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불행

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불행

박주연 승인 2017.09.02 00:00 의견 0

박주연 변호사

지난해 말 AI(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여 72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그 악몽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났다. 산란계에 피프로닐 등의 맹독성 성분이 든 살충제를 사용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정부 전수조사 결과,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는 52곳이나 되었다. 더구나 한 농가의 닭과 계란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용이 금지되었던 살충제 DDT까지 검출되었다고 한다.

시중에는 ‘안전성을 통과한 계란만 취급함’이라는 문구가 흔히 보이고, ‘살충제 계란을 섭취하더라도 그 성분의 양이 미미하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대한의사협회의 발표도 있었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의 발생 원인은 지난 번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 구제역 파동이 왜 발생하고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는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육돈들이 감금틀(스톨) 안에서 몸을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육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산란계들 또한 한 칸이 A4용지보다도 작은 사육장(배터리 케이지, Battery cage)에서 키워진다. 좁은 공간에 사육장을 빽빽하게 밀집하여 콩나물처럼 ‘밀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닭들은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휴식 시간도 허락되지 않은 채 2년 동안 계속 서서 알을 낳아야 한다. 산란율이 좋은 2년 동안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일부 농장주는 24시간 전등을 켜놓고 닭이 하루 종일 알을 낳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알 낳는 기계와 다름없는 이 가엾은 생명들은 오랜 기간 스트레스와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장식 밀집·감금 사육방식으로 인해 닭들은 면역력이 약해 각종 전염병에 잘 걸릴 수밖에 없고, 일단 한 마리만 걸렸다 하면 급속히 전파된다. 닭은 자연 상태에서는 흙 목욕을 하고 볕을 쬐며 진드기와 같은 해충을 없애면서 스스로 건강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본성과 위생을 허용하지 않는 밀집 사육장, 햇볕 없는 감금틀 닭 사육장은 진드기가 창궐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한 번 퍼진 진드기는 내성이 생겨 웬만한 살충제도 듣지 않게 되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니 맹독성 살충제를 닭에게 분사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의 근원적인 문제는 닭의 습성과 동물복지를 무시한 공장식 밀집·감금 사육 환경이다.

공장식 사육은 동물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질병을 쉽게 유발·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자주 지적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농가들 때문에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국내의 경우 산란계 농가들의 약 95%가 공장식 사육을 하고 있고, 나머지 5% 정도만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아 동물을 방목하거나 동물복지를 고려하여 사육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난 후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농가도 생겨나지만 여전히 많은 농가들은 ‘비용’ 때문에 공장식 사육방식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매년 발생하는 AI로 인해 무수히 매몰되는 동물들을 생각한다면, 또한 이번 살충제 이슈로 인해 폐기되는 무수한 계란들을 계산해본다면, 공장식 사육방식이 반드시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점차 동물복지인증농장의 계란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는 추세를 보더라도 그렇다.

무엇보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과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먼저 농장동물의 사육 환경을 변화해가는 조치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일찌감치 2003년부터 배터리 케이지 신축을 금지했고, 2012년부터는 배터리 케이지 사육 자체를 금지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사육장 공간을 넓혀가는 조치를 취했다.

우리나라도 단기적으로는 배터리 케이지 신축을 금지하고 기존의 사육장에서나마 환기, 햇볕, 운동을 허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제재 및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배터리 케이지 사용을 금지토록 하고 농가들이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전환하거나 동물의 본성과 복지를 고려한 환경에서 사육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소비자인 우리 시민들이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소비자 스스로 제품의 질과 양과 가격을 따질 때 그 제품의 공장식 밀집사육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현명한, 도덕적 소비를 외면한다면 제2, 제3의 살충제 계란 파동을 막기 힘들 것이다.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사육환경은 결국 항생제와 살충제를 부르고 이는 곧 우리 인간의 건강 위협으로 돌아온다. 결국 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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