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38)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8장 백수출발⑥
대하소설 「신불산」(638)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8장 백수출발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11.17 06:50
  • 업데이트 2023.11.16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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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백수출발⑥
영순씨가 흔드는 바람에 깨어난 열찬씨가 시계를 보니 네시 반이나 되었다. 무려 두 시간 이상을 두 여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두 남자는 잠이 든 것이었다. 연산동의 미혜씨 집에 두 사람을 내려주고 열찬씨는 집에 갔다 오느니 바로 산우회에 친구들을 만나러가기로 하고 사무실 앞에 차를 댄 영순씨가
 
“보소. 오늘은 끗발 안 나도 짜부치지 마소.”
“알았다.”
“마치고 나면 돈을 잃더라도 술 한 잔 사고 오소.”
“알았다.”
“제발 잘게 놀지 말고 대범하게 큰 소리 좀 탕탕 치고 오소.”
“알았다.”

“안녕들 하세요?”

2층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며 열찬씨가 소리치자
 
"어서 오세요.”
“야, 얼굴 잊어뿌겠다.”
“이 국장도 양반은 아니구먼. 방금 한 번 올낀데 하고 들먹거렸는데.”
 
사각테이블에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던 회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며 악수를 청했다.
 
“다들 고마워요. 퇴임식에 와주셔서.”
“아니, 우리가 가는 거야 당연하지만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좋고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우리회원들 모두 골병이 들어 한 며칠 학교에 학생들이 안 보이더구먼.”
 
너그럽고 매너가 좋아 회원모두가 좋아해 산우회의 중심인물이 된 양경석회장이 산우회사무실에 고스톱꾼, 훌라꾼이 모이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래 우리 국장님은 별일 없었소? 그날 아주 기분 좋게 한잔 됐던데.”
“예. 고생 좀 했지요.”
“그건 그렇고 퇴임사를 읽는데 분위기가 참 비장하더구먼, 얼마나 사람의 심금을 울리면 이국장 말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이성복형님이 마음이 울컥한다면서 눈물을 다 비치고 말야.”
 
페인트가게 설사장이 말하는데 오전에 한번 만나자고 전화한 미장공 이 사장이
 
“아들, 딸, 사위, 며느리와 외손녀도 그럴 듯하지만 장모님이 기가 막히고 젊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홍여사가 아니라 장모님이 이 국장의 짝 인줄 알겠든데.”
“그래서 장모님하고 나하고 단둘이는 절대로 어디 안 가지요.”
“혹시 나 소개 좀 시켜주면 알 될까?”
“데끼!”
 
하면서 열찬씨도 판에 끼어들려 의자를 들고 오는데
 
“어라, 우리 이 국장!”
 
유리집 윤 사장이 들어오며 악수를 하고
 
“내 오늘까지 산우회에 안 나오면 저놈의 시환가 나발인가 작살을 낼라켔지.”
 
하며 벽에 붙은 <혼자마시기(獨酌)>을 가리키더니
 
“지가 뭐 출근을 할 일이 있나? 연금 나오는데 돈 벌러 갈 일이 있나? 내 같으면 아침부터 출근하겠다.”
 
하는데
 
“어렵소, 이기 누고?”
“아이구, 손 사장! 이기 몇 년 만이고?”
 
사람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태광이라는 신발회사의 중국현장책임자로 광저우인가 어디 저 남쪽지방에 나갔다 명절 때나 가끔 들리는 사람이었다.
 
“나도 인자 백수다. 중국일 시마이 고동 불었다.”
“잘 했다. 인자 나이도 환갑이 다 됐는데.”
 
예순 살 동갑이자 부산대학교 화학과 동기인 양 사장이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아이구, 가국장, 며느리도 보고 퇴임식도 했다면서.”
 
하고 악수를 하는데
 
“아이고, 형님들! 오늘은 많이도 오셨네.”
 
키가 자그마한 박 사장이 두 손에 무언가 잔뜩 들고 나타났다.
 
“박 사장, 또 뭐고? 박 사장이야 기분으로 자꾸 가지고 오지만 우리 회원들은 미안하다 아이가?”
 
양 회장이 물었다. 봉고차에 화장지와 티슈는 물론 캔 커피, 종이컵에 여성용품까지 일회용품을 잔뜩 싣고 하루는 언양, 경주, 포항방면으로 하루는 김해, 진해, 창원방면으로 아직도 시골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외진 구멍가게에 물건을 대어주고 이틀에 한번 집에 돌아오는 그는 월수금은 현지의 찜질방에 자고 화수금은 귀가하는데 귀가하는 길에 반드시 산우회에 들러 캔 커피와 티슈, 나무젓가락, 술잔 등 소소한 것들을 한 아름씩 챙겨오는 것은 물론
 
“오늘 통영에 장어가 물이 좋아서.”
“오늘은 구룡포에 과메기가 제 철이라서.”
 
하면서 술안주를 들고 오기가 예사였다. 그날도 부전시장에 들렀다 족발을 사왔다고 해서
 
“자, 오늘은 학생도 많으니 우선 박사장 족발로 소주 한 잔씩 하고 고스톱과 훌라조로 나누어 여덟 시까지 놀고 저녁을 먹읍시다.”
 
양 사장의 이야기와 함께 누구는 벽에 세워둔 거재한 유리판을 사각탁자위에 식탁으로 놓고 누구는 물티슈로 유리판을 닦고 또 누구는 족발과 야채를 널어놓고 누구는 잔과 젓가락을 나누어 단숨에
 
“건배!”
“건강을 위하여 건배!”
“아니 정년퇴직 이 국장을 위하여 건배!”
“영구귀국 선 사장을 위하여 건배!”
“아니야. 족발 사온 박 사장을 위해 건배!”
 
