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13) - 방학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미선 승인 2021.07.16 10:01 | 최종 수정 2021.07.19 09:39 의견 0

방학이 싫은 시절도 있었다

교사들은 방학이 있어서 참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교사로 살아보면 방학이 없으면 정말 하기 어려운 직업이 교사라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방전되어 방학 동안 충전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학기를 시작할 엄두가 안난다.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책을 읽고 여행도 떠난다. 세상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할까하는 불안감에, 날로 달라지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것저것 연수받다보면 방학이 다 지나간다.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에너지를 많이 얻기도 하지만 기(氣) 또한 엄청 빠져 나간다. 아이를 낳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아이 한 명 두 명도 뜻대로 안되고 짜증이 나는데, 몇 십명 몇 백명을 매일 만나고 가르치고 이끌어주고 상담해야 하는 교사들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나 역시 첫 학교에서 남학생들과 힘들게 전쟁 같은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맞으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한 사흘 온몸이 아프고 열이 났다. 몸살이 단단히 난 것이다. 그리고 잠을 끝도 없이 잤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를 지나니 회복이 되었다. 돌아보니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거의 방학 때마다 몸살을 했던 거 같다. 몸이 “쉬어야 해, 안 그러면 다음 학기는 없어.” 이러는 거 같았다.

그런데도 거짓말 같지만, 방학이 싫은 때도 있었다. 물론 초임 교사 시절이지만. 며칠은 정말 쉴 수 있고 미뤄두었던 일도 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참 좋은데, 슬슬 아이들이 보고 싶고 궁금하고 학교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간혹 학교에 갔다. 그런데 뛰어노는 아이들이 없는 운동장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없는 교실은 뭔가 모를 정적이 감돌고 폐가(廢家) 같은 서늘함마저 주었다. 아이들이 있어야 학교는 살아난다.

날마나 집으로 찾아온 아이들

어느 해 방학하기 전 아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방학 때 선생님 집에 놀러가면 안돼요?” 그래서 대뜸 “그래 연락하고 놀러와라.” 했는데 아이들이 진짜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약속을 지켜야 하고 아이들도 보고 싶어 초대를 시작했더니 소문이 나서 거의 하루도 뾰족한 날이 없었다. 아이들 간절함을 거절하지 못하고 약속을 잡다 보니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온 아이들 밥해 먹이느라 방학이 다 지나갔다. 이를 본 어머니는 “니는 참 유별나게도 교사 생활한다. 너거 새끼보다 남의 아이들을 더 챙기노.”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참 별난 교사였다.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이 좋았을까 싶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물론 방학 때마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한 10년 정도 그랬던 거 같다. 이후로는 나도 방학을 기다리게 되었고, 아이들이 없는 학교도 조용하고 좋았다. 방학 때 아이들도 거의 초대하지 않고, 내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하나 분명한 건 어설펐지만 열정을 쏟은 시절에 제자들이 더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아이들도 선생님이 열정과 마음을 다하는지, 그냥 직업인인지 아는 거 같았다. 공짜는 없다.

여름방학 중 아이들과 문화유산답사

방학을 맞는 아이들에게

방학이 되면 엄마들이 말을 한다. “방학은 선생님 행복 시작, 엄마 불행 시작”이라고. 할머니들이 보고 싶은 손주들이 다녀가면 하는 말과 비슷하다. “아이들이 오면 좋고. 가면 더 좋고.” 이런 말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건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하다는 증거? ^^

작년부터 찾아와 좀처럼 물러설 줄 모르는 코로나19.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학력격차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울증, 불안, 게임 중독 등이다. 맞벌이, 저소득층 가정의 시름은 더욱 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백신 접종률도 높아지고 확산세도 다소 누그러져 전면 등교하는 학교가 늘고 있었는데, 방학을 불과 며칠 앞두고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대부분의 학교가 다시 원격수업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방학은 방학이다. 방학은 한 학기 동안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다. 방학을 맞는 아이들에게 교사 시절 나는 몇 가지 당부를 했다.

1. 일단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라.

2. 한 학기 동안 걸어온 길이 어땠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를 해보라. 답은 사실 자기 속에 이미 있다.

3. 잘못한 것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수정하고, 부족한 일이 있으면 방학을 통해 보완하라.

4.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 상상하며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라.

독일 연수 기간 망중한
독일 연수 기간 망중한

방학을 지나고 오면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한 뼘 더 자라서 온다. 주어진 일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목표, 의지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큰 시간이 방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관리, 공간관리, 자료관리 등의 자기관리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인 방학, 훌쩍 자라서 신나게 교실 문을 들어설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 이미선 소장은 :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