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의 문화칼럼] 빅데이터의 사회, 인공지능을 인문학으로 마주서기

문학평론가 강희철의 문화비평
빅데이터 수집 알바를 아시나요?

강희철 승인 2019.12.31 22:01 | 최종 수정 2020.04.11 15:25 의견 0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요즘 ‘빅데이터’ 수집 알바, 즉 인공지능을 위한 학습 먹잇감을 직접 선별해서 가져다주는 아르바이트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일명 ‘21세기판 인형 눈 붙이기’라는 이름으로 비유되고 있는 이러한 신종 일거리가 만들어졌지만, 인형 눈 붙이기라는 비참한 비유처럼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정규’적이고 안정적인 일거리가 될 것이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이렇게 적절한 장비나 프로그램을 가지고 이미지 데이터 자료를 만들어주는 직업은 가끔 도로에서 실제적인 길의 이미지들을 찍어 보내는 영상수집 자동차들만 보아도 우리 삶의 공간을 이루는 이미지들이 얼마나 많이 가상공간의 데이터베이스가 되는지 살필 수 있다.

증강현실과 관련된 재미있는 2010년도 TED 강의영상이 있는데, 제목은 블레이즈 아구에라 이 아카스(Blaise Agüera y Arcas)라는 연구자가 강연하는 ‘Augmented-reality maps’으로 ‘증강현실 지도’를 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2007년부터 현실 이미지들이 가상현실의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되어 우리 삶을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증강현실의 힘에 대해 강조해온 창의적인 공학자이다.

그런 그가 요즘은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공지능이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넘어서 스스로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복잡한 알고리즘을 만들고 있다. 이 공학자의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이처럼 창의적인 인공지능의 업적을 두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최근 이세돌과 바둑을 둔 두 개의 뛰어난 인공지능들, 하나는 구글에서 개발한 알파고이고, 하나는 국내기업인 NHN엔터테이먼트가 개발한 한돌이라는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와의 대결이 그것이다.

초창기 알파고가 기존에 있는 수많은 바둑 기보(바둑을 둔 내용을 기록한 자료)들을 계속 입력받으며 인공지능을 성장시켰다면, 이세돌과의 경기 뒤에 계발된 알파고 제로는 바둑 규칙 이외에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다양한 대국을 스스로 인공지능끼리의 대결 속에서 시전하면서 바둑을 독학으로 배웠다(이렇게 바둑 기보도 없이 공부했음에도 알파고 제로는 이전 알파고와의 경기에서 완승을 거뒀다). 국내에서 만든 한돌이라는 바둑 소프트웨어도 처음에는 웹에서 두는 바둑게임에서 기보를 추출하다가 알파고 제로처럼 스스로 바둑 규칙 안에서 인공지능끼리의 학습대국을 통해 기력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렇게 한층 업그레이드된 바둑 프로그램은 이제 이세돌이란 바둑기사 이후로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보다 뛰어난 기예를 발휘하는 로봇에게 인간을 칭찬하는 가장 훌륭한 명사였던, ‘창의성’과 ‘지혜’를 부여할 수 있을까? 도대체 우리는 로봇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창의성과 지혜를 인간이라는 관념 안에서만 독점적으로 다뤄오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인간이 바퀴를 만든 건 대단한 일이지만, 인공지능도 자연의 물건들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고 가장 적고 안정적인 힘으로 물건을 굴리는 것이 것이 ‘원’의 모형이라는 것을 탐지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창의성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 안에서 새로운 패턴을 사고하거나 구성하는 과정이 가능하면 어떤 것이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물론 창의성은 대단한 인간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신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혜에 관한 문제도 인문학이 아닌 경제학적 이론에서는 인간이 가진 유일한 능력으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맥도너(1963)는 정보경제학이란 책에서 지혜(Wisdom)를 ‘패턴화된 지식’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이렇게 우리가 가진 지식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패턴화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혜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이 가진 지혜와 창의성을 시샘할 일만 남았을까? 아니 그러한 가능성은 아직 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효율성의 문제를 따져도 인공지능이 세상을 다 담기에는 너무나 많은 데이터 수집과 처리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담아내는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장치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 수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AI가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기계장비들의 전력소비나 탄소 배출량은 빅테이터가 활성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무시할 수준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맨 앞에서 이야기했던 요즘의 데이터 입력 알바 풍토 또한 빅데이터 위주로 돌아가게 되는 자본주의의 씁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독점적 정보 권력을 지니고자 하는 대기업들의 패권다툼 안에서 우리의 정보들이 나도 모르게 팔리고 이용당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폭력과 정념의 지혜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이 ‘지혜’란 말은 긍정의 언어가 아니다. 타인을 쉽게 굴복시키고 다룰 수 있는 자기만의 패턴화한 나쁜 사고의 반복과정일 뿐이다. 그러한 폭력과 정념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자신의 목적과 행위의 정당성만을 보고 타인의 삶의 문제를 재단하는 정치무리들아 탑재한 이상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기계과 인간은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같음 속에서 많은 문제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이러한 나쁜 지혜들에는 인간의 ‘윤리’가 결여되어 있다. 불모지가 되어가는 지역을 보살피고, 권력이 닿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보살피는 것이 ‘윤리’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빅데이터로 수렴되는 문제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단순한 자료정보 수집을 떠맡기는 것은 빅데이터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권력 안에서 또는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을 로봇과 다름없이 다루는 인간의 폭력과 정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기에 나쁜 지혜로 만들어진 새로운 직업일 뿐이며, 우리의 미래를 이러한 직업들이 많아지는 공포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아주 작은 데이터들의 축적과정을 돌보고 우리가 사는 지역 안에서 그것들이 다뤄질 수 있도록 자율성 안에서 정보를 다루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성들이 조금씩 정립되리라 생각한다. 검색하고 공유하기 쉽도록 자료들을 웹상의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을 간단히 아카이브(archive)라고 부른다. 인공지능을 통한 폭력적인 빅데이터 위주의 정보 수렴화 작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현실 안에서 아카이브 축적의 장소와 사용의 문제도 끊임없이 쟁투해야 할 사항이 되는 것이다. 작은 정보들의 다양한 축적방식과 다양한 공유 가능성이 없는 모델이나 알고리즘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빅데이터들을 수렴하기만 하는 생각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강희철

◇문학평론가 강희철은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 당선
▷현 한국해양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현 <웹진 문화다> 자문위원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장 및 이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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