야 좀 진정이 된다고도 했다.
서기관, 서기관! 아아 서기관...
무려 14년이나 걸린 가시밭길 역정, 누구보다도 고달프고 험한 그 길을 내가 마침내 돌파했다는 것인가? 열찬씨의 눈앞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연산동 동서기를 6급 사무장이 되도록 도와준 동년배 김태현 사무장과 많은 사람들, 서구상징물의 홍보개선안의 아이디어와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보고 요직에 발탁해준 안동 출신의 깨끗한 선비 김만연 구청장과 몇 년 뒤에 만난 유생 같은 최원호 부구청장, 기획실무를 다듬어준 이장희 실장, 윤영수 실장, 그리고 친형님 같던 손재식 국장, 또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합하던 동료, 양보해준 친구 신해기 국장, 공무중의 교통사고와 재활과정을 함께하며 같은 환자처지에도 밥을 타오고 약을 데워주던 그 착한 아우 김남규 총무계장, 서울의 법학원과 고시원의 좁은 방과 매일 먹던 오징어덮밥과 날마다 날 견제하며 등 뒤에서 저들끼리 웃던 가깝고도 먼 숙명의 동료이자 적수들과 큰오빠 같다면서 걱정해주던 전라도 출신의 술집아가씨와...
그리고 그 모진 인연의 김모구청장, 그 싸늘한 눈길과 안경과 힐책과 붉은 볼펜으로 긁어버린 결재서류와...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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