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새밭
박 정 숙
남새밭 고추, 가지. 토마토
어릴 땐 홀로 잘 서더니
나이 들어 자식들 생겨 힘들었는지
지지대에 의존한다
고관절부터 발까지
O형인 사람 X형인 사람
연골이 무너져 수술하고 회복할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니듯
넝쿨손 요리조리
줄 타고 다니는 오이야
부목 없이 다닌다고
뽐내지 마라
귀 기웃거리며 지팡이 짚고 다니는
여기 사람 사는 동네
마주 잡을 손만 있어도
종일 꽃피어 따듯하다
- 『시와 소금』, 2021년 봄호
연두색으로 태어나서 초록색으로 성숙하고 회색으로 쇠퇴하는 남새밭 채소들은 탄생 때에는 하늘을 보며 자란다. 풋고추 가지 토마토 어린 열매가 자라면 자랄수록 가지가 휘청해지니까 농부는 지지대를 받쳐 열매가 더 자라도록 해 주는데 이를 시인은 “어릴 땐 홀로 잘 서더니 나이 들어 자식들 생겨 힘들었는지 지지대에 의존한다”로 사람의 생애와 비유했다. 한 몸뚱이에 의지한 열매들이 자식들같이 보였고 지팡이를 의지해서라도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을 헤아린다.
직립보행의 인간 수명은 길어졌고 의술도 발달하여 다리 모양이 O형, X형 다리로 불편한 사람들은 연골이 편마모 되거나 다 닳아 버리면 안 되니까 수술로 교정하고 나중에는 인공관절도 넣게 되는데 “연골이 무너져 수술하고 회복할 때까지” 조심조심 “목발을 짚고 다니듯” 지지대를 의지하는 남새밭의 채소를 의인화 했다.
그런데 여기서 “넝쿨손 요리조리 줄 타고 다니는” 오이를 불러서 “부목 없이 다닌다고 뽐내지 마라“고 거만함을 경계하라는 충고를 한다. 줄을 타고 다녀도 그 줄의 끝에서는 반드시 실손을 아래로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지지대도 부목도 목발도 다 손으로 잡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귀 기웃거리며 지팡이 짚고 다니”더라도 “마주 잡을 손”이 있으면 넝쿨처럼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종일 꽃 피어 따뜻하다”고 사람 사는 곳이 제일이라고 한다. 세상은 오손도손 모여 사는 남새밭이다.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chosr51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