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또 한 번의 위기돌파⑦
여러분은 상인(商人)이라는 말의 상(商)자가 어디서 왔으며 무슨 말인지 그 정확한 뜻을 아십니까?
뭔가를 사고파는 장사라는 뜻의 이 상자는 남의 뜻을 헤아려 서로의 이해와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 있어 난상(爛商)토론이라는 말이 생겼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찮고 값싼 물건이라도 그걸 사고파는 일은 두 사람의 입장과 이익이 맞아떨어져야 된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사란 자기의 입장만 강조해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는 막장토론과는 반대가 되지요. 그러니까 장사 즉 협상이라는 말도 일방적인 이익추구의 설득과 반대가 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이 개념이 되지요.

이야기가 좀 어렵습니까. 그러나 상인이라는 말의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상인이라는 말은 원래 고대중국의 은(殷)나라의 수도인 상읍이 달기(達己)라는 미인에 빠져 정사를 그르친 주(紂)임금 때문에 함락되어 상읍에 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벼슬을 하지도 못 하고 농토도 빼앗겨 먹고살 길이 없자 지금의 몽고나 만주, 중동의 아주 먼 지역에 가서 귀한 물건을 사다 팔면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한 데서 유래하였답니다.
권력도, 농토도,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재산인 몸뚱이하나로 멀고 먼 길을 걸어 물건을 사오고 오래 기다리며 팔아서 겨우겨우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나마 신용이 없으면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신의를 목숨처럼 지켜 상나라사람이라면 아주 신용이 있는 장사꾼, 그래서 상나라사람이라는 상인(商人)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고 실천하시겠지만 장사란 모름지기 하나도 신용, 둘도 신용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이 현대화된 깨끗한 환경을 바탕으로, 오늘의 준공식을 계기로 한층 더 믿음이 가고 위생적이며 그 위에 늘 친절한 깨끗한 환경에서 정품과 정량의 상품을 파는 진정한 상인으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가 망한 후 송도사람들이 상업에 눈을 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삼상인 바로 송상(松商)으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6.25사변 때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우리 부산의 중심지 이 동대신시장에도 그 송상들의 후손이나 정신이 면면히 흘러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바로 한국제일의 신용, 진정한 상인으로 거듭나실 것으로 기대하는 바입니다.-
천모 번영회장이 박수를 치자 모두들 우레 같은 박수로 화답하고 휘익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인사말을 할 치안센터 지구대장과 시의원, 구의원도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공무원의 축사치고는 뭔가 좀 이상하지만 그런 데로 분위기는 잘 잡힌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다 상인들의 반응이 좋으니 일단은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할머니들도 눈가에 물기가 걷히고 한층 차분해진 분위기였다. 그는 한 번 더 결정타를 날리기로 작심했다.
여러분 저는 지금도 가끔 혼자 시장골목을 걸으며 옛날 생각을 합니다. 조금 시끄러워도 늘 활기차고 인정이 있고 사람냄새가 나는 재래시장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골목시장의 노란선이나 돌출물을 단속하는 방재안전과장을 지내면서 여러분이 제일 겁내는 도로단속 노란 차의 왕초였는데 여러분과 큰 마찰 없이 이렇게 만나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 이 시장에는 노란차가 들이닥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과 제가 다 같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해안시장에서 제 어릴 적 언양장터처럼 약간 물이 간 갈치와 가자미와 삼마의 값을 일일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꼬시라고 왜,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밀가루반죽을 돌돌 말아 기름에 튀긴 과자 말입니다. 그걸 발견하고 너무나 반가워 3천원어치를 샀지요.
그리고는 큰 횡재라도 한 듯 기쁜 나머지 잡채와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리어카에서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천 원짜리 사과와 복숭아를 한 개씩 사서 상을 차리니 너무나 푸짐하고 흐뭇했습니다.
누가 구청의 국장이나 되는 사람이 허가도 없이 비위생적인 데서 음식을 먹는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그게 뭐 대수입니까? 제가 나고 자란 분위기, 그런 음식냄새, 바람냄새가 느껴지고 어머니와 시집간 누님이 생각나는 자리에서 소박하게 술 한 잔 하고 가볍게 고향생각에 젖는 것을 말입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잘 한다!’라는 감탄이 튀어나오자 상인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지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거나 코를 팽 푸는 사람도 있었다.