부지런히 술잔을 주고받아 10여분에 소주 일곱 병을 비우고
 
“자, 인제 본격적인 판을 벌여볼까?”
 
미장 이 사장이 훌라용 원탁에 담요를 깔고
 
“자, 선수입장!”
 
고정멤버인 자신과 양 사장, 페인트 선 사장이 앉자
 
“오늘은 우리 가국장하고 손 사장도 오시지요. 오랜만에 귀한 돈 좀 따묵자!”
 
해서 아직 훌라가 서툰 열찬씨가 머뭇거리다 앉는데
 
“나는 일단 고스톱판에 붙어보고.”
 
열찬씨보다도 더 익숙하지 않은 선 사장이 사양하는데
 
“잠깐! 훌라에 내가 빠지면 안 되지.”
 
키가 작은 미장공 황 사장이 들어오며 후다닥 자리에 앉는데 급히 왔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패를 돌려 선을 보면서 양 사장이
 
“거게 고스톱 조도 데라 단디 떼소. 훌라판 하고 고스톱판 하고 어데가 많이 떼는지 한 번 보자.”
 
하는데
 
“훌라가 훨씬 고급노름이고 판돈도 커다고 자랑이 늘어지더니 데라는 와 챙기노?”
 
설비공 김 사장이 싱긋 웃으며
 
“박 사장, 선 사장, 윤 사장! 우리는 3점 먹으면 스톱(STOP)해서 더 이상 먹지 말고 데라도 떼지 말자."
 
주특기인 베베 꼬는 말투로 말하자 화장지 박사장이 배시시 웃었다. 산우회에는 천하무적 옹고집에 늘 어긋난 방향으로만 행동하는 골치 아픈 회원이 몇 명 있어 도무지 변화나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이 알고 그 동안 해오던 방향만 고집하는데 설비 김 사장이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꽉 막히고 엉뚱한지 전두환고스톱 이후 수십 가지의 기발한 변화를 주어 판을 키우는 판에 산우회의 고스톱은 마치 민화투처럼 두꺼비라고 불리는 쌍피짜리 조커, 심지어 남의 피를 한 장 받아와 일거에 판세를 뒤집는 변화마저 거부하여 너무나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 고스톱보다 몇 배 더 신통방통한 변화에 익숙한 훌라꾼들은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설사>는 설사한 사람에게 나머지가 도로 피를 한 장씩 주는 희한한 제도를 도입해 이게 자유당 때 화투냐, 임진왜란 때 고스톱이냐고 비아냥거려도 그들은 오불관언 끄떡도 안 했다.
 
“오늘은 우리 국장님도 오셨으니 판을 좀 키울까?”
 
특히나 훌라를 즐기는 타일 공 이사장이 말하자
 
“이 사장 니는 그 기 말이라꼬 하나 중까랭이라고 하나? 그 기사 당연하고말고.”
 
노름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황 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십대 후반에 객지 부산으로 나와 달동네에서 같이 미장일을 배우며 욕 친구로 지내다 이젠 친구라기 보라는 앙숙처럼 그저 만나기만 하면 으르릉거리다도 훌라판을 벌리는데 만큼은 그럴 수 없이 의논이 잘 맞는 찰떡궁합이었다.
 
“자, 오늘은 1234다! 오랜만에 돈 좀 묵어보자!”
 
이 사장이 신을 내자
 
“사돈 남 말 하네.”
 
황 사장도 전의를 불태웠다. 평소 500원에서 시작하는 기본액수를 천원으로 배를 올린 것이다. 꼴찌에 4천원, 배판이면 8천원, 거기다 땡큐삐리에 곱, 7자가 잡히면 한 장에 4천원이니 잘못하면 한 판에 만 원 이상 심지어 2,3만 원도 예사로 나가는 큰판이 되어버렸다.
 
그 옛날 남부민1동장 시절 당시의 화두인 글로벌시대, 국제화에 적응하려면 고스톱이 아닌 카드놀이 훌라나 포커를 배워야 된다는 직원들의 장난기를 받아주며 배우기 시작한 이래 명절날이나 간혹 동서와 처남들이랑 한두 번 쳐서 아직 많이 서툴기 만한 열찬씨는 자기의 페어나 줄에 연결되는 패가 나오면 <땡큐>를 받는 것이 바로 뒷사람이 아닌 모두에게 적용되는 전투훌라, 일명 개훌라라 더 한 층 서툴고 난감했다. 자기의 패와 맞아 <땡큐>에 해당만 되면 저도 모르게 바로 흥분해
 
“때, 땡큐!”
 
판에 패를 펴면
 
“아니지.”
 
앞 순서인 누군가가 가로채고 자신은 괜히 패만 들통이 나는 바람에 선 한번 하기가 힘든데다 예사로 꼴찌가 되고 욕심을 부리다 7자가 잡히고 모처럼 좋은 패라 <땡큐>를 받고 패를 던지다 역으로 <땡큐>를 당해 덤터기를 쓰기가 예사였다. 한 시간 동안 선 한 번을 못 잡고 3,4만원이 나가더니 두 시간 반이 흐른 여덟시 중간결산 때에는 무려 7만원이 나갔다. 양사장이 데라통의 돈을 세면서
 
“자, 돈 잃은 사람은 액수를 신고하세요.”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