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교수의 '다시 문학청년으로' <9> 무크지 『지평』의 발간 전후㊦

민병욱 교수의 '다시 문학청년으로' <9> 무크지 『지평』의 발간 전후㊦

민병욱 승인 2018.03.07 00:00 | 최종 수정 2018.03.12 00:00 의견 0

부산 중앙동 부산데파트 부산문예사에서 열린 무크지 『지평』 발간을 위한 사전 모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태범(소설), 민병욱(평론), 김미라(희곡 번역), 이윤택(시), 남송우(평론), 이정주(시). 출처: 민병욱

'지평' 제2집의 발간(83.10)

제1집에 이어 제2 집의 발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제2집은 제1집에서 정리하지 못한 몇 가지 문제들을 정립하여 서문 ‘『地平』 2를 대신하면서’에서 보다 분명하게 밝히게 되었다.

먼저 ‘무크지의 성격과 방향’에 관해서는 그 성격을 ‘부산지역 문학운동’으로, 방향을 ‘지방문학으로서 한국문학, 한국민족문학으로서 세계문학’으로 정립한 것이다. 이에 따라서 제2집의 ‘주제비평’을 ‘한국문학의 총체적 인식과 전체적 전망’으로 설정하여 비평 부재의 시대에 지역문학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서 필진을 재구성하면서 ‘『지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 〈열려 있음〉의 실천 행위로서’ 시인 박청륭, 소설가 신태범, 고전문학자 김성언 교수를 제외하고 평론에 송희복(8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입선)과 하창수(『시학』 동인) 시에 강영환(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과 하 일을 새롭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크지 발간을 위한 사전 모임부터 참여한 소설가 조갑상(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도 뒤늦게 합류했다.

이러한 필진의 재구성으로 ‘주제비평’ 부문이 강화되고, 부산지역에서 여느 장르보다 소홀했던 희곡 부문의 새로운 작품 자료 발굴(민병욱)이 이루어졌다.

지방문학운동론의 쟁론화

80년대 초반 한국문학의 특성을 설명하는 개념은 ‘시의 시대’(소설의 부재)와 ‘비평의 부재’(비평 논쟁의 부재), ‘무크지의 시대’(지방문학의 활성화와 문단 데뷔의 개방성 혹은 젊은 신인들의 급격한 증가)이다. ‘무크지의 시대’의 실제적 사례로서 ‘지방문학의 활성화’를 거론하지만 그 방향성을 논의한 것은 기성 문단이 아니라 대학문화권이다.

그 첫 출발은 『이대학보』(1983.11.28.)의 ‘지방문학운동’ 특집이다. 그 특집에 참여한 채광석은 「민중민족문학의 확대심화로서의 지방문학운동」에서 ‘부산에서 발간된 어떤 무크지 〈「지평」 제2집〉에 지방문학운동론(민병욱의 「지방문학운동의 형성과 전개」)을 읽고’를 비판한다.

이에 필자는 채광석과 같이 특집에 참여한 부산지역 「열린 시」 동인(이윤택 시인), 대전지역 「삶이 문학」 동인(김영호)의 비평을 비판을 하면서 무크지와 동인지를 중심으로 한 지방문학운동론에 관한 논쟁을 요구했다. 그 비판은 「지방주의의 실체 Ⅰ」(『목요문화』, 1984.3), 「지방주의의 실체 Ⅱ」(『동대학보』, 1984.1.3.), 「70년대 한국문학의 응전력 비판」(『해양대학보』, 1984.3.30.), 「80년대 문학운동의 양상과 의미」(『민주주의 지향의 문학』 수록, 1985) 등으로 발표되었지만 쟁론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평』의 분열

지방문학운동론은 한국문학계에서 쟁점화 되지는 않지만 『지평』 편집동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제3집의 발간을 위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격발시킨 계기가 된 것은 신인의 참여 문제였다. 그 계기의 사소한 실례가 된 최영철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창간호는 평론 논문 인터뷰 시 소설 희곡 등을 망라하는 종합문예지의 구색을 갖춘 매체로 부산문예사에서 출간되었다.

내친 김에 83년 가을 2집을 냈던 ‘지평’ 편집동인들은 84년 봄 3집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지평’이라는 제호에 걸맞게 지면을 다양한 장르와 관점으로 확산하고 신인을 위해서도 폭넓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과, 보다 엄격한 품위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이런 입장 차는 ‘지평’에 접수된 한 신인이 시를 놓고 게제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더욱 상반되게 대립되었다. 문학적 열정에만 합의했을 뿐 그 방향과 방법까지는 합의점을 차지 못했던 결과였다.

애초부터 그것은 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요소들이었다. 문학의 힘은 각기 다른 개성과 방법론에 있는 것이니까. 그보다는 모두가 한결같이 너무 뜨거웠던 탓이 아니었을까. 

(http://blog.daum.net/jms5244/16112420)

문제는 ‘지평에 접수된 한 신인의 시를 놓고 게재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임은 분명하지만 게재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지평』의 성격과 방향에 관한 잠재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었기 때문이다.

지방문학운동의 성격과 방향성에 관한 대립은 시인 이윤택과 평론가 민병욱 사이에서 첨예하게 일어난다. 이윤택 시인은 『이대학보』(1983.11.2.)의 「지방문학운동」 특집에서, 『현대시학』에 연재한 결과를 엮은 『우리시대의 동인지 문학』(도서출판 시로, ’83.12)에서 부산지역을 ‘향토문학’의 성격을 지향하여 ‘해양문학’으로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에 대하여 평론가 민병욱은 「지방주의의 실체 Ⅰ」(『목요문화』, 1984.3) 등에서 그의 비평을 ‘문학운동의 명제 및 그 실천방법과 주제의식 간의 관련 양상’을 배제하면서 ‘동인지 선언과 시대정신 사이에 대한 의미 만들기’를 전혀 시도하지 않는 형식주의라고 비판한다.

‘한 시인의 시’가 문학과 문학운동에 관해서 잠재되어 있는 서로 다른 논법이 논쟁적 토론으로 공개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토론은 너무나 쉽게 매듭을 짓는다. 그 당사자와 『지평』 제2집에서 영입한 ‘신인 평론가’가 함께 그 ‘신인 시인’의 참여 문제를 논의한다. 문학의 ‘운동논리’를 공감하고 제3집도 그 방향으로 가야된다고 하던 그 ‘평론가’가 세 사람의 모임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 시인의 논리를 지지한다. 그 평론가는 ‘신인의 시’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도 않은 채.

이로써 문학과 문학운동에 관한 성격과 방향성의 차이로 『지평』은 제3집에서부터 분열된다. 그 분열로 제3집은 신인으로 ‘민병태, 조성래, 최영철’을, 지역 기성 문인으로 ‘구모룡(부산), 박남철(서울), 박태문(부산), 배창환(대구), 안도현(전북)’ 등을 받아들이면서 전국적인 문학잡지로 계속 발간된다.

제3집에 참여하지 않고 문학운동을 지속하기로 의견일치를 본 평론가 남송우와 민병욱, 시인 이정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간다. 그 자리에 무크지 『전망』과 『비평의 비평』 운동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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