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론 논쟁과 양자론의 여명
원자론 논쟁과 양자론의 여명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7.10 17:37
  • 업데이트 2018.11.05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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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론 논쟁과 양자론의 여명
19세기말 원자론 논쟁을 치열하게 벌인 마흐와 볼쯔만(오른쪽).  볼쯔만은 기체가 원자의 집합이라고 믿었으나 마흐는 원자의 존재를 부인했다.
19세기말 원자론 논쟁을 치열하게 벌인 마흐와 볼츠만(오른쪽).  볼츠만은 기체가 원자의 집합이라고 믿었으나 마흐는 원자의 존재를 부인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 - 원자론 논쟁과 양자론의 여명

19세기 말 마흐(Ernst Mach)와 볼츠만(Ludwig Boltzmann)의  '원자론 논쟁'은 물리학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볼츠만은 이 논쟁에서 충격을 받아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그의 원자 가설은 사실로 증명되었고 불후의 공식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원자론’ 논쟁의 역사는 매우 깊습니다. 기원전 4~5세기 그리스 철학자 레우키푸스(Leucippus)와 그의 제자인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제안한 원자 가설은 ‘이 세상은 원자와 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원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더 쪼갤 수 없으며, 여러 방법으로 뭉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입니다.

원자는 일단 움직이면 다른 원자나 물체와 충돌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직선운동을 합니다. 이는 약 2000년 후 데카르트에 의해 처음 올바르게 이해된 ‘관성의 원리’의 원형적인 표현입니다.

고대 원자론자에 따르면 우주의 변화는 원자의 운동에 의해 일어납니다. 또 무(無)로부터는 아무것도 생성되지 않고, 모든 것은 일정한 근거와 필연성으로부터 생깁니다. 이 주장은 달리 말하면 신과 인간은 우주의 운행과 운명에 대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변덕스러운 신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주장하는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그래서 원자론은 당시 매우 진보적인 주장으로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일정한 근거와 필연성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인과론적 결정론의 한 표현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 정식화된 인과론적 결정론을 이미 2000여 년 전에 고대 원자론이 잉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고대 철학자들 중에는 원자론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그는 물체가 계속 움직이려면 힘을 계속 가해야 하며,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며 원자론자들의 주장을 공박했습니다.

원자론은 과학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인과율과 결정론은 자연과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 들어 기체 운동론과 열역학은 기체 하나하나를 원자(분자)라는 가정 아래 체계화되었습니다. 1857년 클라우지우스는 ‘일정한 부피의 기체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기체의 압력과 온도는 그런 원자들의 평균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온도는 그런 가상의 원자들이 가지고 있는 평균운동에너지에 해당한다.’는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1860년 맥스웰은 클라우지우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원자의 속력분포식을 창안했으며 볼츠만은 여기에 물리적 설명을 한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1868년 내놓았습니다. 이는 기체를 원자론으로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중앙묘지공원에 있는 볼쯔만의 묘. 묘비 맨 위에는 그가 인류에게 남긴 소중한 선물인 엔트로피 공식이 적혀 있다. 출처: 중급물리학 블로그 hobbieroth.blogspot.kr
오스트리아 빈 중앙묘지공원에 있는 볼츠만의 묘비. 맨 위에는 그가 인류에게 남긴 소중한 선물인 엔트로피 공식이 적혀 있다. 출처: 중급물리학 블로그 hobbieroth.blogspot.kr

나아가 볼츠만은 원자 분포의 확률을 알아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분포는 다름 아닌 ‘맥스웰-볼츠만 분포’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볼츠만은 1877년 열역학 분야의 난제였던 엔트로피(entropy)의 개념을 정식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이 이론은 열역학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체(원자) 운동론에 기초한 열역학 이론은 당시에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반대론자의 선두에 나선 인물은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마흐였습니다. 실증주의자인 마흐는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명백하게 실재하는 현상을 인간의 눈에서 영원히 감추어져 있는 ‘원자’로 설명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열 현상 등 실험을 통해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명백한 법칙들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가상적인 입자를 이용해서 설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논리입니다.

당시 과학법칙이란 직접 관찰된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었으므로 마흐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마흐는 원자론이 옳은 답을 제공하는 수학적인 관계식으로 구성된 모형일 수는 있더라도, 원자가 존재한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론이 실제로 적용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이론이 근거를 두고 있는 가정이 옳다는 충분한 증명이 될 수 없다고 마흐는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해 볼츠만은 원자 가설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기체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원자들의 집합이라고 가정하면 기체의 여러 가지 성질들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어떤 사람보다 먼저 인식했습니다. 그는 과학이론이 직접 관찰된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더 깊은 수준의 이해를 위해선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곳을 파헤쳐야 한다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볼츠만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 가설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볼츠만은 단 하나의 가설로부터 기체의 다양한 성질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새롭고 유용한 이해의 방법을 찾았다고 믿었습니다. 과학자는 볼 수 있거나 아니면 검출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가설을 구성할 때는 그런 직접적인 인지의 수준을 넘어서 직접 보거나 검출할 수 없는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자가 바로 그런 예가 됩니다. 그러나 마흐에게는 인지되는 것만이 과학 구성의 정당한 요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볼츠만과 마흐의 논쟁은 원자론 자체는 물론 물리학의 목적과 본질, 물리학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해와 설명의 성격에 대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마흐는 명백하게 측정된 양들 사이의 관계를 밝혀주는 간단한 식만 찾으면 된다고 믿었고, 볼츠만은 더 깊은 가정이나 가설을 이용하면 물리세계에 대한 더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볼츠만은 이론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세계가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원자론자들은 열과 압력을 모두 원자운동이라는 비슷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 가설은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마흐의 입장에서는 원자론자들이 주장하는 ‘이해의 증진’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 실체를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입자의 존재를 전제함으로써 얻어지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마흐는 이론 자체를 모두 부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원자 가설은 진정한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고, 물리학자들은 온도와 압력을 근본적인 양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체의 운동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는 온도와 압력 사이의 경험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한정됩니다. 마흐의 철학에 따르면 결국 과학이란 단지 기술에 불과하게 됩니다.

볼츠만은 마흐의 비판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는 62세 때인 1906년 가족과 함께 해변에 휴가를 갔다가 호텔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숨을 끊었는데, 우울증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볼츠만이 사망한 해를 전후해 ‘원자’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논문은 볼츠만의 이론을 토대로 원자의 존재를 확인한 결정적인 연구였습니다. 물리학도 엄청나게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톰슨은 전자의 발견을 통해 원자모형(수박모형)을 제시했고, 이후 그의 제자인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하고 새로운 원자모형을 개발했습니다. 바야흐로 양자론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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