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특집 : 김해 장소시】 신호리 겨울 외 32편 - 박태일

장소시학 승인 2023.01.18 13:40 | 최종 수정 2023.01.19 16:48 의견 0

김해 장소시

박태일
 

신호리 겨울

                           

여드레 조금엔 왕모래도 휫휫 날개를 단다
눈바람에 갯바람 밀려든 숭어 망둥어 물길로
햇살은 수척한 발목을 녹이며 가라앉고
밤공기 여직 남은 갯벌 쪽에서는 김 양식 푯대가  
뜬 그물을 친다 바람막이 솔숲과 대숲이 내외하며
허물어진 모래둑 너머까지 조분조분 올라섰다 
개 없는 개사육장 밭뙈기 채 마른 대파   
아이 끊긴 폐교 지붕이 빨갛다 녹산공단 멀리 
에돌아든 곳 시멘트 담장 사금파리 유리조각에 
지난 날 손자국만 손을 대면 희미하게 반짝인다 
부서진다 질척한 골목 덮개 친 새마을 우물
콜타르 검은 연기가 가리키는 선창 막바지까지 
떼지어 농병아리 내리고 수전증의 갈대밭을 낀 채
재첩배는 그쳤다 바닷물과 민물이 겹겹 얼부푼
신호리 겨울 누렁이 물고 간 길 한 끝에는
포르말린 뿌린 무덤 누렇게 배곯은 해도 있다.*

 

김해와 시인
- 황동규 님

 

시인이 걸어간다 
어깨는 높이고 고개 들면서
(안경은 상아빛 테는 굵어서)
시인답게 걸음 옮긴다

한때 그이는 대구와 부산을 거쳤다
빗물이 양철 홈을 타고 내리며 더 큰 빗물을 감당하듯
혁명이 제 내장을 꺼냈다 쓸어 담은 육십 년대 
시인은 스스로 찢은 깃발이었다
비구름 끓이는 멧부리였다 

시인이 걸어간다
시인답게 어깨를 빌리지 않고
(빌려주지 못한 어깨가 쓸쓸하지 않게)
시인이 납릉 가운데로 걸음 옮긴다

김해는 옛나라 서울
섬나라 사람들 몰려와 제 나라 기분을 내는 땅
시인이 아끼는 제자가 
주당 열두 시간 밥벌이로 스승의 웃음 흉내내는 곳
(천진스럽게 막막하게)
오래

시인이 걸어간다 
연홍빛 노을을 이마로 받은 채  
서낙동강이 걸어온다.**

 

이모

 

김해장 이칠장 서다 걷힌 뒤
군에선가 시에선가 뒤집고 영 엎어버린 뒤 
차들 편하게 되구말구 가게도 번듯한데
소낙비에 상닭 숨듯 버스 정류소 
금강병원 오가며 전을 펴신다

남 우사는 두렵지 않아도
두어 되 찹쌀 묵은 동부 한 되가 
죽데기 밀기울같이 눈 밑을 간지럽혀 
허둥방둥 쪼그린 채 또 우짜노

시집온 첫날부터 가슴에 숯검댕이만 앉더니
모여 밥 먹는 것도 대택이지 
황소 구름도 무심히 맥을 놓는 봄 웃다 울다  
제비꽃 이모.*** 

 

그 여자 꿈꾸지

 

콩나물 머리채 쥐고 다투지 손등 지지지 두 번 담뱃불로 화장을 고
치다 울고 화장 고치지 않고 그 여자 식전부터 신을 던지지

물국수 즐기지 그 여자 삼팔장 구포 바닥 이저리 약먹은 고물 쥐마
냥 리어카로 떠돌지 머리에 바람든 아홉과 일곱 두 딸 울리지

술잔 던지지 밟지 저녁마다 속 빠진 멍게껍질 얼굴 붉히지 몇 해 강
바람에 삭은 포장집 실눈 뜬 채 엎드린 폐선에 몸을 맡기고

알비누 냄새 진한 김해들 하얗게 칠성판 업은 겹겹 멧줄기 따라 그
여자 꿈꾸지 고향집 눈발 더듬다 돌아누울 굴참나무 그 남편 곁.****   

 

