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대일 굴욕 외교’의 청구서

조송원 기자 승인 2023.03.19 05:56 | 최종 수정 2023.03.22 13:18 의견 0
[한겨레 그림판/3.16.]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 초반이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는 매주 세계 주요 22개국 지도자의 지지율을 조사한다. 이 조사에서 매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 초반으로 22개국 중에서 꼴찌거나 꼴찌 앞 순위이다. 국내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은 30% 중반이다.

공직자, 특히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무엇일까? 이해찬 전 총리는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공공의식)를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대통령이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사욕에 이끌리면,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따라서 대통령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개인적 약점이 많으면, 국가 권력을 공공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개인적 결함을 덮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소 밥 먹듯 ‘법치’를 강조하던 윤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한 굴욕외교를 감행했다. 헌법 준수는 대통령의 의무 사항이다(헌법 제69조). 윤 대통령은 15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사이에 “모순되거나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쪽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우리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부정하는 발언이자, 행정 행위로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3권 분립’이라는 헌법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조약과 법령에 대한 최종 해석 권한은 대법원에 있다. 따라서 국회가 새로운 국민적 합의를 모아 입법을 하면 모를까, 행정부가 행정 행위로 이를 뒤집는 것은 명백히 헌법적 가치에 반한다.”

지지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는 헌법 가치를 무시하면서까지 외교 참사를 감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도덕적·법적 약점이 많은 대통령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국제정세에 편승해 ‘외교 사유화’란 도박을 감행 것이라 생각된다.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패권 경쟁이 격해졌다. 미국은 중국을 혼자 힘만으로 억제하는 데는 힘이 부친다.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방점은 일본에 있다. 일본은 미국의 용인 덕분에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평화헌법 체제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 공조 체제에서 한-일의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다. 미국은 자신의 국익을 위해 한-일 과거사 문제가 원만하고(?) 조속히 해결되기를 원한다. 우경화한 일본은 미국이 한국보다는 일본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판단 하에 한국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전 세계 제조업 5위, 반도체·베터리 생산 1~2위, 대규모의 군대와 방위산업을 가진 국가이다.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이든 중국에 위협을 느끼는 일본이든, 중국을 견제하고 첨단기술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전략 목표를 실현하려면 한국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협상에서 동맹국에 쓴소리를 하며, 치열한 협상을 통해 주고 받을 만한 역량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한-일 안보협력은 중요하다. 미-중 대립이 격화되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거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일 안보협력은 한국보다 일본이 더 절실한 문제다. 대만 해협과 한반도라는 두 개의 위협을 마주한 일본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떤 현안에서든 일방적으로 양보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객관적 현실이 이러한데도 어떤 ‘받음’도 없이 일방적으로 ‘퍼주기’를 단행한 이유는 뭘까? 개인적 약점이 많은 윤 대통령의 ‘생존전략’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윤 대통령은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아마 환영을 받을 것이다. 미국을 위한 한-미-일 공조체제의 걸림돌을 한국 국민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치워준 공로이다. 하여 어떤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미국에서 환영 받는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 환영 받는 이유는 묻지 않는다. 자국 국민을 희생시켜, 철저히 미국 국익에 봉사한 대가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윤 대통령이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일본을 방문했다. 그 때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 컵의 남은 반을 일본 쪽 호응으로 채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동원 문제를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독도 문제 등에 자국 입장을 강조했다. 사실상 한국에 추가 양보를 요구한 것이다.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우리에게 계속 당당히 요구하고 있는 꼴이다.

외교 협상 원칙을 저버리고, 객관적인 역량까지 발휘하지 못한 외교 참사의 청구서가 돌아오고 있다.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청구서를 뼈아프게 받고 있는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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