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교수의 '이 한 편의 작품을'   ①정성환의 <불꽃처럼 사는데도>

민병욱 교수의 '이 한 편의 작품을'   ①정성환의 <불꽃처럼 사는데도>

민병욱 승인 2018.04.16 00:00 의견 0

『작가와 사회』(2018 봄)에 수록된 정성환 시인의 <불꽃처럼 사는데도>와 정 시인.

지난 3월 20일 웹진 인저리타임(injurytime.kr)에 ‘다시 문학청년으로- 비평의 비평 운동 전후’라는 글을 쓴 이후 서재와 연구실 책장의 책들을 다시 정렬했다. 부산지역의 문학, 시, 소설, 희곡, 평론, 동인지, 문학잡지 등 관련 책들을 서가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그곳에 있던 책은 전공도서를 제외하고는 꾸러미로 묶어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는 부산문학작품들을 정독하고 시작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20대에 첨예하게 싸웠던 부산지역문학, 지역문화와 다시금 부딪치고 싶었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부산문학은 나에게는 20대와 60대 사이의 시간적 거리보다도 더 멀리 있고, 무엇보다도 그 거리의 차이보다도 문학에 대한 관점도 더 큰 폭으로 벌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4월의 책상 앞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부산문학작품은 딱 2권- 『작가와 사회』(2018 봄)와 『이 계절의 좋은 소설』(2018 봄)뿐이며, 성함이라도 알고 있었던 문인들도 몇 되지 않았다. 이러한 지역문학과 나의 간격이 오히려 작품을 열독하고 집중하게 한다.

『작가와 사회』(2018 봄)에 수록된 시편들 가운데 정성환의 <불꽃처럼 사는데도>를 읽으면서 갑작스럽게 머리를 스쳐가는 시 구절은 T.S.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 첫 행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대학교 시론 수업시간에 교수는 시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을 역설(Paradox)로, ‘난 내 일생을 커피 숟갈로 되질해 왔다.’를 객관적 상관물의 모범적인 보기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그 지겨움의 반복이 갑자기 연상되면서 위의 시편들보다도 더 집중하게 만든 것은 4월의 꽃샘추위이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 특히 부산에서 부는 꽃샘바람으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느끼게 한다.

정성환 시인은 그러나 겨울이 지나간 봄을, 봄을 기다리는 겨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인은 ‘불꽃처럼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먼저 한다.

팽팽한 겨울바람이 영글어 가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는 괜스레 친구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다.(제 1, 2행)

그렇다고 시인은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고 ‘친구’에 대한 ‘나’의 감정을 먼저 이야기한다. 그 감정은 ‘겨울바람’을 살갗을 에워싸는 추위로 온 몸을 움츠리게 하는 ‘팽팽함’으로, 그 추위가 극에 달하여 감을 ‘영글어 가면’으로 표현한다. ‘나’와 ‘친구’는 ‘팽팽한 겨울바람이 영글어 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는 ‘(그렇지 않는) 친구’에게 죄 감정을 느낀다. 이어서 그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말한다.

내 불알친구 진수는 용접공(제 3행)

‘나’는 그 ‘친구’가 ‘불알친구’이면서 ‘용접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독자들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와 ‘용접공 친구’를 섣부르게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와 블루칼라(육체노동자)로 분류하고 ‘불알친구’ 간의 ‘죄짓는 기분’을 서로 다른 계급들 간의 동정의식이나 연민의식으로 생각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시인은 ‘나’의 감정을 겉으로 결코 드러내지 않고 ‘친구’의 행위를 이야기 한다. 곧 ‘나’의 ‘죄짓는 기분’은 ‘친구’가 블루칼라라는 계급에 있지 않고 그의 행위와 마음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봄날 약숫물 뜨러 산 오르듯 아무렇지 않게 맨몸으로 난간을 탄다 세상 모든 불 끌어다가 차갑고 냉정하고 딱딱한 것들 사이좋게 이어 붙인다는 여린 마음(제 4~7행)