녹산에서 하루

 

쇠물닭 까만 어미를 만난 일이다
쇠물닭 까만 아들에 딸을 만난 일이다

숨어서 모이를 쪼는  
쇠물닭의 상복

녹산 수문 큰물 뒤 
토닥 토닥토닥

그래 내 자마 오냐
그래 내 자마 오냐 

고요히 내려앉던      
빗물의 만불만탑.***** 

 

산해정 

 

산을 바다로 삼고 
바다를 산으로 삼아 머문 열여덟 해 
누에가 뽕잎 위를 기듯  
철따라 제자들 오내렸을 골짜기  

어느새 눈까풀에 밥풀이 붙어 
밥풀눈으로 보는 세상이라 감감했던가 
간도 허파도 줄 게 없으니 제자들 비고   
잘름잘름 걸음 살림에 쥘부채 하나

왼 퇴계 오른 남명 헛이름만
산초 씹듯 혀 밑에 껄끄러운데 
아내 묻고 아들 묻고 떠난 곳   
삐요삐요 중병아리만 수수밭 콩밭 치달아       

나무 베개 눕혔을 동쪽 터로 
네 백 년 세월에 남은 것 
닭백숙집 손들이 뱉은 뼈무덤 
낮달 혼자 진 감나무.****** 

 

을숙도

 

새벽에 떠난 구름 거룻배가 높다 세월이 제 몸에 왝짓거리하듯 강
이었다 바다였다 굴삭기 파도가 찍어 대는 뻘밭

은박지 아파트가 빛난다 바람이 맥박을 쥔다 무릎 까진 대파가 웅
성웅성 멀다 내장을 비운 폐선들 선창은 어디였을까 

눈감고 눈 내린다 깨벗은 발톱으로 뜬 기름을 쪼고 쫀다 오라 어서
라 한 시절 가라앉을 하늘을 지고 나는 달린다
모래등 지도를 밟고 달린다.******* 

 

언덕 위에 성당이

 

언덕 위에 성당이 
언덕 깎여 나간 자리에 서서 
언덕을 한 차례 더 높여 준다
성당은 흐린 회벽에 붉은 창문을 달았는데 
성당의 딸인 오리나무 가지가 창문을 올려다본다
언덕은 옆구리 아래로도 깎여 비어  
산제비를 불러들이고 
바다로 나서는 강물이 느릿느릿
제 발목을 푸는 다대포 모래톱
끝자리까지 한눈에 살핀다 보꾹보꾹
떠 있는 작은 배도 내려다본다  
장마가 오기 앞서 들마꽃 인동 아이들이  
성당으로 찾아들어 성당 기둥을 타고 내린
지난해 장마 흔적을 두드린다 
성당에 당동 종소리 
성당에 당동 종소리
언덕 위에 성당이 
언덕 깎여 나간 자리에 서서 
오늘은 발밑까지 노을을 불러 앉힌 뒤   
내 아내 아내 벗 둘이  
내려서는 언덕길을   
한참 동안 지켜 준다.******** 

 

다대포

 

여섯 층 산호대중탕에서 뛰어내린 바다는
알몸이다      

주차장 폐타이어 울 너머     
실장어 닮은 여자 둘이 걸어간다  
내 노래 사십 년 노래 이미자 흥얼거리며 
낮은 키 멀리 낮추며    

하늘에는 가재걸음 
방석구름이 하나둘  
뭉클뭉클 밀려오는 파도 

가슴금처럼 처진 
가을 모래톱.********* 

 

*『풀나라』, 문학과지성사, 33쪽.
**『풀나라』, 68-69쪽.
 ***『풀나라』, 112쪽. 
****『풀나라』, 114쪽.
*****『옥비의 달』, 문예중앙, 2014, 23쪽. 
******『옥비의 달』, 46-47쪽. 
*******『옥비의 달』, 73쪽.
********『옥비의 달』, 18-19쪽.
*********『옥비의 달』, 103쪽.

 

※ 『장소시학』은 본지와 콘텐츠 제휴매체입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