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자유, 그리고
쓸쓸한 자유, 그리고
  • 박이훈 박이훈
  • 승인 2017.07.16 10:39
  • 업데이트 2017.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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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자유, 그리고

흐린 여름날 온천천 물가의 재두루미 한 마리.

20대 후반 30대에 나는 세월이 빨리 흘러서 아이들이 쑥쑥 자랐으면 했다. 펑 튀기하듯이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면 함께 바다도 보러 가고 나에게도 좀 자유시간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세살 터울의 형제는 쾌활하고 건강하고 씩씩했고 선천적으로 여자아이들과 달리 행동반경이 넓은 듯 했다. 외출이나 시장, 놀이터 나갈 때 현관 앞에서 큰아이 신발을 신겨주고 돌아서 작은아이 신발 신겨주는 동안 큰 아이는 부리나케 뛰어나갈 정도로 두 아이가 민첩했고 빨리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고 싶어 했다.

덩달아 나도 행동이 어리버리 하다가는 날마다 녀석들을 찾아 다니겠다 싶어서 아이들의 손을 잠시도 놓지 않으려 긴장하고 정신 집중해야 했다. 이제는 다 자라서 각자의 길로 걸어가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걱정이고 안쓰럽고 염려된다.

아이들의 아빠도 6여년 동안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지라 나는 거의 자유다. 직장을 다니지만 머지 많아 아름다운 뒷 모습으로 남아 있고 싶고 그동안 못 읽은, 안 읽은 책 실큰 읽고 마음껏 산책하며 살리라 다짐한다.

더러 주위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 한다. ‘식구가 다 흩어져 있어 그렇다’고 얘기하면 (독거의 쓸쓸) 자기들은 그게 로망이란다. 삼시세끼 다는 아니라도 끼니 챙기는 게 꽤 부담이 된다고 한다. 혼자 있으면 자칫 어지러울 때도( 잘 안 챙겨 먹음) 더러 있고, 주방에 서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때가 많지만 혼자라는 자유가 쓸쓸하다가도 좋을 때도 있다.

오래 떨어져 살다보니 어쩌다 남편이 와서 주말을 보내고 하루 더 있으면 영 신경이 쓰인다. 식사 문제에서부터 나이는 있지만 아직 고정 관념으로 옷 벗고 다니는 자유, 여러 행동의 부자연스러움, 남편이 거실에 떡하니 버티고 TV를 보고 있으면 채널 일치가 문제여서 모처럼 온 사람을 안방에 가서 TV를 보라고 할 수도 없고 '홈 메이트'인 나는 차라리 내 방으로 와서 음악을 듣던지 컴퓨터 앞에 앉던지 책을 본다.

누구는 모처럼 남편이 오면 옆에서 다정하게 우짜고 하지만 이 나이에는 전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시집살이 하는 동안 소 닭 보듯이 하던 습관으로, 정으로 존재하는 사이라 해야 옳은 말일 것 같다. 여러모로 아쉽고 필요한 존재여서 아무쪼록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게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누구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나와 제일 가까운 사이이며, 누구보다도 나를 챙기지만 어떨 때는 전화, 카톡이 안 되다가 어떨 때는 하루에 몇 번씩 카톡을 하다가 어떨 때는 오밤중에 불쑥 들어오기도 해서 짜증이 날 때도 더러 있다. 그래도 힘들었을 노동의 댓가를 다달이 나와 분배를 하고 택배로 과일, 생선, 고기들을 말없이 보내다가 기념일이 되면 필요하지도 않은 시계나, 지갑 등으로 좋은 소리도 별로 못 들어가면서 기꺼이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다.

나는 첫 아이 새댁 때 만났던 이웃사촌 친구들과 모임을 아직 하고 있다. 산천이 세 번 변하는 세월이라지만 그동안 유구하다던 산천은 열 번도 더 변한 것 같다. 언제부턴가 그 시대의 평범한 생각은 이미 고루한 사고로 여겨지게 되고, 도시와 시골은 너무 변해 옛날의 흔적만 남아 있어도 다행이다 싶다.

오늘은 퇴근길에 아파트 안에서 꼬맹이를 안고 걸어 가는 새댁 두 명을 만났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각자 목줄을 맨 반려견을 데리고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댁 이었던 시절 첫아이 키울 때 시어머니 생각에 울컥 그리움과 애증이 엇갈리고 우리 시대에는 강아지 키우는 새댁들이 흔하지 않았기에 한편으로 새댁들이 부럽고 대단하게 여겨졌다.

요즘은 남편들이 가사일을 거들어 주기에 가능한지, 시대가 참 많이도 변한 걸 느끼며 그래도 여린 몸으로 남편 식사 챙기고 아이 키우고 집 청소며 (맞벌이가 아니라도) 집안 대소사며 거기다가 강아지까지 목욕, 식사 ,배변, 잠자리 등등 할 일이 산재 하리라 생각하니 나는 도저히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 여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구든 한 사람이 인내하지 않으면 평온한 결혼 생활은 유지하기 힘든데 아무래도 아이들의 엄마인 여자들이 인내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없이 대가족을 건사하고 다자녀에다 많은 대소사까지 치러내는 장한 어머니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들도 힘드셨겠지만 각설하고...

시대의 변화라지만 가족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반려견을 한 마리도 아니고 몇 마리씩 키운다니 놀랍기만 하다. 나로서는 다시 태어나도 엄두를 내기 힘들겠기에 망연자실 고루한 나의 쓸쓸한 자유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