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94)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4장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④
대하소설 「신불산」(594)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4장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9.25 07:05
  • 업데이트 2023.09.24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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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④
영순씨가 민망하게 생각해도
 
“경찰서장이 되어도 급수는 서기관보다 낫단다. 그리고 경찰이든 교사든 법원이든 관세청이든 모두 옛날로 치면 기술직에 속하는 잡직으로 정식 관리가 아니라고 하더구먼. 오로지 정석이아빠같은 행정공무원이 정 4품인가 뭐가가 되고 경찰이나 다른 직종은 아마 종 7품이나 뭐 그 품계가 형편없단다. 그래서 옛날부터 정석이 아빠처럼 사무관시험에 걸리고 지방의 수령방백을 지낸 사람을 목민관, 양떼처럼 순한 백성을 먹여 살리는 목민관이라 안 하나?”
“아이고, 형님은 우째 그래 박식합니까? 혹시 군수나 도지사집 딸입니까?”
“우째 알았지?”
 
이렇게 점심시간 내내 화두가 되고 영순씨가 단연 주인공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 모처럼 기분이 좋은 하룬데 기왕이면 저녁도 좋은 데 가서 먹지. 당신 뭐 먹고 싶은지 이야기나 해 봐.”
“점심을 하도 잘 먹어서. 회도 그렇고 소고기도 그렇고 옳지 당신 좋아하는 복국이나 먹으러 갑시다.”
“너무 싼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도 아니니 더 비싼 걸로 하지. 톱질을 한번 하든지.”
“마 됐심더. 묵는데 애끼 쓰고 복지 포인트로 당신 가을에 입을 티나 한 벌 싸든지.”
“그럼. 그라든지. 당신 등산복도 하나 화사한 걸로 사고.”
“그라든지.”
 
외식과 쇼핑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서
 
“당신 고맙소. 진짜 우리가 이래 포시럽게 살아도 되는 건지.”
 
영순씨의 하루가 정말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어느 토요일 오후 혼자 배낭을 메고 황령산에 올라 정상부근 황령산봉수대를 거쳐 마하사방향으로 하산하는데

“아이고, 이기 누고? 이 동장님 아니요?”
 
얼굴이 넙적한 중년사내 하나가 인사를 하는지라
 
“누구시더라? 아아, 김청길씨, 청길이형님!”
 
열찬씨가 한참이나 기억을 더듬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래 맞소. 김청길씨 하고 문현동에 집짓던 이수철이 아입니까? 그래 동장님은 잘 계셨소?”
 
하더니
 
“어디서 서기관이 되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축하합니다. 돌아가신 김사장이 만날 우리 이동장, 이동장 하시더니 김사장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하고 가뜩이나 마음이 가라앉은 열찬씨에게
“내가 공무원생활 그만 두고 건축업에 뛰어들면서 그 중 믿을 만하고 주고받고 틀림이 없는 사람이 김청길사장이었는데 그렇게 쉽게 돌아가서 참 아쉽습니다. 그라고 김사장님 따라 이형의 누님 집 되는 명촌의 칼치못에서 그물로 가물치랑 잉어를 잡고 논고동무침을 먹던 날이 한 시절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아무튼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이형을 이래 만나니 새삼 옛날 생각이 간절합니다.”
 
제 할 말을 다 하고는 가버렸다. 열찬씨보다 너덧 살 위로 고위직에 있는 집안사람의 힘으로 시청의 조무직으로 들어가 이재(理財)과에 있으면서 국공유지불하를 받으면 돈이 되는 걸 보고 단번에 사표를 내고 부동산에 뛰어들어 이미 상당한 재산을 축척하고 주유소도 하나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청길씨와 같이 두어 번 술자리를 했는데
 
“사나이 한 평생 뭐 별거 있습니까? 그저 돈이 최고지요. 돈만 있으면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예쁜 여자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죽을 사람 목숨도 건지고 뭐 안 되는 것이 없지요.”
 
하며 늘 푼수 없이 한우물만 파는 열찬씨를 놀리는 듯 했는데 헤어지고 나서 김청길씨가
 
“이 동장, 신경 쓰지 마라. 저 사람이 만날 남의 심부름이나 하는 기능직으로 있다가 나와 돈을 좀 만지나 공직사회에서 큰소리 한 번 못 쳐보고 나온 자신이 억울해서 괜히 가동장 보고 그래 쌓는다 아이가? 그 기 동생 니가 부럽단 말이다.”
 
한 적도 있었다. 언제나처럼 일방적으로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져버리는 사내의 등 뒤를 바라보다 문득
 
“아아, 형님! 청길이형님!”
 
탄식과 함께 열찬씨의 가슴이 울컥하며 눈앞이 흐릿해졌다.
(세상에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어둡고 깜깜한 나라에 가셨는데 나는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술을 먹고 히히덕거리고 승진을 했다고 기고만장을 하고...)
 
함께 해온 일들이 하나하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대부분이 어리고 철없는 열찬씨, 아직 가난해 집도 없이 떠돌던 열찬씨를 도와주던 일들, 슬비와 정석이를 안아주고 영순씨에게 밥을 사주는 일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던 기억이었다. 또 금정산4망루에서 동문까지 산악구보를 하던 일, 밤새 고스톱을 치며 술을 마시던 일, 열찬씨가 승진을 하고 시집을 낼 때마다 기뻐하던 일이며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을 사고 날라주며 찬장과 거울을 달 못을 쳐주고 형광등을 달아주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이고, 형님!”
 
