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적 방법론의 탄생
연역적 방법론의 탄생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3.19 22:21
  • 업데이트 2018.08.25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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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적 방법론의 탄생
데카르트 초상. 1648년 Frans Hals 작. 출처: 위키피디아
데카르트 초상. 1648년 Frans Hals 작. 출처: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 -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우주관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관 오디세이’를 통해 근대 과학의 선구자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이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갈릴레이는 오늘날 과학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는 과학 방법론을 창시한 ‘최초의 근대 과학자’입니다. 그래서 과학, 특히 물리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면, 갈릴레이에서 곧바로 뉴턴으로 넘어가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과학적 발견)이 얼마나 인간의 이성을 고양시키고 인식의 지평을 넓혔는가를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책머리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인류의 물리학과 이에 기초한 우주관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긴 여정에서 갈릴레이와 뉴턴 사이에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입니다.

오늘날 데카르트 하면 합리론을 정립한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뛰어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자연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무엇보다 수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철학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에서는 그의 자연철학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근대 역학의 핵심 원리인 관성의 법칙을 맨 처음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입니다. 또 그는 좌표계를 발명해 해석기하학을 탄생시키는 등 수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견인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데카르트는 기계론적 우주관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 물질문명의 기본 토대가 바로 기계론적 우주론입니다. 데카르트의 자연철학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유럽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쳤습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제창한 수학적 혹은 연역적 방법론은 프랑스 등 대륙의 과학발전을 저해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인류의 기적 같은 과학적 도약인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데카르트의 추종자들은 엄청 공격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자연철학 사상으로서는 중력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의 자연철학 중 물리이론과 우주론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매우 유치할 정도입니다.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은 뉴턴에 의해 폐기되었습니다.

데카르트가 물리학(역학)의 발전에 확실하게 기여한 것은 관성의 원리입니다. 갈릴레이가 실험을 통해 어설프게 파악한 관성의 개념을 그는 직관으로 확실하게 이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의 물질이론 중 ‘연장(延長, extention)’의 개념은 아인슈타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공간의 구조는 물질에 의해 규정되는데, 이것은 데카르트의 연장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가 정립한 연역적 방법도 과학자들을 고무시켰습니다. 과학적 도약을 이루는 데는 귀납적 추리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관을 통한 연역적 추리로 위대한 발견(일반상대성이론)을 이룬 대표적인 과학자가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나는 수학에 마음이 끌렸는데, 이는 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명증(明證)'이란 인식이나 판단의 진리성에 대해서 아무런 증명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확실함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학문의 진리를 탐구한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몇 가지 증명을, 즉 확실하고 명증적인 근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수학자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수학적 증명을 철학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데카르트는 23세 때인 1619년 독일 군대시절 울름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종일 방에 틀어박혀 세계의 본성과 삶의 의미 등에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그는 ‘놀라운 학문의 기초’에 대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데카르트 좌표계’를 발명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연구로 만들어진 지식, 즉 기존의 지배적인 철학을 버리고 독자적인 지식체계를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고대 이래로 철학의 근거로 삼아온 객관이나 절대자를 배제하고 주관을 근거로 삼는 최초의 철학자가 출현하는 순간입니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토대가 아직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엇보다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데 힘을 쏟기로 합니다. 그는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에 받아들인 그릇된 의견을 정신에서 모두 뿌리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실이 바로 ‘의심’이라는 개념입니다. 기하학에서 정리를 증명할 때 사용하는 논리적 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거짓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회의적 방법입니다.

데카르트는 수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의심하거나 부정하기로 합니다. 모든 것은 일단 거짓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심을 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라는 한 인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라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참임을 연역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심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의심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증명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리하여 데카르트가 철학의 제1원리로 내세운 그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자신은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명제는 어떤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논증 이전에 존재하고 있는 명석판명(명증)한 직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귀납에 의한 제1전제의 발견'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제1원리(즉 근본 전제)들은 차례대로 논증되지 않는다면서, 그 근본 전제들은 지적 직관(nous)에 의해 도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직관은 어디서 나오나? 이성, 이성은 어디서? 본유관념(생득관념)

그렇다면 직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며, 이 이성을 통해 모든 사람은 보편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또 이러한 이성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유관념(생득관념, innate ideas)입니다. 나아가 본유관념에서 나온 명제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판명할 수 있을까요? ‘명석판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진리다’고 데카르트는 결론 내렸습니다. 생득관념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정신에 내재해 있다는 관념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서구 사상사에서 가장 눈부신 연역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연역이 수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증명법인 ‘모순에 의한 증명’(귀류법)입니다. 증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나는 의심할 수 없고,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가정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이 같은 연역적 논리로 신의 존재 증명을 이끌어 냅니다.

‘의심은 불확실함이며 이는 곧 불완전함이다. 불완전하다는 개념은 완전함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완전함은 신의 것이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있는 것, 불완전한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연역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과학 방법에서도 연역적 연구의 기초가 되는 일반적 원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잘 알려진 대로 자연계의 경험적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상반된 입장입니다. 데카르트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물론 당시 물리학 속에서 계속 발전하고 있던 수학적 방법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직관에 의해 주어지는 기본관념(제1원리)= 신, 운동, 연장

‘직관에 의해 주어지는’ 어떤 기본 관념이 있다고 생각한 데카르트는 그것이 수학적 연역의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관념은 운동과 연장, 그리고 신입니다. 신의 관념은 데카르트 체계의 주요한 기초를 이루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은 연장을 만들고, 우주에다 운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신은 운동의 제1원인으로서 세계에 운동의 양은 일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신은 운동의 제1원인'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데카르트는 '관성의 원리'와 ‘운동량 보존의 원리’에 도달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의심할 여지없는 확실한 원리로부터 수학적 방식으로 이론을 진행시킴으로써 자연의 여러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물의 상세한 본성에 관해서는 동일한 명제에서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불확실한 것이 얼마간 있는 것이며, 대립하는 견해에 판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실험이 도입됩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관심은 주로 제1원리에서 사물의 일반적 모습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실험은 직관에 의해 주어진 원리에서 이끌어낸 관념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덜란드의 과학자인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베이컨은 과학 방법에서 수학의 역할을 잘 알지 못했고, 데카르트는 실험의 역할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논평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두 철학자의 작업 방식은 상보적인 셈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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