“저 양반이 사람을 죽이는구만. 생긴 건 두리뭉실한 데 아예 사람의 오장육부를 뒤집어 애간장을 태우는구먼.”
누군가의 말에 와아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여러분, 오늘아침에 시장에 나오면서 다들 뜨리미 즉 떨이를 꿈꾸셨지요. 이 세상 모든 난전의 장사꾼들은 매일아침 떨이를 꿈꾸면서 눈을 뜰 것입니다. 그것이 옛날 우리어머니가 미꾸라지나 고구마줄기를 팔던 것처럼 생물을 팔면 그 절박함이 더 할 것입니다. 재래시장의 가장 큰 희망은 떨이이며 으뜸가는 꿈도 떨이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두 떨이, 아니 뜨리미 하십시오. 부자 되십시오!
와아, 함성이 일어나면서 좌중이 발칵 뒤집다.
여러분 매일매일 떨이하여 부자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꾸뻑 절을 하며 단상을 물러나는데 박수는 꽤 오래 지속되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로 천장철회장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하자 덩달아 시의원, 구의원, 파출소장과 같은 소속인 후배 동장 두엇도 손을 내밀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했다.
이어 시장번영회의 간부들을 비롯한 사내들이 다시 악수를 하려고 줄을 서자 사회자는 다음차례인 시의원의 인사를 잠시 늦추었다. 앞치마를 걸친 아주머니들은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가고 할머니 몇은 열찬씨의 손을 만져보기도 했다.
그중 한명에게 몇 년 전에 죽은 우리 큰 누님과 닮았다면서 무얼 파느냐고 물어보니 저쪽 편이라고 좌판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제 열찬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따 갈 때 들리소. 내 물이 약간 간 갈치하고 까지매기하고 삼마이를 좀 줄께. 공짜로.”
그날 행사가 끝난 뒤 그는 천장철회장으로 부터 융숭한 점심대접을 받았다. 나중에 듣기로 그 후로도 그의 이상한 축사는 오래오래 상인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 역시 자신의 40년 공직생활 중 가장 대표적인 인사말을 한, 그저 생각만 하여도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는 그날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동대신동재래시장에서 잔뜩 바람이 들어 구청장의 축사를 대행한 다음 주에 그에게는 또 엉뚱한 일이 닥쳤다. 느닷없이 의회사무국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었다.
그렇게 힘든 승진을 해 주민복지국장이라는 폼 나는 자리에 앉은 지 겨우 4개월 되는 날이었다. 그해 7월 들어 의회사무국장으로 있던 이병인국장이 자신의 잔여근무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 곧 사무관자리가 될 의회사무국장으로 퇴임하기는 억울하니 주민복지국장과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 간부진이 숙고 끝에 수용하기로 결정이 났다. 단 의회사무국장자리가 없어질 연말이 되기 전에 그가 자진 명예퇴직을 신청해 열찬씨가 다시 주민복지국장으로 돌아오기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조직의 원리상 신임서기관이 서열이 낮은 외(外)청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회사무국장자리가 없어지면 멀쩡한 서기관의 직책이 사무국장이 아닌 사무과장으로 바뀌며 연간 360만 원정도의 업무추진비가 삭감되는 것이었다. 가만 앉아서 다시 사무관으로 강등이 되는 것이랑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그 의회사무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입장이 참 묘한 것이었다. 직제 상 의회라는 별도 기관에 근무하는 만큼 모든 업무는 구의장의 지시를 받아 일하지만 인사권을 구청장이 쥐고 있는 만큼 매사 구청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의회의 사무감사나 구청장의 출석요구 등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구청장으로 부터는 의장을 꼬드기는 배신자로, 의장으로 부터는 의회의 입장이나 정보를 구청에 일러바치는 첩자로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구청에서 의회로 전보된다는 것은 겉으로는 능력과 충성심이 있는 자를 의회에 보내면서 열심히 근무하면 다음 승진을 보장해주는 경우와 무능하고 반골성향이 강한 자를 유배시키듯 보내는 두 가지의 경우로 압축되는 것이었지만 사실상은 구청장의 눈앞이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회에서 열심히 근무한다는 것은 구청장의 입장에서는 의원들의 동태나 의회의 분위기를 파악 구청장의 귀에 넣어주고 특히 구정시책에 대한 반발이나 구정질문, 특히 구청장에게 직접 질의를 하는 사례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었다. 외 청에다 한직인 의사계장에서 기획실이나 총무과로 옮겨가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을 잘한 경우였다.