길가에 웅크린 키 작은 소나무에도 굴밤나무에도 우두커니 웅크린 작은 바위와 잔디밭과 산 그림자와 비석도 없는 무덤과 썩어가는 소나무그루터기에도 청길씨의 눈빛이 어려 있고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형님! 저승에서 키가 조그맣던 할머니는 만나 모자의 정을 나누는지, 아니면 저승에서는 집안도 너르고 형제도 많은 부잣집의 장남이 되어 외고 펴고 사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외롭고 허전한 나날을 보내는지.)
 
입속에 뱅뱅 도는 말을 삼키며 팽 코를 풀다 눈가를 타고 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어느 무덤가에 주저앉아 배낭 속을 뒤져 야구장에서나 먹는 플라스틱 소주병 하나를 찾아 병째로 꿀꺽 삼키며 솔잎을 한 줌 따 씹는데
 
“아아, 손재식 국장님, 국장님!”
 
이번에는 파리한 얼굴의 손재식 국장의 얼굴이, 너무 살이 없어 간당간당 방금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걸어가던 모습, 지지난 해 문득 사무실로 찾아와 뜬금없이 시의원이나 출마해보겠다며 의미심장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그 분도 돌아가셨지. 날 언제나 좋아하고 도와주려고 하던 사람, 형제는 아니지만 형제보다 더 한 사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아무 거리낌 없이 기댈 수 있는 사람, 나를 믿어주고 내가 믿던 사람들이 둘이나 떠나갔구나!)
 
눈물이 핑 돌며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렇게 좋은 사람을 보내고도 금방 잊어버리고 그깟 서기관이 되었다고 온 세상이 제 것인 것처럼 희희낙락하는 나는 또 무엇일까, 그런 나도 죽고 말 것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아아, 누님! 신평 큰누님!”
 
또 한숨이 푹 나왔다. 이어
 
“또 있네. 종찬이형님!”
(그렇구나.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구나. 살기 바쁜 나는 한 번도 그들을 생각하지 못 했구나...)
 
 
그새 김윤상 생활지원계장은 사무관승진 대상으로 발탁되어 수원의 공무원연수원에 입교하여 승진과정교육을 이수하고 있었다. 담당자 김종오씨는 여전히 <사랑의 띠잇기운동>의 후원자를 모집하느라 바빴지만 이젠 롯데의 이대호선수처럼 자신이 서구청의 간판공무원으로 내외에 부상하고 있었다. 자주 구청장을 수행하고 부구청장등 간부공무원에게 불려가 사업의 진척을 보고하고 나오면서 각별한 관심과 격려를 받기도 해 직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고 했다.
 
이사회를 소집하고 매월 정기입금되는 후원금을 소년가장등 수혜자들에게 연결하고 전화로 참여를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로 부터 교복, 안경, 난방유, 연탄가스배출기등 수혜대상자들에게 필요한 맞춤형의 기증품을 받아내고 그들을 정기후원자로 가입시키는데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원래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대외접촉이 많고 남의 눈에 띄는 업무를 맡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차츰 숙달되면서 환골탈태(換骨脫胎)라도 한 것 같았다.
 
또 라이온스클럽, 로타리클럽, 팔각회, 청년회의소 등 재력이 바탕이 되는 상류층의 봉사단체로 부터 정부미를 비롯한 각종 기증품을 구청사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기념촬영을 하거나 구청장실로 모셔가 다과를 대접하며 반듯한 이목구비와 지성미가 넘치는 안경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현빈이란 탤런트의 까칠한 도시남자 <까도남>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 라이오네스라로 부르는 라이온스여성회원들로 부터 인기도 많았다. 심지어 정기후원회원으로 가입하거나 금품을 기증하려고 전화를 하면서 바로 김종오씨를 찾는 사람도 생기기도 했다.
 
또 김윤상 계장이 승진서열을 몇 번이나 앞질러 승진대상으로 확정되었듯 김종오씨도 5년에 한번이나 생길 사회복지 6급을 네 명의 선배와 여섯 명의 동기를 제치고 특별 승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복지사들로 부터 엄청난 시샘을 받고 있었다.
 
비단 사회복지직이 아니더라도 서구청에는 박극제 구청장의 재임기간에는 <사랑의 띠잇기운동>에 관계된 공무원이라야 승진과 영전이 보장된다며 열찬씨와 김윤상 계장, 김종오씨를 들먹거리기가 예사였다. 소외계층과 독지가를 잇는 사랑의 띠가 직원과 구청장을 직통으로 잇는 띠가 되어 승진을 좌우하니 누구라도 사랑의 띠를 잡아야한다는 말이 나오더니 마침내 사랑의 띠가 사랑의 끄나풀이 되고 사투리로 끄내끼, 끄낙가리가 되어 <사랑의 끄낙가리>를 잡으라는 우스개가 나오기도 했다.
 
 
이제 아무 걸림도 애로사항도 없이 천천히 커피 향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한나절을 보내고 오후에는 순찰사마 대신공원이나 구덕산, 시약산, 아니면 장군산이나 송도해수욕장을 한 바퀴 휙 돌면서 그 긴 고난의 엑서더스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닿은 것 같은 세월이 도래한 것이었다. 국장전용차량이 있어 운전기사가 모시고간다고 했지만 공식 업무가 없을 경우에는 청사입구에서 부터 구덕로나 송도아랫길을 거쳐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올라 산복도로의 할머니들과 대화도 나누고 경노당도 둘러보고 지역경제과의 조림지도 살피고 산불감시원을 만나 순찰확인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 구체적인 실무가 없이 그냥 두루뭉술한 참모직인 국장이란 자리의 묘미는 길을 걸어도 산을 올라도 모두가 순찰이 되고 관내의 동향파악이라는 업무가 되는 것이었다. 살다살다 마침내 쥐구멍에 볕이 든 것 같았다.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