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1>돈을 넘어선 경제가치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1>돈을 넘어선 경제가치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8.01.09 12:21
  • 업데이트 2018.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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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1>돈을 넘어선 경제가치

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표지.

경제학 위에 ‘메타경제학’이 있음을 잊지 말자

E.F.슈마허는 ‘경제학의 역할’을 이야기하면서 흔히 ‘비경제적’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에 주목했다. 우리는 흔히 어떤 것이 화폐기준으로 적절한 이익을 올리는 데 실패했을 경우에 ‘비경제적’이란 말을 쓰지만 이러한 경제학적 판단은 ‘대단히 부분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화폐이익이라는 한 면만 보고, 단기적인 면에 치중하며, 모든 ‘자유재’ 즉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환경을 배제하는 비용개념에 기대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어떤 의미에서 시장은 개인주의와 무책임성의 제도화’라며 ‘특히 경제학자는 비경제적인 가치를 경제적 계산영역에 끼워 넣기 위해 비용/편익분석법을 사용하는데 사실상 이것은 고차적인 것을 저차적인 것으로 끌어내리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가격을 부여하려는 방식이며, 더욱 나쁜 것은 모든 것이 가격을 갖는다는, 즉 돈이 최고의 가치라는 주장이 문제’라고 신랄히 비판한다. 실제로 이러한 비용편익분석이 가장 일반화된 것이 소위 ‘4대강사업’과 같은 ‘국책사업’이다.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에 따라 국책 또는 공공사업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된다고 알지만 오늘날엔 이러한 국책사업이 오히려 자연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된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재정경제학자 호보 다케히코(保母武彦)는『공공사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公共事業をどう変えるか)』(岩波書店, 2001)에서 과거에는 주로 사기업이 해오던 것을 이제는 국가나 지자체 등 공공사업 주체가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등장하게 됐는데 이는 공공사업이 지나치게 비대해진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사업 한 건의 사업비총액이 수백억 원에서 수십조 원에 이르고 환경영향평가도 제3자가 아닌 사업주체가 행하기에 공공사업이 ‘공익’이 아닌 ‘공해’사업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또한 공공투자의 대부분이 건설업에 들어가지만 그것도 지역중소건설업체보다는 재벌 건설업체의 불량채권 처리로 들어가기에 지역경제 활성화효과는 거의 없다고 분석된다.

이처럼 우리사회가 국책사업 또는 공공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은 공공사업의 목적인 사회간접자본이 완공된 데 따른 시설의 사회적 유용성보다 건설투자 그 자체만 중시하는 정치인이나 관료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만 봐도 충분히 안다. 즉 국가주도의 경제부흥정책이란 것의 목적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책사업을 시작하게 하는 기초자료인 비용편익분석이란 게 오로지 개발의 이익만을 강조한 데서 나오기 때문에 문제다. 우리가 개발 대상으로 본 강(江)의 편익이란 것은 자연이 가진 강 편익의 10분의 1도 챙기지 못할 뿐더러 개발로 인해 원래 강이 주는 다양한 자연으로서의 편익을 오히려 해치는 ‘파괴’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실린 인디언 추장들의 삶의 지혜를 담은 글들을 보면 오히려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천박하고 무지한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위대한 정령이 만물을 만들어 놓은 대로 세상 것에 만족하며 손대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인들은 강이나 산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바꿔버린다. 그들은 그것을 창조라고 부르지만 우리 눈에는 철없는 파괴로 보일 뿐이다.-천둥 추장’. E.F.슈마허는 이러한 ‘일정한 틀 내부에서만 정당하면서도 유용하게 작동하는 경제학’에서 벗어나 경제학의 한계를 이해하고 해명하기 위해서는 ‘메타경제학(meta economics)’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메타경제학이란 인간을 다루는 부분과 환경을 다루는 부분으로 구성되며, 경제학은 그 목적과 목표를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마허는 인간이 2차 재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무리 향상되더라도 지구에서 1차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의 향상이 선행되지 않는 한 그것은 무용지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산자가 아니라 전환자(converter)일뿐이다. 따라서 재생불가능한 재화와 재생가능한 재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슈마허의 ‘메타경제학(meta economics)’의 개념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메타경제학에서 ‘메타(meta)’란 그리스어 ‘뒤(after)’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위(above)’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경제학은 메타경제학에서 나온 지침(instructions)을 받아들이는 파생된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즉 지침이 바뀌면 경제학의 내용 자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슈마허의 메타경제학을 이해하는 데는 ‘Frontiers of Business Ethics(경영윤리의 최전선) 시리즈 11’로 발행된『Responsible Economics(책임있는 경제학)』(2013)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대학 경영학 교수인 라즈로 졸나이(Laszlo Zsolnai)가 소개한 ‘메타경제학의 중요성’이란 논문이 도움이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체제(economic system)가 가장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위에 이를 지배하는 것이 경제학(economics)이라면, 이 경제학 위에 자리잡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메타경제학(meta economics)이라는 것이다. 즉 경제학은 경제체제에 방향을 제시해 해결책을 평가하고, 메타경제학은 경제학 자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판단한다. 결국 경제학의 진실은 메타경제학의 적절성에 의해 보장된다는 말이다. 졸나이는 슈마허가 우리가 알고 있는 주류경제학이 환경적, 사회적 실패를 계속 낳아온 이유가 부적절한 메타경제학적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듯이 결국 주류경제학은 주요소를 화폐경제, 즉 사회의 화폐적인 면만 보기에 나머지 부분은 그것이 시장적 가치를 낳지 않기에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이고 결과적으로 무시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실제로 화폐경제는 사회와 자연간의 전체적 상호과정을 보는 전체 경제학에서 보면 빙산의 일각(一角)에 불과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를 졸나이는 ‘전체 경제의 빙산(the whole economic iceberg)’이란 그림을 제시하면서 설명했다. 빙산 가운데 우리들 눈에 보이는 화폐경제는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각’인 반면, 물 속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사회적 경제와 어머니 대지(social earth)’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로버트 콘스탄자(Robert Constanza) 등의 1997년 논문에서는 지구 생태계의 서비스와 자연자본스톡이 연간 16~54조 달러(연 평균 33조 달러)로, 연간 18조 달러에 이르는 글로벌 GNP의 약 2배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졸나이 교수가 설명하는 메타경제학, 경제학, 경제체제와의 영향 관계(왼쪽). 빙산의 일각으로 묘사되는 ‘화폐경제’. 물밑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사회적 경제와 어머니대지 부문’.

