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말 아닌 '소리'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5.15 18:09 | 최종 수정 2022.05.17 08:57 의견 0

“‘검수완박’으로 국민이 보게 될 피해는 너무나 명확하다”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자가 모두 발언에서 한 말(?)이다. 의문부호(?)를 붙인 것은 한 후보자의 말은 ‘말’이 아니라 ‘소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릇 말이라 함은 소리에 ‘의미’가 얹혀야 한다. 사람 입으로 내는 모든 소리가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인지 소리인지 따져보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아니라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이지만 이건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자.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피의자였다. 검찰은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 핵심 증거물로 지목된 게 한 검사장의 휴대폰이었다. 한 검사장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검찰은 포렌식을 하겠다고 22개월이나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포렌식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리고 검찰은 “공모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 ‘혐의 없음’ 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이렇듯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혐의 없음’을 처분한 검찰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 재수사를 요구하는 항고장을 4월 20일 서울고등검찰청에 제출했다.

건전한 민주시민의 상식적인 시각에서 이 사건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명백하다. 그러나 검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부에서 적극적 수사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검찰이 수사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검사장의 유죄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검찰이 아니라 제3의 기관 곧 경찰이나 공수처 등이 수사를 했다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혹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기소권 분리로써 검찰의 정상화가 절실히 요구됨을 한동훈 자신이 입증하고 있다.

어쨌건 한 후보자도 국민이다. 그러므로 ‘검수완박’이 되면 자신이 피해(적확히 말하면, 부당한 특혜 몰수나 비리에 대해 정당히 처벌 받는 것)를 본다. 그러니 청문회 모두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이뿐 아니다. “검찰 내에서 벌어지는 일 중 제가 알고 있는 일을 국민들이 안다면 검찰을 없애자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고 임은정 검사는 말했다. 여기서도 ‘국민’이란 단어가 나온다. 한동훈의 국민과 임은정의 국민은 같은가, 다른가?

“허가받은 범죄조직이죠”라고 검찰에 돌직구를 날리는 이연주 전 검사의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에서 한 대목을 뽑아본다.

검찰은 기소(prosecution)가 본업임을 CI가 말해준다. 

우리나라 검찰이라는 조직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앞서 말한 바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폰서다. 흔히 스폰서라고 하면, 검사에게 유흥과 재물을 제공하고 사건을 청탁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상의 공생관계가 있다. 검사는 언젠가는 퇴직하고 변호사를 하게 되는데 스폰서가 그때 주요 고객이나 사건을 가져오는 브로커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센 스폰서의 경우에는 자기가 스폰하는 검사를 좋은 보직에 밀어줄 수도 있다. 조직 바깥의 사람이 보기에는 악순환이고, 스폰서의 입장에서는 선순환 구조다.

어느 스폰서가 A검사하고 돈독하게 관계를 쌓아놓았는데, 그 검사가 검사장이 되어 인사에 힘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하자. 그러면 자기가 현재 키우는 중인 B검사를 A검사에게 인사 청탁을 해서 좋은 자리로 밀어 넣는다. 스폰서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효율이 나야 하니까 키우는 검사가 좋은 자리, 높은 자리에 가야 하지만 아주 힘센 스폰서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더 큰 은혜를 갚고 충성하도록 이렇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스폰서를 중심으로 검사들의 줄이 생겨난다. A검사, B검사, 스폰서의 입장에서 윈윈윈인 셈이다. 만약 A검사가 옷 벗고 변호사가 되어 사건을 들고 가면 B검사가 모른 척할 리가 없다(pp.46-47).

조송원

A검사와 B검사, 그리고 스폰서도 국민이다. 이들은 ‘검수완박’으로 피해를 본다. 그러므로 한 후보자의 모두 발언은 맞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임은정 검사나 이연주 전 검사, 그리고 ‘정치검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무에 충실한 검사들은 '검수완박'의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럼 이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더구나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로써 검찰정상화를 열망하는 뭇 시민들 또한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실체를 특정하지 않고, 외연이 넓은 두루뭉술한 용어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사람의 말은 말이 아니라 소리에 불과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하나마나한, 알맹이 없는 공허한 소리이다. 일국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그것도 청문회 자리에서 ‘말’이 아니라 ‘소리’를 내고 있는 현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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