‘친구’는 ‘팽팽한 겨울바람 영글어 가’는 겨울에도 ‘약숫물 뜨러 산에 오르’는 봄날’에도 ‘맨몸으로 난간을 탄다.’ ‘친구’가 ‘맨몸으로 난간을 타’는 것은 육체노동자 용접공의 건강한 육체, ‘맨몸’ 때문이 아니라 ‘차갑고 냉정하고 딱딱한 것들/사이좋게 이어 붙이’는 ‘여린 마음’ 때문이다. ‘친구’는 육체노동을 견지하게 하는 ‘용접’의 ‘불’을 수단으로 하여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세상의 가장자리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정다움이 없고 쌀쌀하거나 매정한 것’들을 이어주거나 혹은 사람들이 ‘정다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난간’을 만들어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가 살아가는 세상과 사람들은 그러한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 그 자신의 삶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마스크에 겁 없이 쏟아지는 용접 불똥만큼 사는 게 가볍지도 짧지도 않아서 친구는 창문 없는 여관 달방에 산다(제 8~10행)

‘불’과 같은 타오르는 열정으로 정다운 세상, 다정한 사람들의 삶을 만들려고 하는 ‘친구’는 그래서 오히려 ‘가볍지도 짧지도 않는’ 삶을 살아간다. ‘친구’가 정으로 이어지는 세상, 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할수록,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그의 삶을 소통할 수 없는 ‘단절’의 공간, 언제나 내보낼 수 있는, 적어도 매달마다 떠나게 할 수 있는 폐쇄의 일시적인 공간에 가두어 둔다.

오십이 넘도록 혼자 사는 친구는 그래서 불꽃같은 여자보다 다마가 약해 흐릿한 불빛마냥 따뜻한 여자가 그립다고 했다(제11~13행)

‘친구’의 닫힌 단절의 공간에 필요한 것은 ‘불꽃’이 아니라 ‘따뜻함’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가장자리에 밀려나지 않으려는 ‘불꽃같은’ 열정, 혹은 ‘불꽃같은’ 열정으로 살아가야 삶의 나락에서 밀려나지 않기 때문에 ‘친구’에게 그리워하는 것은 ‘따뜻함’일 것이다.

세상과 삶들과 소통을 단절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가볍지도 짧지도 않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가 그리워하는 ‘따뜻함’은 무슨 의미일까?

술 취하면 엄마도 보고 싶다고 운다 불꽃 닿는 자리마다 희망이 순식간에 식어가는 겨울이다.(제 14~15행)

‘친구’의 그리움은 일상에서는 ‘따뜻한 여자’이지만 ‘술 취하면 엄마도 보고 싶다고’ 우는 것이다. 단절과 폐쇄의 공간 ‘창문 없는 여관 달방’에 ‘오십이 넘도록 혼자 사는 친구’에게 ‘따뜻한 여자’는 여성에 대한 그리움, 매정한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갈 동행에 대한 그리움, 세상과 사람들을 ‘정’으로 이어주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길동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정다운 세상, 다정한 사람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친구’에게 그 가능성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원초적인 어떤 힘이나 그것을 스스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모성본능적인 어떤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 힘이나 욕망은 그러나 ‘친구’에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나 자신의 이상이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비극적 감정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불알친구 용접공 진수’, ‘여린 마음’을 가지고 ‘창문 없는 여관 달방’에 사는 ‘오십 넘도록 혼자 사는 친구’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어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곧 ‘나’는 ‘친구’에 대한 ‘죄짓는 기분’이 들게 된 ‘겨울’로 되돌아간다. 그 ‘겨울’, 곧 ‘희망이 순식간에 식어가는 겨울’은 세상의 험한 난간을 이어주려고 하는 ‘친구’에게나 그 ‘친구’에게 ‘죄 짓는 기분’을 들게 하는 ‘나’에게도, 그 ‘친구’가 ‘정’으로 만들고자 한 세상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결코 주지 않는다. ‘희망’을 ‘절망’으로 언제나 되돌려 놓는 세상, 그 속에서도 그렇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린 마음’의 ‘불꽃’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불꽃처럼 사는데도>는 개인을 인간다운 삶으로부터, 관계 속의 삶으로부터 단절시키고 폐쇄시키는 세계의 질곡을, 그 질곡으로부터 ‘희망’을 잃고 ‘절망’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 보여줌을 시인은 ‘나’와 ‘친구’의 이야기로 표현한다.

그의 시는 다른 어떤 시편보다 더 잘 읽히고 재밌다. 일반적으로 현재 발표되는 시편들은 무슨 의도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하나의 이야기나 통일되고 일관된 구조로 표현하지 않고 너무나 많은 말들을 너무나 산만하고 단편적으로 나열한다. 그 즐거움이 부산지역 문학작품에서 흠뻑 느끼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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