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14)】 나무의 편지 - 김영탁

조승래 승인 2023.11.22 21:46 | 최종 수정 2023.11.24 14:08 의견 0

나무의 편지

                                     김영탁 

 

 

나무는 일생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사실을
나만이 몰랐네 그저 편지를 보내면
낙엽인 줄 알고,
빗자루로 쓸기만 했네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나무는,
봄의 전령으로 꽃편지를 띄우고, 여름이면
초록 볼우물에서 시원한 우물을
퍼 올리듯 편지를 쓰고
가을이면 끊임없이 편지를 부치는 나무,
겨울엔 무장무장 눈을 맞으며
봄에 부칠 꽃편지를 쓰느라 지쳐
겨울 곰처럼 잠이 들기도 하네

이제야 나무에게 편지를 쓰는 밤,
하이얀 종이를 사랑하듯 사각거리는 연필은
오래전에 떠난 이들을 나무에게로 불러오고
세상의 나무들은 그리운 이들을 편지에 보내네

- 『한국시인』, 2023년 Vol. 05


나무는 떡잎부터 지상으로 나와서 키를 키우며 가지를 뻗고 거기에 이파리를 내어 건다. 이파리는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생장을 돕는다. 잎이 넓은 활엽수, 잎이 바늘 같은 침엽수, 모두 생명 활동이다. 

그러다가 기온이 떨어져 한계에 도달하면 스스로 잎에서 줄기로 가는 소통의 길을 막아버린다. 냉기가 나무속으로 못 들어가도록 잎이 스스로 생명을 끊은 것이며 이때 단풍이 된다. 이파리의 장엄한 희생으로 생긴 단풍. 이러한 사연 다 숨기고 떨어지는 자연 현상을 시인은 나무가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저 하찮은 낙엽인 줄 알고 “빗자루로 쓸기만 했”단다.

봄에는 꽃편지로, 여름에는 “시원한 우물을 퍼 올리듯” 푸른 이파리 편지를 써서 삶을 보여주고 “가을이면 끊임없이 편지를 부치는” 이 행위는 겨울이 되어서야 눈을 맞으며 “겨울 곰”처럼 동안거에 들어 간다. “ 봄에 부칠 꽃편지” 다 써 놓고.   

시인은 밤을 맞이하여 “이제야 나무에게 편지를” 쓴다. “사각거리는 연필”은 제 몸의 근원이 나무이며 그 몸속의 연필심은 까마득히 먼먼 옛날 켜켜이 쌓여 압축된 흑연에서 온 것. 하얀 종이도 나무에서 온 동질성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오래전에 떠난 이들을 나무에게로 불러오고 세상의 나무들은 그리운 이들을 편지”를 보낸다. 

자연계의 순환 속에서 나무를 통해 계절의 변화와 빛의 광합성 작용, 그리움의 융합작용을 문예지 ‘문학청춘’의 주간인 김영탁 시인이 가을 편지로 알려준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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