그렇지만 이보다 한술 더 떠 의사계장에서 바로 다음 사무관승진이 거의 보장되는 기획계장, 총무계장으로 영전하는 엄청난 경우가 있다면 이는 의장이나 의원 중에 혹시라도 다음선거에서 구청장에게 도전하거나 그 반대편에 설 사람은 없는지를 잘 살피고 그 움직임을 파악하여 사전에 조치한 경우일 것이었다.
이미 업무의 범위가 고정된 속기사나 운전기사를 제외한 의회전문위원인 두 명의 사무관을 비롯한 십여 명의 직원들이 이렇게 어정쩡한 자리에서 늘 이쪽저쪽의 눈치를 살피는데 비해 의회사무국장자리는 희한하게도 그야말로 독야청청의 무풍지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의회의 입장에서는 의회 내에 더 이상 서기관 국장이 올라갈 자리도 없을 뿐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고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머리가 허연 국장은 대부분의 의원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의장이나 의원자신들이 시장골목이나 아파트단지에서 통장이나 청년회원을 지내던 젊은 조무래기시절부터 잘 알거나 형님동생하며 지낸 경우가 태반이라 함부로 부르거나 지시하기가 만만하지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의회사무국장은 혼자 국장실 빈 방에서 신문을 보고T. V 뉴스를 보다 가끔 있는 전자결재나 직장협의회 홈페이지를 보다 의장이나 의원이 출근하는 기미가 보이면 ‘반갑습니다.’라는 극히 공손한 말투로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돌아오는 것이 주요일과가 되었다.
또 의장이나 의원들도 출근하자말자 커피를 들고 오는 여직원이나 ‘국장님 계시냐?’고 물어 ‘점심약속 없는지 물어보고 와.’로 끝을 맺었다. 의장이든 부의장, 아니면 상임위원장이나 평의원이든 점심시간에는 반드시 사무국장을 챙기는데 그것은 식대를 의회의 예산에서 지금하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회기 중이 아니라 특별히 할일도 없으면서 멀쩡하게 정장차림으로 사무실에 나와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오후 2시경에 들어가려니 괜히 멋쩍어서 가까운 의회사무국장과 밥을 먹으며 이것저것 물어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서구의회에는 총 9명의 의원이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모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한 수씩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방의원들의 평균학력이 낮다, 골목대장처럼 좁은 동네바닥을 훑고 작은 이권에 개입한다는 혹평도 있지만 어쨌건 가난하고 시끄러운 부산이라는 바닥에서 여당의 공천을 따내고 2명이 당선되는 중선거구에 복수공천을 받아 당료와 야당후보를 물리친다는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친화력과 저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구정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시시콜콜한 질의를 하거나 예산심의나 연말의 사무감사에서 집행부에 대한 엉뚱한 이의제기나 고의적인 시비를 걸어 실무책임자인 과장을 길들이려고 하며 그럴 때마다 방청석에 자신을 지지하는 이웃주민들을 박수부대로 초청하여 점심대접을 하는 추태를 연발했다.
심지어는 인구가 감소하는데 왜 직원 수와 청소용역비용이 늘어나느냐고 행정수요나 사회변화는 도무지 염두에 두지 않는 어린애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향토애를 고취하기 위한 가요를 제정하겠다는 보고에 ‘구청이 뭐 딴따라부대냐!’며 호통 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 가나 마찬가지로 역시 괴팍한 사람보다는 무던한 사람이 많고 개인적으로는 열찬씨를 배려해주는 의원들도 많았다.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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