그는 슈마허와 마찬가지로 메타경제학이 잘못되면 경제학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제 기능을 못한다고 강조하고 우리시대의 생태적이고 인류적 위기에 책임을 지는 ‘대안경제학(alternative economics)’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메타경제학의 선택은 3가지 기본 질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첫째, 경제학의 주관심사는 무엇인가? 둘째, 경제학에 어떤 가치 개입이 옳은 것인가? 셋째, 경제학의 적절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졸나이는 우선, 경제학의 주관심사는 화폐경제가 아님에도 화폐경제만을 중시한 것이 주류경제학이 범한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는 대안경제학의 주관심사는 자연생태계(natural ecosystem), 경제조직(organization), 인간(human persons)으로 구성된 전체 경제과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생태계는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생태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조직에게 자연자원을 생산하게 하고, 가정, 기업, 공동체 등 경제조직은 인간을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생태계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은 경제조직에 참가해 그들의 생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졸나이 교수가 제시한 전체 경제과정. 자연생태계와 경제조직 그리고 인간이 상호작용 한다.

둘째, 졸나이가 제시한 대안경제학은 주류경제학과 다른 메타경제학의 가정을 사용해 대안경제학의 기본적인 가치지향은 ‘지속가능한 삶(sustainable livelihood)’이다. 이는 생태적 지속가능성,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그리고 인간 개발을 포함한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선 경제활동은 자연에 해를 끼쳐선 안 되고, 미래세대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며, 경제활동은 인민의 복지(wellbeing)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슈마허가 말한 ‘영속성(permanence)’이나 오늘날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 셋째로 대안경제론의 적절한 방법론으로 졸나이는 ‘구성주의적 방법론(constructive methodology)’를 강조한다. 구성주의적 방법론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위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고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한다는 의미, 즉 실천지향의 이론과 참여 및 토론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가치중립적 입장’, 또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혁파하는 데서 출발한다. 졸나이는 1991년에 슈마허가 말하는 메타경제학을 ‘대안경제학’으로 규정하고, 대안경제학과 주류경제학을 다음과 같이 <표1>로 비교하였다.

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경제의 ‘규모문제’를 중시했다. 결론적으로 슈마허는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집단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규모 단위의 다양성에 대처할 수 있도록 분절화된 구조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의 사고방식이 이 점을 파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폭넓은 추상영역, 즉 국민소득, 성장률, 자본/산출비율, 투입/산출분석, 노동자 이동, 자본축적 등을 극복할 수 없다면, 그래서 이 모든 영역을 넘어 빈곤, 좌절, 소외, 절망, 몰락, 범죄, 현실도피, 스트레스, 혼잡, 추악함, 정신적 죽음 등의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과 대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러한 경제학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즉 슈마허는 한마디로 경제학의 당면과제는 성장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슈마허의 경제학은 ‘인간중심의 경제학’이다. 경제학이 인간성 회복과 지속가능한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그런 경제학을 더 이상 떠받들고 살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