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삶, 사람의 향기】 문정현 서봉리사이클링 회장 - 우리들의 녹색 백만장자 6

박 창희 승인 2023.02.06 10:56 | 최종 수정 2023.02.12 12:26 의견 0
2019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트레일즈컨퍼런스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문정현 회장(가운데)이 외국인 참가자들과 함께.
2019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트레일즈컨퍼런스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문정현 회장(가운데)이 내외국인 참가자들과 함께. 오른쪽은 박정애 시인.

6. 우리들의 유쾌한 돈키호테

 

#장일순과 함석헌의 가르침

부산 해운대구 윗반송로의 서봉리사이클링 본사. 정현이 일하는 회장실은 작고 소박하다. 그냥 작은 방이다. 다다미가 깔려 있고 큼지막한 차탁을 중심으로 책과 서류들, 액자 몇 개가 거의 전부다.

창가에 세워둔 그림 액자에 눈길이 간다.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의 낙관이 찍힌 난 수묵화다. 한자로 글귀가 적혀 있다.

天地與我竝生 萬物與我爲一.

풀이하면 ‘천지가 나와 더불어 생겼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다’라는 뜻이다. 글귀 뒤에는 ‘莊子句(장자구) 无爲堂(무위당) 戱(희)’라고 적혀 있다. 장자에 나오는 말로 무위당이 썼다는 내용이다. ‘戱(희)’는 ‘놀다’라는 의미다. 정현의 촌평을 들어보자.

“노장을 가지고 논다? 고전이나 옛말에 짓눌리지 않고 가지고 노는 모습이지. 멋지지 않소? 요즘 사람들은 이런 풍류가 없지. 그래서 내가 아끼는 그림이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10주년 행사 때 전시되어 있는 것을 100만 원에 샀어요. 값어치는 그보다 휠씬 더할 테지. 글귀가 마음에 들어 늘 쳐다보고 있어요.”

정현이 차를 내놨다. 무위당의 장자 한 구절을 듣고 보니 차향이 한층 그윽해졌다. 갑자기 서봉 회장실이 밝아지고 넓어 보인다. 차향이 방안 가득 퍼진다.

무위당 장일순은 젊은 시절 정현의 사상적 수원지였다. 배울 게 많은 인물이었다. 장일순은 원주 태생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 초기 시민운동가이자 서화가, 교육가로 한살림 운동이 태동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장일순은 정현이 좇으며 따르고 싶은 인물이었다. 정현이 생명사상과 동학사상에 심취한 것도 장일순 사상의 영향이 컸다.

함석헌(1901~1989)에 대한 정현의 관심도 각별한 데가 있다. 함석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데 생을 바친 사람이다. 아홉살 되던 해 나라를 잃고, 평양고보 재학중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일제강점기에 두차례 투옥되고 해방 직후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58년에는 ‘사상계’에 투고한 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구금됐다. 그의 지독한 절망은 70년 월간 ‘씨ᄋᆞᆯ의 소리’ 창간을 통해 큰 희망으로 부활했다. 엄혹한 시절, 민중들은 이 잡지를 통해 숨통을 틔웠고 그들의 절망도 함께 부활했다. 정현도 이 책을 읽었다.

함석헌은 기독교뿐 아니라 노장(老莊)철학까지 깊이 이해한 사상가였다. 그는 노장철학이 추구하는 평등, 해방, 평화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에 주목했다. 그는 기독교를 말하면서 무교회주의를 설파했고, 기독교와 노장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사유를 펼쳤다. 또한 유(儒)·불(佛)·도(道)·기(基·기독)를 아우른 폭넓은 사유는 한국의 사상사를 한걸음 나아가게 했다.

함석헌의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이 정현에게 전이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폭력 평화주의에 입각한 시위문화를 만들자고 한 것도 넓게 보면 함석헌 사상의 영향일 것 같다. 함석헌의 생전 사진을 보면 눈빛이 형형하다. 정현에게서 함석헌의 형형한 눈빛을 보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정현과 책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다소 생소한 이름이 불려나왔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이라는 프랑스 신학자다. ‘지난 삶속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책이 뭐냐’는 질문에 정현은 ‘샤르뎅의 종교 사상’(앙리 드 뤼박 추기경 지음/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2)을 답변으로 내놨다.

샤르뎅은 가톨릭 사제이며 고생물학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종교 사상은 창조적 진화, 진화적 창조 사상으로 요약된다. 이를 통해 그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갈등문제를 풀어낸다. ‘오직 예수’를 부정하고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나는 영적 체험을 하는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이다”라는 샤르뎅의 말은 생태종교 개념을 설명하는 명언으로 통한다.

함석헌도 샤르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정현이 샤르뎅에 빠져든 게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것이다.

요즘 정현이 읽는 책은 도올 김용옥이 역주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라고 한다. 동학사상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저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은 불교에서 말하는 ‘네가 곧 부처다’는 말과 같다.

정현에게 책은 곧 대학이다. 김해농고를 나온 정현이 대학인 이상의 식견을 보이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은 동서양을 넘나드는 방대한 독서 때문인 듯하다. 요즘도 그는 한 달에 최소 2~3권의 책을 읽고 지인들과 독후감을 나눈다.

#인생의 사표들

정현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몇몇 인물이 두루 엮인다. 그의 삶에 직간접 영향을 준 인물들이다. 사상적으로는 함석헌과 장일순, 장기려 박사를 들 수 있다. 젊은 시절 기독교 교리 공부와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교류하거나 사숙(私淑)한 어른들이다.

