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정리가 대재난을 초래하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대재난을 초래하다

조송현 승인 2016.12.02 00:00 | 최종 수정 2018.06.23 21:30 의견 0

그리스 사모스 섬의 피타고라스 동상. 그가 증명한 불멸의 피타고라스 정리를 형상화한 직각삼각형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서 있다. 그리스 사모스 섬의 피타고라스 동상. 그가 증명한 불멸의 피타고라스 정리를 형상화한 직각삼각형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서 있다. 출처: samos-beaches.com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다

수학을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피타고라스 정리’가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은 알 것입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증명한 이 정리는 직각삼각형에서 빗변 길이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을 각각 제곱해 더한 것과 같다는 내용입니다.

a² + b² = c²

이것은 일견 너무나 단순한 정리입니다. 당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도 이를 알고 있었고, 실제 응용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직각삼각형에 이 정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피타고라스가 이를 증명했던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증명은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 증명은 우주 내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직각삼각형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만족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이것은 너무도 중대한 발견이었기에 피타고라스학파는 100마리의 소를 잡아 제단에 바침으로써 신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발견은 수학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인류 문명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증명이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증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수학적 증명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이 세상의 어떤 결론보다 깊은 신뢰도를 갖는데, 그것은 단계별로 진행되는 완벽한 논리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탈레스도 기하학에서 초보적인 증명법을 개발해내긴 했지만 피타고라스와 비교할 바는 못 됩니다. 피타고라스는 증명의 개념을 몇 차원 높이 끌어올려서 탈레스보다 더욱 엄밀하고 우아한 방법으로 수학 명제들을 증명했던 것입니다.

피타고라스 정리 증명의 두 번째 의의는 추상적인 수학을 실제 대상에 결부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적 진리는 과학적 세계에 적용될 수 있으며, 따라서 수학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적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입니다. 수학은 과학으로 하여금 엄밀한 진리의 기초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피타고라스 정리로 말미암아 재난을 맞이하다

그러나 피타고라스학파는 자신들의 유명한 정리로 말미암아 재난을 맞이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 정리를 통해 무리수의 존재를 연역해내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가 각각 1인 직각삼각형을 그려봅니다. 이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의 제곱은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1² + 1² = x² =2. 즉, 빗변의 길이는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라는 것입니다 . 도대체 이런 수는 어떤 수일까요?

오늘날 수학에서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2 라고 표기하고 루트2 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그들이 개발한 모든 기하학이 정수나 정수의 비, 즉 유리수로 표현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유리수는 매우 단순한 숫자로서, 제 아무리 길거나 짧은 거리도 유리수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만일 모든 기하학이 유리수만으로 표현된다면 기하학을 이해하는 것도 그만큼 쉬워질 것입니다. 비단 기하학만이 아닙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만물은 수이다.’라고 했듯이 수는 만물의 구성 요소이자 우주의 구성 원리라고 믿었습니다. 이때 이들이 생각한 수는 정수와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는 수였습니다. 이런 수를 유리수(有理數 rational number)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정수와 분수가 있으며 소수로 나타내면 유한소수나 순환소수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수는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유리수 외에 괴상한 수(무리수)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유리수 종교는 붕괴하지 않겠습니까? 유일신을 믿던 교도들이 이교도들이 믿는 신의 강림을 목격하고서 종교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상황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자신들이 발견한 불멸의 수학정리를 통해 정수나 정수비로 나타낼 수 없는 어떤 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즉,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정수비로는 나타낼 수 없었으며 ‘무리수(無理數 irrational number)’를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비단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뿐 아닙니다. 직각삼각형 중 두 변의 길이가 각각 1과 2인 경우 빗변은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라( χ² = 1² +2²) 제곱해서 '5가 되는 수'입니다. 이것도 정수나 정수의 비로는 도무지 찾을 수 없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이 외에도 제곱해서 '8이 되는 수', '제곱해서 10이 되는 수' 등 유리수로 나타낼 수 없는 수많은 '괴상한 수'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유리수의 ‘유리 rational’란 ‘ratio’ 즉 ‘비율’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유리수는 유비수, 무리수는 무비수가 원래적 의미와 가까운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어떻게든 이 값을 기존의 유리수로 표현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모두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두 정수의 비율을 나타낼 수 없는 수(무리수)가 있다는, 재앙과도 같지만 엄연한 사실을 발견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예전 대학입시 본고사에 ‘√2가 유리수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문제가 자주 등장한 것은 √2를 비롯한 무리수의 탄생이 이 같은 수학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리수의 발견으로 피타고라스학파는 심리적 공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숭배했던 수는 정수와 그 비율인 유리수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양과 수에 관해 원자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창조물인 두 개의 정수 비율로 나타낼 수 없는 수의 발견은 그들 종파의 모든 믿음 체계를 뒤흔들었던 것입니다.

무리수의 존재는 교단의 비밀, 누설한 자는를 수장에 처하다

히파수스 히파수스

이처럼 위험한 발견이 이루어졌을 무렵, 피타고라스학파는 수의 힘과 신비에 대한 연구에 헌신하는 체계적인 교단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교단의 일원이었던 히파수스(Hippasus)는 무리수의 존재의 비밀을 외부 세계에 누설한 죄를 지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무수한 전설이 생겨났습니다. 히파수스가 교단에서 추방되었다는 전설, 피타고라스가 몸소 이 배반자를 목매달았다거나 익사시켰다는 전설, 교단의 무리들이 히파수스를 배에 태워서 멀리 띄워 보낸 후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 등이 그것입니다.

정수가 신성하다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념은 히파수스의 죽음과 더불어 끝장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학파는 무리수의 발견으로 초래된 딜레마를 수학적, 물리적인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했습니다. 수학적 해결로는 산술을 대부분 버리고 대신 기하학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기하학에서는 √2를 일정한 수로 이루어진 단위 점으로 표시할 수는 없어도 일정한 길이의 선분으로는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기하학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 무리수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진 뒤였습니다. 기하학은 선과 면과 각을 다룹니다. 이것은 모두 연속적입니다. 무리수 발견 이후 연속체 개념에 대한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유리수는 유한한 수의 항으로 진술될 수 있습니다. 반면, 파이(π)  등 무리수의 표현은 본질적으로 무한합니다. 즉, 무리수를 완전히 규정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자릿수로 표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리적인 면에서는 단위 점에 대해 원자론적인 수의 성격을 배제하고 이들 점의 물리적인 성질에 관해 사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수학적 세계관에 의하면 정수나 유리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이 우주가 원자와 원자 사이의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론과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유리수 사이에 무한히 많은 무리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원자론을 믿기가 힘들어졌을 테지요. 그래서 원자론과 대비되는 에테르(ether) 가설이 고개를 든 것도 이때쯤입니다. 에테르 가설은 유리수와 유리수 사이에 무수한 무리수가 존재하듯이 우주 공간은 무한히 작은 미지의 물질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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