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특집 : 김해 장소시】 설대목 외 32편 - 박태일

장소시학 승인 2023.01.16 16:40 | 최종 수정 2023.01.18 14:57 의견 0

김해 장소시

 

설대목

박태일

 

배 떠난 녹산나루
기름꽃 뜨고
먹장어 붕장어 한 소쿠리
어머니 대목장 바삐 가신 뒤
나만 보면 옆걸음 치는 똥게들 따라
부부 불며 온다 갈대밭
하얀 풍선껌.*
 

김해군 주촌면 내삼 관동댁

 

저물음에 나앉았습니다
노을 붉어 날씨 예사롭지 않고
구름 저리 한 등성으로 눌러앉았기
눈에 헛밟히는 님자 묻힌 흙자리
낮에는 김해장 혼자 나서서
초가실 말린 고구매 줄거리 다 냈습니다.
요즘 세상 젊은 것들 입 짜른 버릇
어디 태깔 고운 것에나 손이 바쁠까
아적 내내 한자리서 두 모타리 팔았는지
돈이 효자란 말도 둥실한 저 자식 자랑
삽짝 밖만 나서도 객지만 같아
삼십 년 익은 저잣거리가 눈에 설디다
내일은 삼우제 은하사 공양길 비가 올란지
다리에 심 있을 적 익은 일이라
낫살 절어 잦다 해서 숭질 맙시소
부디.**

 

신어산

 

서림사 있으면
동림사도 있을 테지
어딜 가나 살 만한 곳 교회가 담을 두르고
쉴 만한 곳 절집 퍼질러 앉았으니
구절초 누빈 풀숲 슬슬 밟아서
엉덩이 까 힘 쏟고 일어서면 시원한

신어산 바람은 노린재 굴참나무 제 벗이다
개똥쑥 사철쑥이 제 벗이다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 발 아래 멀리
낙동강 물돌이 좇아
시월 상달 이른 들불 연기가
칠산 벌을 질러 명지 쪽으로 고개도 드는데

막돌 오르막 마저 오르면 거기
등신 미륵불, 미륵불은 어딜 가고
허물어진 탑자리 탑돌 속에서 절집 꾸미나
용담꽃 초롱 곁엔
눈배기 흰 굽.***

 

묵방은 멀다

 

묵방길에 물을 만나
묵방 소식 묻다 보면
얼어붙은 두 무릎 투둑
펴보이는 물
감내라고

요오드는 언제 뿌렸나
나락드락 외길 하나
참숯 마을 저녁을 좇아 오른다.****

 

무척산

 

  1

한 구비 돌멩이 굴리고
또 한 구비 톡톡 밤송이 찬다
외로 돋은 묏발 무척산 꼭대기
하늘로 오르다 머문 천지 물이 어슬어슬 찬데
잉어들은 천지 천수경도 치는지
붉은 머리 억새로 짐작하는 통천사
옛 절터 나직한 예불소리

십 리 바깥까지 뒤 따라와
낙동강 맨살에 슬쩍슬쩍 끼어드는.

 

  2

언젠가 지나본 길인데
생각나지 않는다
바람이 품은 비린 구름
어지러운 듯 길은 더욱 굽어 들고
참새떼가 몰고 다니는 빈집 둘 셋
삶이란 마냥 처진 전깃줄 같아

문득 참을 수 없다
씀바귀 쓸개 잎은 쿨럭쿨럭
노란 꽃술을 뱉고
마을 지나 솔숲까지
다시 곰곰 따져두어야 할 일
투다닥 떨어지는
굵은 여우비.

 

  3

무척산도 모은암에 오를 양이면 말동냥을 해야 한다 푯돌은 쓸모 없다 구름 낀 멧줄기 아가시나무 둘렀다 하얀 꽃타래 매단 채 암내를 퍼질러놓는 아가시 아랫마을 소는 윗마을 소를 만나 우물우물 콧김 나눈다 사람 닮았다

산문도 누문도 없어 오르는 재미는 덜하지만 요사채 섬돌에는 천 년을 피어 마른 연꽃도 있다 법당 뒤꼍 하관 빤 돌미륵 말년 운수가 어지럽겠다 그래도 사람들은 세상 모를 영검 많아 남들 운수는 잘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까운 데 먼 데 사람 다 기웃거린다 날밤 기도 온 할머님 비녀 단장도 새첩다 저 저녁 햇살 치맛자락처럼 부푼 하남 들 울렁울렁 기어내리는 낙동강 물길도 곱다 왼쪽왼쪽 오른쪽 노란 밀화부리 귀 바꾸며 수선 떤다 무척산.

 

4

모은암 뒤란 고욤나무 밑둥
공양주 오금댁 오줌을 눈다

오래 약 되고 밥 되라고
귀히 암내라도 맡아두라고

어정 어정칠월 손자 불알처럼
매달린 파르란 고욤

심심한 절마당 굴러다닌다
시님 시님 말동무한다.*****

*『약쑥 개쑥』, 문학과지성사, 1995, 12쪽.
**『약쑥 개쑥』, 15쪽.
***『약쑥 개쑥』, 16쪽. 
****『약쑥 개쑥』, 22쪽.
*****『풀나라』, 문학과지성사, 2002, 18-20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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