정현이 사숙한 인물로는 요산 김정한을 빼놓을 수 없다. 생전에 요산을 만난 적은 없지만 요산의 작품과 인간 됨됨이, 올곧은 성품은 한없이 존경스럽게 받아들인다.

정치인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물심양면 노무현을 도왔다. 지역정가에서는 정현을 ‘친노 6인방’으로 묶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후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정현은 ‘의리 없는 짓이다’ ‘이게 진보진영의 감동 정치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 이후 친노 6인방의 관계가 서먹해졌다. 노무현을 지원하는 바람에 보수세력과 검찰의 표적이 되어 고초도 겪었지만, 정현은 어디에서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멘토이자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송기인 신부와는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정현은 송 신부의 지원 요청으로 요산문학관에 2억 6천만 원을 지원했다. 개인적으로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면 요즘도 조언을 듣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겨레하나되기 부산운동본부’ 공동대표로서 북한을 9차례 방문한 것도 정현에게는 아주 특이한 경험이다. 주로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갔으나 한번은 김해공항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로 들어갔다. 김일성종합대학에 항생제 공장을 건립하도록 지원하고, 삼지연 코스로 백두산에 올라 한겨레임을 확인하고 통일을 다짐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북한 묘향산의 여성스럽고 장엄한 풍광도 잊혀지지 않는 북한 방문 기억이다.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의 전 대표 진영섭 작가는 “문 회장님은 그 자신 인정과 열정의 소유자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그의 독특한 캐릭터를 빛나게 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정현의 사람 보는 눈과 사람 사귀는 재주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실제 정현이 교류하거나 후원한 인물을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의 주변에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진보진영의 교수, 언론인, 문학인, 환경단체, 걷기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이 포진해 있다. 누구를 만나도 스스럼없고 허심탄회한 것도 장점이다. 걷기를 좋아해서인지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과의 친분도 남다르다.

#나는 좌파적 보수다!

정현의 정치성향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사회운동이나 선거때 보여준 행보를 보면 진보가 분명한데, 속살을 파고들면 보수색도 짙다. 대놓고 ‘어느 쪽이냐?’고 물었더니, 정현은 “질문에 어폐가 있다”고 지적한다. 진보-보수를 어떻게 구분하고 가르느냐? 한국사회에선 그 경계가 모호할뿐더러 정치적으로 덧칠이 되어 진영논리, 흑백논리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굳히 말하자면 좌파적 보수, 비판적 진보쯤 될 것이라고 했다.

“공부를 안해서 잘 모르겠는데 대략 이런 거지. 내가 보수라고 하는 것은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어요. 국민의 삶을 지키고 근심 덜어주고 인간의 기본 성정, 즉 인지상정·측은지심을 지키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보수지. 아버지와 같은 거라고 봐요. 그 이상 뭐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진보가 반성하고 성찰할 게 많지. 내가 싫어하는게 ‘진보연(진보처럼 보이는 것)’하는 거거든. 문재인 정부도 따져보면 보수예요. 진보연할 뿐이지. 말장난 할 때가 아니지요. 오용해서도 안 되고. 왜 정권이 바뀌었는지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해요.”

믿고 따르며 기대감이 컸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할 때 정현의 모습은 서릿발 같았다. 탈원전과 신재생 에너지 정책은 왜 비틀거리는지, 기득권이 되어 집단이익을 챙기는 검찰과 언론은 왜 개혁이 안되는지,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 노조 등 범진보진영의 거대 집단이 저지르는 잘못은 누가 제어할 것인지…. 우리 사회의 힘겨운 난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하산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것은 비단 정현만은 아닐 듯하다.

오륙도투나잇 밤샘 걷기행사에 참가한 문회장의 걷는 뒷모습.
'오륙도투나잇 밤샘 걷기행사'에 참가한 문 회장

#어중개비 인생의 통찰

정현은 스스로를 어중개비라 표현한다. 야무지게 단단히 살지 못했다는 것일까?

“나는 기업도 하는둥 마는둥 취미 비슷하게 했지. 관심만 가졌다고 봐야지. 사회운동, 시민운동도 그랬던 것 같아. 소풍하듯 살았단 말이지.”

지난 삶에 대한 성찰로 들린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어중개비로 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업을 열심히 했으면 탐심(貪心,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겼을 것인데 그건 별로 없다. 사회운동을 열심히 했으면 단체의 대표가 되거나 시민권력의 맛에 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정치 후원을 하면서 욕심을 내 정치인이 됐더라면 오늘의 정현이 있었을까. 그런 탐심을 누르고 어중개비로 살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말이다.

정현은 중학교 때 “출세하려고 공부하나?”하는 생각으로 공부와 담을 쌓고 멋대로 자유 행보를 택했다. 되돌아보니 그게 영 엉뚱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탐심을 줄이고 주변의 인과나 업을 해결하며 소풍가듯이 살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따라서 결론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닌 게 아니다’는 것이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시무시(一始無始),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의 경지로 이해된다.

정현은 “나이 먹으면 단순해져야 하는데, 자꾸 깊어지고 복잡해지는 것 같다. 수련이 덜 돼서 그럴 것”이라면서 아이처럼 웃는다. 정현에게 칠순은 소풍 떠나는 돈키호테를 만나는 시간이다. 자유의 창을 휘두르며 오늘도 걷는 우리의 돈키호테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끝-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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